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이 질 때


1.

  엊그제는 동시 공모전에 낼 시들을 골라서 응모했다. 그 공모전은 온라인 응모라서 참으로 편했다. 10편을 내는 것이었는데, 내고 보니 맨 처음의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제출한 원고의 변경이 쉽지가 않았다. 변경 과정에서 자꾸 오류가 나서, 그냥 제출을 취소하고 다시 접수했다. '어차피 안될 것이다'와 '어쩌면 뽑힐지도 모른다' 사이에서 어쨌든 동시 원고를 냈다.

  동시를 쓰면서, 나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느낌으로 써나갔다. 그것이 의외로 편했다. 글을 쓰는 작업이 작가 자신에게 가장 유익하고 즐겁지 않다면, 글쓰기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버려진 시간처럼 느껴졌던 2년 동안의 시 습작 기간이 도움이 되었다. 시 속에 화자를 설정하는 것,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 이런 것들이 동시를 쓰면서 다시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지난달에 응모했던 동화 공모전의 결과 발표가 있다. 그냥 장려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떨어져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발표가 나는 날에도 아마 동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50편을 내야 하는 동시집 원고는 이제 9편을 채웠다. 어떻게든 써내지 않을까 싶다. 자꾸만 머리 복잡하게 이걸 왜 하나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지금은 동시를 써야 할 때인가 보다, 하고 쓰고 있다.


2.

  지난주에는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고, 에어컨에 커버를 씌웠다. 올해도 덥기는 했지만 의외로 여름이 선선히 물러선 느낌이다. 작년에는 지독한 늦더위로 9월 말까지 에어컨을 켰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것은 선풍기 2대, 그건 아직은 낮이 더우니까 좀 더 있다 들여놓을 생각이다. 선풍기 가운데 한 대는 15년 된 것인데, 목 부분이 부러져서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아두었다. 그 모양새가 참으로 볼품없다. 하지만 모터가 멀쩡히 돌아가는데, 버리는 것도 아까워서 쓰고 있다. 고장 나면 버려야지 싶지만, 고장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죄다 중국산 일색인 소형 가전제품이 국산이었던 시절은 참으로 만듦새가 좋았다.

  오늘은 마음먹고 생두를 볶았다. 원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다시 커피를 볶아서 먹기로 했다. 오늘처럼 날이 선선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로스팅하기에 좋은 날이다. 이건 할 때마다 그냥 사먹는 게 낫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엄청난 연기와 가스불의 열기, 한 이틀은 집안에서 빠지지 않는 미친 듯한 커피 냄새 때문이다. 다시 원두를 사는 것은 오늘 볶아놓은 1kg을 다 먹고 난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3.

  옆 단지 아파트에는 멋진 배롱나무들이 있다. 여름 동안 그 나무의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러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나서 꽃들을 보러 갔다. 한창 고왔던 때의 꽃들은 지고, 이제는 빛바랜 배롱나무꽃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그것이라도 보았으면 되었다, 고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또 여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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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오초완


1.

  9월 말일이 마감인 동시 공모전은 써내야 할 응모 편수가 10편이다. 공모전 공고를 본 것은 8월이 끝나갈 무렵.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채우나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동시를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루에 2편을 쓰는 날도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10편을 채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좀 더 써서 나중에 동시집으로 묶으면 어떨까 하는. 물론 그냥 시집도 잘 안 팔리는 판국에 동시를 누가 얼마나 사서 볼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동화는 나름의 시장성이 있어서 동시보다는 낫다. 큰 상금이 걸린 동화 공모전도 여럿 있다. 그게 다 시장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동시집 몇 권을 읽다가, '참 재미없네' 하고는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저런 동시는 쓰지 말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주는 책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동시가 재미있어야 하나? 밝고 희망을 주는 그런 메시지만을 아이에게 주어야 하나?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처음 쓰기 시작한 동시는 짐짓, '너희들, 세상의 밝은 면을 보아라' 하고 조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써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를 쓰는 것이 싫어졌다. 점점 내가 쓰는 동시에는 삐딱하고, 외롭고, 괴로운 아이의 목소리가 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솔직한 동시라고 생각했다. 물론 솔직함이 재미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대중성과는 더 멀어지고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2.

  원래 목표는 동시는 그냥 써보고, 동화 부문에 응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동시를 쓰다 보니, 소설 쓰기로의 전환이 되질 않는다. 2년 동안 시를 쓸 때도 그랬는데, 압축하면서 좁게 들어가는 시를 쓰는 동안에는 일반적인 산문 쓰기가 잘 되질 않았다. 반대로, 서사를 확장하고 풀어서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시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나에게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건 양립 불가능한 작업 같다. 그러니 지금 동화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이 와중에 동시집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50편의 동시를 써서 내야 한다. 기한은 10월 31일까지. 요즘 동시를 하루에 2편을 쓸 때도 있으니까, 어떻게 규칙적으로 매일 써낸다면 마감일에 맞춰서 원고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써내는 것이 맞는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쪽, 그러니까 아동문학 분야도 나름대로 준비하는 지망생들이 많을 것이고 내봤자 안될 거 같기도 하다. 뭔가 김수영 문학상에 2년 동안 시 써서 보냈다가 떨어진 그때의 기분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듯도 하다.

  이것이 된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공모전에 글을 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는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오늘, 문학 커뮤니티에서 읽은 우스갯소리는 이랬다. '글 잘쓰는 사람의 사주에는 반드시 문곡귀인(文曲貴人)이 있는데, 내 사주에는 그것이 있다!' 대충 알아듣기로는 문곡귀인이란 글로써 이름을 날리게 하는 명운인 모양이었다. 지망생이 여북 답답하면 그런 것에나 의지할까 싶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요새 드는 생각은 인생의 7할, 아니 8할 정도는 그냥 운의 영역 같다. 나머지 2할은 재능이나 노력이 마구 욱여지는 무언가일 테고.

 
3.

  어떤 사람이 문학 커뮤니티에 자기 기록처럼 '오초완'이라고 올리는 것을 보았다. '오초완'이 뭐지? 하고 궁금해하다가 나중에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오늘의 초고(草稿) 완료'의 줄임말이었다. 무슨 소설을 어떻게 써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투지 하나만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시간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의 매일 '오초완'이라고 써낼 정도라면, 습작의 여건이 괜찮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위층에서는 보름째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집안을 깨부술 듯 울리는 소음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 앞 놀이터에서는 선선해진 날씨에 아이들이 악다구니를 쓰면서 논다. 노안으로 침침해진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저녁이나 되어서이다. 오늘도 동시 한 편을 써냈다. 새롭게 동시집 공모전에 낼 시를 세어 나간다. 50-1. 49편이 남았다. 그걸 써낼 수 있을지는 지금은 모른다. 10월 말일까지 매일 '동시, 오초완'을 해내다 보면 가능할지도. 이건 마치 실수로 잘못 탄 기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 같다. 나는 이 기차의 종착역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어쨌든 지금은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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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속에서


1.

  "오늘 이를 다섯 개나 뺐어. 지금 얼굴 모양새가 말이 아냐. 내가 밖에 다닐 수가 없다고."

  전화기 너머,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프고 기운이 없게 들렸다. 이제 구십이 다 된 친척 할머니의 치아는 수명이 다한 모양이다. 늙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틀니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나이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치아를 보내버린 것이 서러울 따름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그 나이가 된다면 남아 있을 치아는 몇 개가 될까를 가만히 가늠해 본다.

  "어머니는 암 투병을 열심히 하시다가, 지난달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뜬 이는 솜씨가 좋은 요리 블로거였다. 나는 가끔 들러서 그의 레시피를 메모하곤 했다. 블로그의 주인이 암이 발병한 것을 알아챈 것은 작년 여름, 병기(病期)가 말기에 가까워서 항암 치료가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랬는데 결국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궂긴 소식을 듣고 말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라서 뭔가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절(夭折)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나이. 이르게 가긴 했지만, 절절히 안타깝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나이. 뭔가 어정쩡한 나이. 나는 다른 이의 죽음에서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를 바라본다.


2.

  작년 이맘때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니,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할 시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모전이라는 게, 한 명만 뽑히고 나머지는 버려지는 것이니까 어떤 면에서 내가 쓴 시들은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를 쓴다고 매달린 시간이 2년이었다. 김수영 문학상의 작년 응모자 수는 역대 최대인 359명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나라에서 시집으로 시를 묶어 응모한 그 359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게 하나의 시집을 완결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제 시는 그만 써야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동시를 쓰고 있다. 올해 단편 소설을 낼 수 있는 공모전은 끝났고, 어떻게 찾다 보니 남은 것이 아동문학 공모전이었다. 아이들은 미래에 내 글의 독자가 될 수도 있다. 뭔가를 쓰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서 조금씩 써 내려가는 작업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써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시 아이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동시를 쓰는 건,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동시든 동화든, 아동문학을 하는 이들은 그런 느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작업 자체가 일종의 해방감, 치유의 느낌을 주었다.

  결국 문학 치료라는 심리학적 치료 방법도 문학의 그런 기능에 기대어 나온 것이다. 문맹인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서 자기 삶을 시나 산문으로 풀어서 써내는 것. 트라우마를 가진 개인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다 그러한 범주에 속해 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새삼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고요해지기 위해서 쓴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헝클어져 있을 때, 일기를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곤 했다. 시를 쓰는 것, 소설을 쓰는 것도 다 그 고요해지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니 작년에 뽑히지 못한 50편의 내 시들이 실패한 시들이라고만 할 수 없다. 2년 동안 그 시들을 써내는 과정 자체가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언어와 감정을 응축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소설로 서사를 확장할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일을 실패한 작업, 쓸모없는 일로 단정하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일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건 나름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에 있었던 과거의 일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늘 움직이는 것이죠."

  주역을 연구하는 역학자 강기진의 유튜브 강의를 보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자신을 늘 새롭게 바라보는 역동성을 지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현재가 지닌 의미도 바뀔 수 있다.


3.

  어린 시절의 책장에는 계몽사의 10권짜리 백과사전이 있었다. 붉은색의 두꺼운 장정(裝幀)으로 된 그 백과사전은 꽤 비싼 물건이었다. 그 시절의 아이에게 백과사전이란 첨단의 지식과 만나는 어찌 보면 유일한 통로였다. '브리태니커'라는 이름의 백과사전을 들었던 것은 아주 한참 뒤, 나의 유년 시절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을 때였다. 나는 부들부들한 고급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심심하면 들춰보곤 했다. 거기에는 '지구의 최후'였나, 우주와 관련된 항목도 있었다.

  '수명이 다해서 백색왜성으로 변한 태양은 지구를 삼켜버릴 것입니다.'

  아직도 그 부분의 삽화가 기억이 난다. 허여멀겋게 변한 태양이 흰색의 팔과 같은 띠로 지구를 휘감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지구의 운명이 참으로 가엾다고 생각했다. 뭔가 비감한 느낌에 약간의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로 지구가 사라질까? 정말로? 아이는 스스로에게 혼자 그렇게 물었다.

  언젠가 소멸하게 될 지구처럼,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사라질 운명이다. 언젠가 나도 수명이 다한 치아를 생각하며 서글퍼할 것이고, 그러다가 눈이 떠지지 않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어쨌든 오늘도 마음에 떠도는 시를 붙잡는다. 흐르는 시간 속, 스러지는 모든 것들이 내쉬는 숨을 그렇게 글 속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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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가 - 어떤 독서의 시대와 글쓰기


1.

  올해 초,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들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화가 분명한 문장에 그 어디에서도 큰따옴표(" ")를 볼 수가 없었다. 그냥 나열된 문장 속에서 이것이 대화이겠거니 하면서 소설들을 읽어 내려갔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 소설들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요새는 이렇게 소설을 쓰나 보군.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문장들 속에서 정처 없이 떠내려가며 유랑하고 있었다. 그걸 제대로 정렬해 내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이었다.

  불친절하군, 참으로 불친절해.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도대체 이딴 유행은 누가 만든 것이며, 왜 그런 소설들을 써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독자에 대한 철저한 기만과 무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따옴표의 사용은 독자의 이해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없애고 그냥 평서문으로 기술된 문장들 속에서 독자에게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 묘사를 온전히 구분해 내라고? 왜 독자가 그래야만 하는가? 우린 이렇게 쓸 거야. 그러니까 당신들은 어떻게든 읽으라고. 나에게 따옴표 없는 그 소설들은 거만한 선언처럼 들렸다.

  불친절한 것은 삭제된 따옴표뿐만이 아니었다. 서사가 실종된 소설에는 미문과 분위기만이 남아 있었다. 주인공인 젊은 여성은 원룸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이웃집 할머니와 소통하며 코코아나 마시는 소설들. 이제까지 내가 아는 소설이란 인물과 사건, 주제가 있는 명확한 세계였다. 그런데 이제 그 세계는 흐릿해져서 알아볼 수 없는 이상한 물체로 변해있었다. 아마도 작금의 소설에서 내가 느끼는 그러한 혼란스러움은 내가 살아온 시대와 문학적 경험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2.

  1980년대의 문학이란 사회변혁과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1985)'은 그 당시의 나에게 약간은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독서 체험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그 시대의 분위기가 무거웠다는 뜻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운동권의 후일담 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개인성에 대한 자각은 분명 이전 시대의 거대 담론에 포획된 개인과는 달랐다. 정치적 민주화는 사회와 대결했던 개인이 비로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개인의 부상(浮上). 내가 생각하기에 그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의 IMF 외환위기였다. 외세에 떠밀려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구조조정과 경기침체의 후폭풍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신경숙의 '외딴방(1995)'을 흔들리는 좌석버스 맨 뒷좌석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소설에는 상처받은 개인이 과거를 반추하며 만들어내는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신경숙은 그 시대를 통과하는 문학적 티켓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티켓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버려졌다. 신경숙이 다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표절'이라는 치명적 오점보다도, 지금의 독자들이 더는 그의 소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독자들이란 다름 아닌 20대와 30대의 여성 독자들이다. 쪼그라든 순문학 시장에서 여성 독자들은 쓰러진 집의 유일한 버팀목처럼 남아 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소설을 써내는 것은 잘 알려진 생존의 비결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6)'이 보여준 성공은 얄팍한 문학적 성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소설이 있는데, 양귀자의 '모순(1998)'이다. 양귀자는 대표작인 '원미동 사람들(1987)'을 통해 자신이 그려낸 주변부 세계에서 탈출했다. 작가는 이제 부촌인 평창동의 주민이 되었다. 그런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보여주는 저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그리고 그 책은 2000년대의 여성 독자들을 지나, 지금은 책이 출간된 시기에 태어난 여성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모순'은 젊은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사랑과 연애, 결혼을 이야기한다.

  양귀자에게는 먼 훗날 자신의 독자를 예견하는 선구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모순'을 읽는 젊은 여성의 책상 위에는 요새 잘 나간다는 시인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2023)'도 있을 것이다. 2026년에도 1955년생 작가의 책은 1997년생 시인의 시집에 밀리지 않는다. 내게는 이 기묘한 조화가 꽤나 경박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읽은 한국 문학은 이제 우리 사회의 부조리, 계층적 불평등을 말하는 대신에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앞세우고 그것에 함입(陷入)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흐름에서 비켜선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편혜영의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2007)'가 보여준 중산층의 서늘하고도 허무한 초상을 기억한다. 편혜영은 매우 영리하게 계층적 서사와 여성의 이야기를 직조해 나갔다. 편혜영이라고 그늘이 없지는 않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몬순(2014)'의 표절 의혹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편혜영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공모전의 심사 위원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고갈된 창작력의 대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애란을 빼놓는 것은 매우 서운한 일이 될 것이다. 김애란은 소설집 '비행운(2012)'을 통해 동시대를 통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고 폭넓은 서사로 풀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유쾌하지만 부박(浮薄)하지 않고, 때론 서글프게 떠돈다. 어떤 면에서 김애란은 한국의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나에게 김애란은 단편에 최적화된 작가이다. 이 작가에게 장편은 어쩐지 잘 맞지 않는 어색한 옷 같다.

    
3.

  결국 내게 남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소설을 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류 서사는 여성 서사, 주변부의 서사는 성 소수자와 외국인 이야기가 자리 잡았다. 최근에 내가 흥미 있게 들은 단편 소설의 아이디어는 이주 여성(移住女性)의 서사였다. 글을 쓴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소재를 그러모았다. 그저 그런 일상적 이야기, 주제와는 확연히 다른 결의 이야기였다.

  내가 아는 그들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EBS의 프로그램 '다문화 고부 열전'에서 본 것이 전부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글을 쓴 이는 진짜 현실에서 이주 여성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그러한 현실성은 그저 이야기로 들었을 뿐인 관찰자의 시점에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핍진성(逼眞性)을 획득하려면, 기자 출신의 작가 장강명처럼 취재를 열심히 하든가 아니면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 이야기는 단순히 방구석의 모니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고 나서도 남는 문제는 있다. 나는 어떤 관점으로 쓸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그 관점이란 어떤 면에서 글을 쓰는 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관, 살아온 인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시대를 견디었고, 살아내었다. 그리고 지금도 통과하고 있다.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그 관점, 가치관,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써내려고 하고, 써내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단편 소설을, 지난 한 달 동안에는 SF 단편과 동시, 동화를 써서 공모전에 냈다. 그 이야기가 언젠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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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일


 

1.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해요."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1992): 미국의 유전학자로 198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2.

  8살 아이는 5살 때 엄마를 암으로 잃었다. 3년 동안, 기억 도서관에서 대출한 엄마의 기억 칩이 아이의 로봇에 장착된다. 마침내 기억 칩의 대출 기간이 끝난다. 기억 칩은 반드시 반납해야만 한다. 아이는 엄마의 기억 칩을 반납하러 기억 도서관으로 떠난다. 아빠와 함께 떠난 짧은 하루의 여행. 아이는 엄마와 두 번째 이별을 하고 돌아온다.

  어제, 동화 공모전에 내기로 한 동화를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SF로 써내느라 좀 골머리를 앓았다. 일반 단편 소설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에 어떻게든 세계관을 욱여넣으려니, 퇴고하는 내내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동화를 쓰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주인공인 8살 어린아이의 심정을 이해해 보는 것은 여느 단편 소설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또 달랐다.

  "그게 쉽지가 않아. 까다롭다고. 아주 까다로워."

  오래전, 다큐멘터리 감독님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나는 다큐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감독님은 촬영 대상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고 답했다. 영화는 시나리오에 적합한 배우를 캐스팅하면 되지만, 다큐는 다르다. 찍으려는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 다큐멘터리의 동물이든 그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시간이 걸린다. 언젠가 북극곰에 대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촬영 감독은 곰들을 찍기 위해 3개월이었나, 아무튼 몇 개월 동안 카메라를 세워두고 바라보기만 했다고 메이킹 필름에서 말했다.   

  나는 8살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쓰기 위해 8살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라는 정도로는 글을 써낼 수가 없었다. 바바라 매클린톡의 말처럼, 종양을 이해하려면 종양이 되어야 하듯 나도 8살 아이가 되고자 했다. 그게 쉬웠을 리가 없다. 나는 내가 8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떠올려 보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다홍색의 재킷 윗주머니에 콧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달아주었다. 입학 첫날의 수업도 생각이 난다. 흰색의 도화지 연습장에다 색연필로 구불구불한 곡선과 뾰족뾰족한 직선을 그렸었다. 참으로 8살 아이에게는 빡센 입학식 날이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심지어 담임 선생이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성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매우 파편적으로 남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뇌의 가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뇌는 아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유년의 기억을 과감히 삭제한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 어린아이의 생각과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다.

  아마도 많은 동화들이 실패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라는 존재. 몸만 아이인 주인공이 어른의 말과 생각을 구태의연하게 늘어놓는 그런 동화들. 내가 쓴 동화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무당은 동자신(童子神)이 실리면 철부지 아이 목소리를 낸다. 어떤 면에서 작가는 세상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그런 식으로 변환해서 글로 구현하는 구술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 않으니까, 무척 까다로우니까 어설픈 자기 서사의 반복 내지는 확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3.

  이블린 폭스 켈러는 자신의 안식년에 바바라 매클린톡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클린톡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서 매클린톡의 전기를 썼다. 그 책이 '생명의 느낌(1996, 도서 출판 양문)'이다. 이 책에는 유전학자 매클린톡의 일생이 담겨있다. 학자의 일대기이니만큼 뭐 그리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연구, 세미나, 동료 연구자들과의 교류, 이런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이어진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이러하다. 매클린톡은 그렇게 길고 지난한 학문적 여정을 도대체 어떻게 이어갈 수 있었을까...

  매클린톡은 옥수수에 매혹되어서 자신의 유전학 연구 대상으로 옥수수를 택했다. 한마디로 매클린톡은 옥수수에 미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 열정이란 한순간에 타오르고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매클린톡을 추동(推動)하게 만드는 근원으로서 인내심과 기다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한다는 건,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고 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글쓰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8살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쓰기 위해 그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까다롭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을 그래도 계속 해보고 싶다.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생명의 느낌'은 현재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다. 관심 있는 이라면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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