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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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이야기가 가득한 책. 이 책의 내용을 내가 요약해 보면 그렇다. 종양의학과 의사는 자신이 18년 동안 보고 들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놓는다. 저자가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통스럽게 서성이고 있다. 중간중간 희망을 주는 사례도 있지만, 대개는 힘든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암 환자들의 이야기가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마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편 영화들을 이어서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1시간 반 정도면 이 책을 완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흥미진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이 책이 지닌 흡인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 책에는 익명으로 등장하는 여러 암 환자들과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과연 이 책의 저자는 그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도 된다는 동의를 받았을까? 물론 각각의 일화들만 보고서 독자는 그들이 누구인지 결코 특정할 수 없다. 종양의학과 의사로서, 또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에게 진료실의 환자들은 흥미로운 글감의 원천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자는 대단한 행운을 지닌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익명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책으로 펴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에 내가 이 책에 나오는 환자, 또는 그 환자의 가족이라면 나는 상당히 놀랍고 불쾌할 것이다. 그들은 주치의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출판할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다는 사전 동의서를 작성했을까? 그랬다면 조금은 문제가 다를 수도 있다. 요즘 TV에 넘쳐나는 무수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은 제작 과정에서 초상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단 한 컷의 화면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출연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나는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저자가 의사로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수필'이라는 문학적 틀에서 자유롭게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차라리 저자가 자신이 진료실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소설적인 변형을 통해 글을 써냈다면 어땠을까? 소설이라고 해도 저자의 직업이 '의사'라는 점에서 환자의 개인 정보에 대한 보호 의무가 전적으로 면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저자의 글, 그것이 수필이든 소설이든, 그것을 읽는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글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정확히 떠올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문득 나는 재일 교포 소설가 유미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미리는 자신이 쓴 소설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유미리는 자신이 알고 지낸 지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다. 그것을 알게 된 지인은 유미리의 소설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될 수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유미리는 강변했다. 작가는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소설적인 가공을 통해 써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재판부는 유미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인물의 외모가 실제 유미리 지인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유미리는 그 재판에서 패소했다.

  나는 나를 치료하는 주치의가 언젠가 자신이 쓰게 될 글에서 나의 질병과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감으로 써먹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라면 그런 의사에게는 절대로 진료받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겉으로는 휴머니즘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개인적인 편견과 냉소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가깝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나마 이 책에서 내가 진정성을 느꼈던 부분은 저자가 써 내려간 자신의 개인사에 있었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폐암으로 부친을 잃고 어렵게 의대에 입학했다. 부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는 대목에서는 저자에게 '종양의학'이 숙명이 될 수 밖에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 단편적인 글에서 느끼는 아주 작은 진정성 말고는, 나는 이 책에서 어떤 대단한 미덕을 찾지 못한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닌 암 환자들의 이야기가 상점 진열대의 상품처럼 놓여있을 뿐이다. 

  과연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사의 고뇌가 아니라, 저자가 의사로서 지닌 권위와 특권 의식이 미묘하게 내포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이런 책 읽기의 경험은 결코 감동적이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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