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비가 온다


12월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써왔던 글을 떠올려
본다 시를 쓴다고 골머리를 썩여가며 열심히 쓰기는
썼다 여기저기 공모전에도 보내봤다 죄다 떨어졌다
나는 아주 늙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아니다 그냥 늙은
것이다 나중에는 내가 쓴 것이 시인지 산문인지 알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시란 무엇인가, 그것을 분명히 말해줄
사람이 있기는 있는가? 나는 산문시를 너무나도 싫어했는데
나중에는 시를 줄이고 압축해서 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시가 아닌 산문을 시처럼 쓰게 되었다 솔직히
이건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나는 시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trailblazer, 얼마나 멋진 말인가?
따끔,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귀가 신호를 보내온다 내일은
반드시 비가 올 것이다. 오래전에 크게 아픈 뒤로 내 귀는
궂은 날을 예보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초능력이라기
보다는 손상된 신경이 보내오는 서글픈 신호인 것이다
내일은 비가 와, 아니, 겨울이니까 눈이 올 수도 있겠군
몇 달 전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다즐링 차를 사두었는데,
뜯지도 않고 그냥 놔두었다 이제 유통기한이 9개월이나
지나버린 다즐링 차를 뜯는다 뜨거운 찻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길 기다린다 아, 이 홍차는 향도 별로고 맛도 없다
제값을 주고 샀다면 참 비싼 차였을 텐데, 그 돈을 주고
샀으면 이 차의 맛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통기한 따위는
차의 맛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떤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간다고 들었다 결국은 차의 맛이란 돈의 맛이다
좋은 글은 시간의 맛이며 세월의 맛이다 오래도록 우라지게
고생하고 깨지고 부서진 다음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쓰는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글을 읽어줄 독자를 만나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 아무튼
내일은 비가 온다, 올 것이다, 눈이 올지도 모르는 내일,
작가도 뭣도 아니면서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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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때리기


내가 자주 들리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누군가
오랫동안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글을 썼다
글을 쓴 이는 너무 슬퍼서 크게 울었다고 했다
이어진 댓글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의 위로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토끼를 키운 이야기를
했다 애완 토끼, 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사람은
어쩌다 토끼를 키우게 되었는데 집에서 방 하나를
토끼 방으로 하고 애지중지 키웠다고 했다 아, 토끼도
그렇게 키울 수 있구나, 신기해하면서 댓글을 읽었다
토끼도 생각보다 꽤 오래 사는 모양이었다 글쓴이는
그 토끼가 죽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고양이를 키우다가 고양이를 떠나
보냈는데,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글을 쓴 이는 지금 자기가 항암 투병 중인데, 먼저
떠난 고양이 생각이 더 많이 난다는 말도 썼다 아이고,
저 사람은 참 힘들겠네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삶,
그 편린들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애정을 가지고 뭘
키워온 것이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있기는 있다
15년째 게발 선인장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분갈이도
한 번도 해준 적 없고, 몇 년 전에는 화분의 윗부분이
깨진 데다가 선인장의 절반이 죽어서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이맘때쯤이면 화사한 꽃을 늘 피워주었다
그 선인장이 올해는 단 2개의 꽃봉오리만 만들어 내었다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고얀 것 같으니, 때려줘라 엄마는 선풍기가 고장나도
때려주라고 하고, 컴퓨터가 잘 안될 때도 때려주라고 한다
밤에는 추우니까 선인장을 집안에 들여놓고 마침내
나는 마루 바닥을 두들기며 선인장을 야단쳤다
열심히 물 주고 키웠는데, 왜 꽃을 2송이 밖에
피우지 않느냐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나는 선인장을
차마 때릴 수는 없었다 올여름은 너무 더웠으니까,
얘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다 힘들다 힘든데도 어떻게든 있는 기운을 끌어내어
꽃을 피우는 것, 그렇게 삶은 견디고 견디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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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家庭用)


올해는 인터넷으로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을
구매할 일이 좀 많았다 그런데 상품을 고를 때마다
이상하게 걸리적거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가정용(家庭用)이라는 단어였다 가정용, 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안온한 집에 어울리는 무언가
단촐한 물건? 그런데 그것이 식품이라면 도대체
가정용 과일과 채소의 외관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나의 이러한 의문은 올여름에 가정용 과일을
주문해 보고서야 단박에 풀렸다 가정용은 크기가
작고, 대개는 이런저런 흠이 있는 상품을 뜻했다
물론 과일이 크기는 작아도 당도가 높아서 맛이
있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주문한 가정용
복숭아와 참외는 진짜 맛이 있었다 그런데 더러는
밭에서 그냥 버려져야할 잔챙이나 폐급의 상품을
보내는 판매자도 있었다 그런 걸 한번 받아보고는
나는 가정용이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게 되었다
고구마의 경우에는 가정용 대신에 한입 고구마가
통용된다 왜 가정에서의 먹거리가 죄다 작고 못생기고
흠이 있는, 버려지기 직전의 상품이어야만 할까?
나는 판매자들이 가정용, 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개인에게는
격식이 없이 지내도 되는 가장 편안한 곳이니까,
먹는 것도 대충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뜻일까?
결국 가정용, 이라는 말은 좀 없는 사람이 먹는
싸구려, 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가정용, 은 먹을거리에 덧입혀진 노골적인
계층성을 입증하는 모욕의 단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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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


흑백 TV 화면에서는 소복(素服)을 입은 여인네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슬픔과 두려움이 TV 화면 너머로
넘실거렸다 박정희가 죽은 것이다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그 장면은 기괴한 공포 영화처럼 보였다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뉴스에서 보내준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1979년에 내가 목도했던 그
TV 화면과 다르지 않았다 독재자의 죽음에 통곡하고
실신하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던 이들이 있었다 
전두환의 쿠데타, 1987년의 민주화 항쟁,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 그리고 2016년의 박근혜 탄핵까지
나는 나의 시대가 격변으로 뒤엉켜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지켜봐 왔다 그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지역과 이념,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 토대가
흔들리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이라는 끔찍한 극우 정치의 혼종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국민의 안위를 거리낌 없이 내던지고, 오로지 자신의
영속적인 독재를 위해 친위 쿠데타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윤석열과 그 잔당들은 준엄한 법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있었던 이틀 후인 12월 5일,
경북도청 앞에서는 거대한 박정희 동상의 제막식이 있었다
그 동상은 처음 세워진 것이 아니며, 마지막이 될 운명도
아니다 박정희의 동상은 앞으로도 계속 건립될 예정이다
19년을 피 묻은 권력으로 철권 통치한 독재자의 망령은
45년이란 세월을 넘어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새로 세워진 박정희의 동상은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어느 먼 곳을 가리키고 있다 권총처럼 비현실적으로
크게 늘여진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무도(無道)한 권력의
최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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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발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오른쪽 발만 아프던 것이 얼마 전부터는 왼발까지
아프다 걸을 때마다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의사는 오래갈 거라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나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며칠 전, 해외 뉴스를 검색하다가 미얀마의 내전 소식을
접했다 2021년에 시작된 미얀마 내전은 2024년인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군과 반군이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삶도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참혹한
소식 가운데 하나는 그런 상황에서 무차별적으로 설치된
지뢰에 희생되는 이들이 연간 100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내가 미얀마에서
태어났더라면 지뢰에 양쪽 발을 잃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지금 이렇게 아픈 발 때문에 거의 질질 끌다시피 걷고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걷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어디냐
그런 생각이 드니까, 발이 아픈 것에 대한 괴로움을 조금은
잘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위안에는
기묘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성찰할 때에만 자신의 현실 인식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이 없다면, 평안하고 행복한
나의 일상은 도달하지 못하는 멀고 먼 이상일 뿐인가?
인터넷으로 클릭한 미얀마 내전의 뉴스 웹사이트는 순식간에
닫힌다 그렇지만 내가 아픈 발로 걸을 때마다, 나는 지뢰로
고통받는 미얀마 사람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은 그렇게 그물처럼 걸쳐지며 연대(solidarity)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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