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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씁쓸함을 느끼며 돌아서야했던 전시회였다. 서울 시립미술관의 이전 기획전시였던 "모네 전"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고흐 전"은 그 상업성의 양상이 더 심화되었다는 데에서 극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명색이 고흐 전시회에 유화 작품은 얼마되지 않고 사진과 드로잉이 전시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전시회를 다녀온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면 오로지 고흐의 진품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도판으로만 접했던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서야 그만의 풍부한 색감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아이리스"였다. 몇번을 보고 다시 보아도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함과 우수, 아름다움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시회 표값 만 이천원이 그나마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그 작품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건 미치기 전에 그린 건가봐." 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고흐가 위대한 것은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버리게 만들만큼의 광기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 속에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고흐와 그의 그림이 미치기 전과 미친 후의 두 시기로 양분되어서 평가받는 것은 너무나 부박한 세상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고흐가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예술이 가져다주는 구원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을 전하고자 전도사로 탄광촌의 광부들과 가난한 사람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그림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추측되는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온전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다. 그의 생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은  세상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세상은 바뀌어서 고흐의 그림들은 이제 천문학적 액수에 거래되는 고가의 미술품이 되었다. 한 예술가의 광기와 고통스러운 삶은 그림의 후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고흐는 분명 무능한 예술가였다. 살아있는 동안 팔린 그림은 단 한점 뿐이었다. 자신의 그림을 보기좋게 기획하고 포장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우수한 작가의 역량으로 평가하는 현대의 미술계에서 고흐 같은 예술가는 더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미술에 "개념"이 들어오면서 어떤 면에서 작가들은 알맹이 보다 포장에 공을 들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예술은 상업성의 거대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미술이 그렇게 되기 전, 예술이 가져다주는 구원을 진정으로 믿었던 한 사람을 나는 만났다. 고흐의 그림은 그 자신에게나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구원의 한 자락을 발견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넘쳐나는 관람객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제대로 감상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겠다는 엄마들의 과도한 열정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 나무를 그린 거고, 이건 강을 그린 거야"정도의 설명을 아직 말귀도 못알아듣는 어린 아이에게 열심히 하고 있는 그네들을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아예 처음부터 초등학생들에게 오디오 해설기를 안겨주는 학부모도 있다. 그순간부터 아이들에게 전시회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반강제적 행사가 된다. "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뭐지?"라고 매번 일일이 감상을 묻는 엄마에게 대답을 해야하는 아이의 얼굴을 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미술관을 체험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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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벽에서 읽었던 작품 소개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모네가 지베르니의 마지막 시기에 그렸던 그림들이 추상 회화의 초기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지베르니에서 그린 모네 말년의 작품들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본식 다리 연작이 그러한데, 보고 있노라면 저것이 과연 다리인가 싶을 정도로 형태와 색채의 왜곡이 심하다. 그런데 그것은 모네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모네로서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그의 시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백내장은 모네의 시력을 점차적으로 악화시켰으며 그러한 상황은 화가인 모네의 작업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감행한 수술의 결과는 더욱 참담해서 모네 말년의 그림들은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려졌다. 그런데 그렇게 그려진 그의 그림들이 추상 회화의 시초가 된다고 써놓았으니 웃음이 나올밖에. 모네의 회화적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추상이 아닌 구상에 있었다.

  전시를 보는 동안 나의 머리를 맴돈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어쩌면 모네가 추구했던 인상주의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적어도 회화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모네가 살았던 시대는 미술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사진의 발명이란 사건이 있었다. 사진은 회화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는데, 그것은 회화가 사물의 단순한 재현이 될 수 없다면 과연 무엇으로 남아야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회화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기에 인상주의는 미술사에 남을 수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라지는 길목을 한번 떠올려본다. 그들의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재현을 포기한 표현주의와 추상 회화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회화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상과 추상, 그 둘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회화는 다시금 재현으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 하다.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극사실적 회화도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만약 모네가 오늘날의 회화 작품들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그가 회화의 진정성이 남아있던 시대에 그림을 그렸던 행복한 작가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는 어쩌면 현대의 회화들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회화들에서 회화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찾는 일은 점차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도, 관람객도 더 이상 그림을 통해 숭고함과 구원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회화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내면은 황폐해져가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모네의 그림들은 회화의 진정성, 그것을 보는 이들의 내면적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회에서 특히 네덜란드의 튤립 밭을 비롯해 영국의 체링크로스 다리, 항구와 선착장 등을 그린 풍경화가 인상적이었다. 모네가 여행을 하며 느꼈던 정취가 그림을 통해 그대로 전해오는 듯 했다. 나는 모네가 보았던 풍경들 속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쁨과 충일한 감정이 마음을 잔잔히 물들였다.

  한편, 그러한 감상 외에 전시 기획과 관련하여 문제점을 지적해야겠다. 사실 이번 전시회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서양 유명 화가들의 이름을 내건 기획 전시회에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  “빛의 화가 모네 전”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모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수련 연작의 소개에 중점을 두었다는 이번 전시에서 정작 수련 연작 작품은 몇 점 되지 않았다. 사실 모네의 수련 작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96년 가나 아트 센터에서였다. 단 한점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때와 비교하여 본다면 이번 전시회의 수련 연작은 몇 점이 더 많기는 하지만, 크기나 내용 면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보다는 모네의 가족 초상과 그의 초기 풍경화가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전시회의 어느 부분이 “모네 전”이라고 내걸만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단지 모네 작품만 몇 점 가져와서 전시하면 되는 건가? 만원이라는 관람료는 결코 적지 않다. 매번 이런 식의 기획 전시를 보고 사기당한 기분으로 전시장을 나오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오직 상업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전시 기획사, 미술관과 갤러리, 해외의 수준 낮은 컬렉션들, 그렇게 그들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것이 바로 대형 기획 전시인 셈인데, 그 결과물이란 것이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서울 시립 미술관의 경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매번 이런 식의 기획 전시를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술관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절대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성과와 상업적 이윤에 대한 강박관념은 공공미술관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 것이 되었다. 그림을 보겠다는 관람객이 구름같이 몰려오는데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전 전시였던  “르네 마그리트 전”의 경우엔 관람기간을 보름이나 연장해야 했을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다.

  아마 이번의 “모네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러올 것이다. 빈약한 작품 구성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에서였을까? 전시가 끝나는 곳에는 다음 전시를 알려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세상에, 다음엔 고흐가 온단다. 시립 미술관과 전시주관사인 한국일보사는 이제까지 터뜨려온 것 보다 더 큰 대박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 전시에도 바야흐로 한탕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벌써부터 오는 11월의 고흐 전시회에 가야할지 고민이다. 이번의 모네 전과 같은 양상이라면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대형 기획 전시의 폐해를 얼마나 더 목격해야할까? 미술관의 전시 기획 풍토가 명분과 내실을 갖춘 것으로 변모해야할 필요성을 모네 전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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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는 희곡 자체도 결코 쉽게 읽히는 텍스트가 아니다. 읽는 내내 독자를 의문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다가 갑작스런 결말에 이르는데, 이 결말 또한 모호하게 처리됨으로써 과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텍스트 자체에 내재된 그러한 요인들은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때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과연 극의 중요한 상징인 “말(들)”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있다. 희곡을 읽으면서 연상된 “말(들)-6명의 배우가 말머리 분장을 하고 등장하는”의 이미지는 사실 기괴하고 당혹스러운 것이다. 거기에는 선정적인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너제트라는 말에 대한 알란의 집착이 그 증거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광보가 연출한 에쿠우스의 “말(들)”은 선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기대치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그 역을 맡은 배우들은 온몸을 검은 망사로 감싸고 꽉 끼는 가죽 팬티를 입고 나오기 때문이다.

 

  과연 김광보의 관점은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는 이전부터 동성애적 코드를 깔은 얄팍한 연극적 속임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말에 매혹당한 알란, 다이사트의 불행한 결혼 생활, 알란과 질의 성관계 실패가 암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성애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김광보의 연출은 상당 부분 동성애 코드를 충실히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관객은 알란의 여자친구인 질 보다 “말”역의 배우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희곡 텍스트에서 공연 텍스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에쿠우스를 Frame화하는 요소들로 “말”과 함께 “각형의 무대장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피터 셰퍼가 특별히 언급한 것으로 극의 성격 전체를 규정짓는 상징적인 틀이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사각의 링이 아닐까 싶다. 그곳은 결투가 일어나는 곳이고 육체들 간의 부딪힘은 때로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상처마저 남긴다. 대부분 다이사트 박사의 상담실로 연출되는 그 공간에서 알란은 박사와 격렬한 심리적인 대면을 통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하면 이 무대는 알란이 말들과 함께 질주하는 장면에서는 드넓은 초원을 연상케 한다. 특히 제한된 공간성을 회전 장치를 통해 뛰어넘게 만드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김광보의 연출은 그런 면에서는 매우 원작에 충실한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서 사용된 합창은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피터 셰퍼의 연출에 관한 노트를 읽어보면 그것은 분명히 인식 가능한 노래나 합창의 형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김광보의 에쿠우스에는 곡과 가사가 있는 노래가 나온다.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격렬한 움직임으로 연출된 이 장면은 극 전체의 하이라이트로 부각되며, 이것을 빼면 이 연극에서 달리 기억에 남을만한 부분은 없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피터 셰퍼는 합창이 “새로운 신, 에쿠우스의 출현을 예고하는”것이 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광보가 보여준 합창은 뮤지컬의 그것처럼 관객의 시청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매우 오락적인 측면에 치중한 것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본질적인 메시지 전달에는 실패했다는 인상을 준다. 열정과 자유가 표현되어야할 이 장면에서 말들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양식화되었으며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얽매이지 않은 원시성이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한 느낌인 것이다.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는 세상에 나온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주요한 공연 텍스트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인기는 텍스트에 내재된 혼란스러움과 기괴스러움이 가져온 알 수 없는 열광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공연 내내 매혹당하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에 실패하며 공연장을 떠난다. 김광보가 연출한 에쿠우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느낌을 지닌 채 자리를 뜨게 만든다.

 

  동성애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는 보기 좋게 포장되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알맹이가 없다. 알란의 정신병적 열정도, 다이사트 박사의 무기력한 중년의 심리도, 현대 사회의 억압적 지배 이데올로기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원작에 충실하다는 것이 독자적인 연출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닐진대, 연출자에게 보다 과감하고 내실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

Barry B. Witham, Anger in Equus, Modern Drama 22 No.1 March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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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벚나무 동산은” 외형상으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어 보인다. 12개의 의자만으로 무대를 구성한 점이라던가, 희극적 요소의 과감한 도입, 배우들의 독특한 움직임과 대사 처리 등은 확실히 관객의 눈길을 끄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두 시간 남짓 되는 공연 시간 동안 관객들의 집중력과 호응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연극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과연 관객들의 만족감을 가져오게 만든 것은 이 연극만이 가진 독특한 장점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연극에 진정한 힘을 부여한 것은 안톤 체홉이라는 위대한 극작가의 원작 “벚꽃 동산”이 있기 때문이다. “벚나무 동산”은 그 원작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연극인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 맞게 각색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지나치게 희극적인 요소를 도입한 부분은 눈에 거슬렸다. 솔직히 그것은 흥행성을 염두에 둔 상업적 발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사투리의 희극적 변용, 마술의 시연 등과 같은 요소가 원작과 얼마나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극의 전개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어떤 면에서는 원작의 본질을 흐렸다고 생각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체홉이 “벚꽃 동산”에서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체홉은 작품 속의 떠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모두 제각각 상처와 사연을 지닌 인물들은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배회하며 떠나기를 반복한다. 연극 “벚나무 동산”에서 결국 동산을 차지한 천용구 마저도 일견 신분제를 조롱하고 부를 축적해서 한풀이하는 승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도 ‘떠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를 비롯해 다른 인물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은 개인 보다 더 큰 거부할 수 없는 시대와 역사적 흐름이라는 외부적 요인이다.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체홉의 연극에서는 주인공들이 된다. 어떤 면에서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러시아 제정 말기와 일제 강점기는 격동의 시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그 부분은 “벚나무 동산”의 시대 설정에 타당성을 부여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귀족-농노와 양반-노비로 대변되는 신분제의 틀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한 각색의 장점은 무난하게 원작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벚나무 동산”이 떠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나마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러한 점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작이 주는 절제된 슬픔과 삶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시도가 항상 좋은 것을 담보하지 못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기존의 것에 대한 철저하고 냉정한 분석과 함께 창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벚나무 동산”의 시도는 새롭기는 하지만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작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힘겹게 서있는 이 작품을 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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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란 얼마나 때로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것과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영역은 그야말로 광대무변하다고 할 것이다. 포르말리이니 극단의 “광대들의 학교”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 정말 쉽지가 않다.

 

  어떤 면에서 “광대들의 학교”는 말하는 부분 보다는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도입부는 매우 흥미로워서 처음부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사기로 재현된 모나리자 그림,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배우들의 몸짓, 독특한 음향 등은 극에 신선함을 불어 넣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커튼으로 분리된 세 개의 연극적 공간은 극의 전개에 있어서 중층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커튼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있는 요소들과는 별개로, 원작 희곡을 읽어보지 않고 이 극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연극 시작에 앞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다. 주인공 내면의 분열적 자아를 연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시도 자체가 기존의 내러티브 구조를 차용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광대들의 학교”는 쉴 새 없이 내러티브를 파괴하고, 전복시키며, 때론 타협하면서 극을 풀어나간다.  

 

  이렇게 내러티브가 혼란스럽게 질주하는 동안 관객이 도입부의 긴장감에서 점차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막히면 이미지를 따라가고, 그것도 막히면 음악과 소리를 따라가게 되는데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은 당연히 극적 흥미를 반감시키게 만든다. 이것이 후반부가 시작되기 전쯤에 배우가 잠시 연극을 중단시키는 지점에 이르면 극을 이끌어가는 힘은 상당부분 소멸되고 만다(일부 관중은 그때에 자리를 떠버렸다).

 

  이어진 후반부는 수습할 수 없는 내러티브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미 없는 언어의 나열은 귀와 눈 모두를 지치게 만들고 관객을 극도의 혼란스러움으로 몰고 간다. 이쯤 되면 관행화된 내러티브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익숙해 있으며, 그것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될 법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연출자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자폐아의 내면처럼 세상에는 우리 자신의 익숙한 내러티브 관습에서 벗어나 위치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광대들의 학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모호하고 불분명해 보인다. 나와 다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사고의 틀로는 쉽지 않음을 넌지시 일러주면서, 타인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일면 우리 자신의 비타협적이고 편파적인 모습과 맞닿아 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광대들의 학교”는 길 잃은 내러티브 속에서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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