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선생님이 등록 요청한 논문은 학사 학위논문이잖아요. 그건 학위 논문에 해당하지 않아요. RISS에서 등록, 검색되는 논문은 석박사 논문만 해당하거든요."

  RISS(학술연구 정보서비스)의 담당자는 예의 바르지만 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학사 논문이 RISS에 등록되는 방법은 없는가 나는 물었다. '기타 논문'으로 접수하면 된단다. 내가 그 '기타 논문'으로 접수해야 할 논문은 영상원 예술사 학위 취득 논문이다.

  그 논문을 나는 쓸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는 반백이 되고, 급기야 폐렴까지 걸렸었다. 그런 사실 따위는 '학사 학위'라는 사실 하나에 무의미하게 수렴될 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 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문화체육부가 세운 국립 예술학교이다. 이 학교는 특이한 학위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학사 학위에 해당하는 '예술사'와 일반 대학원의 석사 학위에 해당하는 '전문사'가 그것이다. 내가 예술사 학위 논문을 쓴 지 15년이 지나서야 RISS에 내 논문을 등록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 논문을 표절해서 레포트 사이트에서 팔아 처먹고 있는 표절 잡범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표절 레포트를 발견한 것은 11월 10일이었다. 내 논문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지 궁금해서 논문 제목을 검색창에 써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뜨는 것이 그 표절 잡범이 작성한 레포트였다. 그 쓰레기 글은 아수라 백작의 얼굴 같았다. 내 논문과, 같은 과 1년 선배의 논문을 반반씩 짜깁기한 표절 레포트였기 때문이다. 그 머저리가 레포트를 등록한 때는 2010년. 그러니까 13년 동안 그 잡범은 남의 논문을 베껴서 돈을 벌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벌었을까? 스타벅스 커피 몇 잔 값이나 되려나? 나는 새삼 그 액수가 궁금해졌다.

  그 인간은 내가 피와 땀으로 써내려간 논문을 표절했다. 나는 그 파렴치한 행위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우선, 그 표절 잡범의 글을 대행해서 팔아주고 있는 레포트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허섭스레기 같은 그 사이트는 고객 서비스 따위는 아예 없는 모양이다. 내가 보낸 메일에 아무런 답이 없었다. 나는 그 사이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저작권 침해 신고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거기에 신고하려면 '증빙자료'가 있어야 한다. 즉, 내가 표절자가 베낀 원문 저작자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냥 단순하게 내 논문 파일 원본을 그 레포트 사이트에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학위 논문 원본을 그따위 회사에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다. 대신에 공신력 있는 RISS 사이트에서 내 논문이 검색되도록 하고, 그 링크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건 좀 시일이 걸리는 모양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표절 잡범이 베낀 내 논문의 일부분을 이미지 파일로 떠서 압축 파일을 만들었다. 마침내 오늘, 그 레포트 사이트에 저작권 침해 신고를 했다.

  그렇게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논문의 저작권을 새롭게 변경했다. 모교 도서관의 논문 등록 담당자가 그 과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내 논문의 영리적 목적의 이용과 내용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 논문을 dCollection에 새롭게 등록했다. 디콜렉션은 디지털 학술 정보 유통 서비스로 대학의 학술 정보를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지식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각 대학교의 학위 논문이 이곳에 등록되면 디지털화된 자료가 연구자들에게 제공된다. 이곳에서는 '학사 학위' 논문도 '논문' 취급을 해준다. 내가 영상원을 졸업할 때에는 학위 논문을 학교 도서관에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논문 제출 시스템이 바뀌어 예술사 논문도 디콜렉션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그동안 내 논문은 한예종 도서관의 전자 검색 서비스로만 한정적으로 검색될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 표절 잡범을 영상원 출신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외부인은 검색할 수 없는 영상원 졸업생의 논문을 베껴다가 비열하게 팔아 처먹은 그 잡범은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쓰레기 잡범이 13년 동안 표절 레포트로 푼돈이나 벌고 있을 때, 내 논문은 그 머저리의 레포트에 참고 문헌으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모교의 전자 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내 논문을 세상 밖으로 꺼낼 필요성을 느꼈다.

  RISS에 학위 논문이 아닌 '기타 논문'으로 등록되어도 좋다. 그래. 학사 학위 논문은 연구 가치도 떨어지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무수한 종이 뭉치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논문은 영상원에서 보낸 6년의 세월, 그 전부인지도 몰랐다. 난 가끔 그런 질문을 해본다. 내가 만약 다시 서른살로 돌아간다면 그때에도 영화를 공부하려고 할까? 참으로 괴롭고 슬픈 질문이지만, 나는 그 질문에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인생의 어떤 선택은 고통과 후회를 동반하는 것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표절 레포트 저작권 침해 신고 건이 어떻게 끝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바대로 표절 잡범의 쓰레기 글이 레포트 사이트에서 더는 볼 수 없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도둑질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훔치는 행위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타인이 애써서 만들어 낸 무형의 지식 자산을 교묘하게 탈취하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한다. 누군가 내 논문을 표절해서 무려 13년 동안 자신의 것으로 팔아먹었다. 그러한 지적 절도 행위를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 표절 잡범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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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 신고 후기:

  내가 레포트 판매 대행업체에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하고 나서 하루 뒤인 11월 24일 오늘, 업체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내가 신고한 자료는 삭제되어서 더는 서비스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업체는 해당 레포트를 등록한 회원에게 신고 내용을 알리고, 강력하게 경고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확인해 보니, 이제 그 표절 레포트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구글 검색어를 치면 레포트 제목은 그대로 나온다. 그 링크를 클릭하면 '저작권자의 신고로 삭제된 자료입니다'라는 안내문이 팝업창으로 뜬다.

  11월 10일, 내가 표절 레포트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그 레포트가 삭제되기까지 2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비록 그 표절 잡범의 사과는 받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일이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이 글을 읽고 마음으로 함께 응원해 준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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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1-23 23:19   좋아요 0 | URL
사필귀정!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응원하며 기다려 봅니다^^

꼬마요정 2023-11-24 00:08   좋아요 0 | URL
저도 응원합니다!!

푸른별 2023-11-24 12:03   좋아요 1 | URL
은하수님, 꼬마요정님. 따뜻한 응원의 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