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대혁명의 새로운 영화적 변주,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

  영화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중국 노년의 세대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표시한다. 분명 그들의 세대는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삶의 지혜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추억한다고 썼다.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으로서 감독 Meng Huo는 비극과 공포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를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포용한다. 이 영화는 마오쩌둥과 그의 정치적 오점인 문화대혁명이 지금의 세대에서도 여전히 영화적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6/crossing-border-zhaoguan2018.html


2.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 Return to Seoul(2022)

  영화 'Return to Seoul'은 관객을 한국인 입양 여성의 지난한 내적 여정으로 초대한다. 모든 관계에는 고통이 따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관객은 그 생경한 여행 속에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5/return-to-seoul2022.html


3. 기후 변화가 가져올 묵시론적 미래, Utama(2022)


  영화 'Utama'는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전지구적 파고에 스러지는 개인의 삶을 관조한다. 기후 변화는 거친 산악 지대에서 유목을 하며 살고 있는 원주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Utama'는 환경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인류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묵시론적 미래를 펼쳐놓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utama2022.html


4. Jerzy Sladkowski 감독의 다큐멘터리 2편: Bitter Love(2020), Vodka Factory(2010)

   'Bitter Love'는 사랑과 외로움, 관계에의 열망을 피상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Jerzy Sladkowski는 볼가강 유람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의 러시아인들이 직면한 내적 공허함을 드러낸다.

  'Vodka Factory'를 보는 관객들은 타티나아와 발렌티나 모녀와 같은 삶의 여정을 지금도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치 잘 연출된 한 편의 영화 같은 이 다큐는 주변부 여성의 삶이 인습적 사회 구조와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jerzy-sladkowski-2-bitter-love2020.html


5. 소녀의 어린 시절이 끝나갈 때, Children Of The Mist(2021)

  감독 Ha Le Diem은 이 다큐가 마음 속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Diem도 베트남의 소수 민족 출신으로 Diem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한 이들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Diem은 3년의 시간을 Di의 가족과 함께 했다. 거기에 더해진 1년의 시간은 촬영한 영상의 편집과 번역에 소요되었다. Diem은 몽족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을 했고, 신뢰를 쌓으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다큐를 인내심과 탐구심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 다큐를 통해 관객은 낯선 땅 소수 민족 소녀의 삶을 날것 그대로 마주한다. 무엇보다 이 다큐는 감독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Children Of The Mist(2021)'에는 여성 감독이 마음 속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children-of-mist2021.html


6. 경외와 관조, Haulout(Выход, 2022)

  러닝 타임 25분의 이 간결한 다큐는 관객에게 관조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들 대다수는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산다. 하지만 차킬레프처럼 자연과 진리에 매혹된 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길은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다큐 'Haulout'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열정을 지닌 이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3/haulout-2022.html


7. 사설 구급차 뒷편에서 바라본 도시의 심연, Midnight Family(2019)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사설 구급차'를 타고 거대 도시 멕시코 시티의 심연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의 다큐멘터리적인 모험은 성공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그가 다큐 제작자로서 오초아 가족과 맺은 견고한 신뢰에 있다. 무려 3년 동안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 뒷편에서 시간을 보냈다(기사 출처: www.npr.org). 이 다큐에 드러난 불법과 합법의 미묘한 회색지대는 오초아 가족의 관대한 허락이 없이는 담아낼 수 없다. 'Midnight Family'는 관찰 대상에 대한 신뢰와 이해,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의식도 보여준다. 구급차에서 밤을 보내는 오초아 가족을 찍기 위해 감독은 스스로 그 가족의 일원, 도시의 일부분이 되었다. 'Midnight Family'는 좋은 다큐멘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으로 손색이 없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3/midnight-family2019.html


8. 전후 미국의 필름 느와르 1: Raoul Walsh 감독의 'White Heat(1949)'

  전후 미국 여성들은 주부,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청받았다. 'White Heat'의 Ma의 캐릭터에는 가정에 안착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비난이 내포되어 있다. 영화는 Ma의 모성을 범죄자의 파멸적 최후와 병치시킨다. 그렇게 영화 'White Heat'는 안온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어머니와 모성을 단죄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2/1-raoul-walsh-white-heat1949.html


9.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1편: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GHQ는 일본 국민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과거를 참회하며 전후 재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원했다. 미군정 치하에서 제작된 영화 '은빛산의 끝'은 영화가 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문화 전략임을 입증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post-war-japan-moive-1946-1955-1-snow.html 


10.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2편: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희망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마음으로 무언가를 건져 올려내는 일이다. '어느 멋진 일요일'에는 폐허의 잔재 위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초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암울한 청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드리우는 일을 잊지 않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post-war-japan-moive-1946-1955-2-one.html


11. 비밀과 거짓말, The Quiet Girl(2022)

  영화 'The Quiet Girl(2022)'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물한다. 그것은 근원적 정서의 교감(交感)이다. 9살 소녀 카이트가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 기쁨, 그리고 아스라하게 감지되는 생의 의미까지 관객은 그 모든 것을 함께 한다. Colm Bairéad 감독은 아일랜드의 평화로운 풍광 속에 한 소녀의 내적 여정을 아로새겨 넣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quiet-girl2022.html


12. 12년의 기다림, Emily the Criminal(2022)

  감독 John Patton Ford는 자본주의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 그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영리하고 치밀한 이 스릴러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와 함께 쓰디쓴 성찰을 가져다 준다. 에밀리 역의 Aubrey Plaza는 뛰어난 현실 밀착형 연기로, 그리고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Emily the Criminal(2022)'에 놀라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12-emily-criminal2022.html


13. 실패한 부성(父性)의 서사, Guillermo del Toro's Pinocchio(2022)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원작의 세계를 과감하게 해체해 버리고 그 자리에 실패한 아버지들의 서사를 이어붙였다. 이 새로운 '피노키오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어른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이 맺고 있는 부모-자식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guillermo-del-toros-pinocchio2022.html


14. EO(2022): 당나귀 EO,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의 풍경으로 들어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이기적이고 야만적임을 보여준다. 영화 'EO'는 떠돌이 당나귀의 눈을 통해 인류세의 어둡고 파괴적인 이면을 폭로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eo2022-eo-anthropocene.html



15. Shirley Clarke의 실패한 타자성 탐구, Portrait of Jason(1967)
 

  부유한 백인 가정 출신인 셜리 클라크는 하층 계급 흑인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 셜리 클라크의 시도는 자신이 쉽사리 극복할 수 없는 계급 의식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탐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이슨 할러데이'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하고도 기만적인 면모는 클라크의 영화 세계에 쉽사리 포섭되지 않는다. 스티븐 윈터는 영화 'Jason and Shirley(2015)'로 셜리 클라크의 '흑인됨(blackness)', '비주류'에 대한 탐구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음을 드러낸다.

  역설적이게도 클라크의 그러한 실패는 다큐 'Portrait of Jason(1967)'를 보는 관객들에게 간결하고도 극명한 통찰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셜리 클라크는 'Portrait of Jason(1967)'에서 제이슨의 얼굴을 여러번 포커스 아웃(out of focus)시킴으로써 불분명하게 처리한다. 그것은 모호하고 알 수 없는 타자성에 대한 클라크의 영화적 각인처럼 보인다. 다큐의 주인공 Jason Holliday, 본명이 Aaron Payne인 그 인물은 1998년에 사람들에게 거의 완벽하게 잊혀진 채로 죽었다. 그의 삶에 대한 진실은 셜리 클라크의 기괴하게 분절된 초현실주의적 초상 'Portrait of Jason(1967)'에 잠들어 있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6/shirley-clarke-portrait-of-jason1967.html



16.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후 일본 사회에 대한 묵시적 통찰을 보여준다. 피의 메이데이 사건(Bloody May Day, 血のメーデー事件, 1952년 5월 1일) 이후, 일본은 좌익 세력을 분쇄하고 보수주의로 나아갔다. 아와다의 부친과 같은 전쟁의 주역들이 서서히 일본의 정치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전의 기억은 탈색되었다. 또한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그 위치를 재정립하게 될 터였다. 감독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은 전후 일본 사회의 고통과 혼란을 통렬하게 뒤틀린 블랙 코미디 영화에 담았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이치카와 곤의 진정한 걸작인지도 모른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6/post-war-japan-movie-1946-1955-3-mr-pu.html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milestonefilms.com     

 

***사진 출처: k-plus.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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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의 일이다. 학교 다닐 때 교양 과목으로 중국어를 1년 동안 들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아시아권 학생들을 위한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듣다 보면 외국인 학생들을 종종 볼 때가 있었다. 중국어 수업에는 말레이시아의 화교 출신 학생들 몇 명이 들어왔었다. 중국어가 유창한 그 학생들이 중국어 수업을 듣는 것은 게임으로 치면 규칙 위반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강사 선생님은 수강 신청은 허용하되, 평가는 그 학생들 수준에 맞추어 시험을 따로 보는 것으로 했다. 그 친구들은 첫 수업 시간에만 들어오고 다시는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첫 시간에 수강생들은 간단한 자기 소개를 했다. 나는 유학생 한 명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타지에서 공부하느라 어려움이 많겠네요. 고향이 그립지 않아요?"

  앳된 얼굴의 남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혀요. 거긴 너무 너무 더워요."

  그리고는 마치 그곳의 더위를 떠올리는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그 화교 남학생은 쿠알라룸푸르 출신이었다. 아, 쿠알라룸푸르는 그곳 사람들 마저도 적응하기 힘든 더운 곳이구나. 우리나라의 날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던 그 학생은 고국에서 잘 살고 있을까? 내가 취미로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가 2년이 되었다. 가끔 오래전의 중국어 수업이 떠오른다. 쿠알라룸푸르의 무지막지한 더위를 상상하게 만든 그 남학생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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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란 것이 있다. 어떤 일이 자꾸 안좋게만 풀려나가는 상황에 처했을 때 서양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그것과 같은 뜻의 우리말 속담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가 있다. 올해 들어서 나에게 생긴 이런 저런 일들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생각난다.


  엊그제의 일이다. 책상 스탠드 전구의 한 귀퉁이에 금이 가버렸다. 마침 전에 사놓은 전구가 있었다. 교체를 위해 스탠드에서 전구를 빼내려면 소켓 연결 부위를 앞쪽으로 당겨야만 했다. 전구가 단단히 결착되어 있어서 빼는 데에 애를 좀 먹었다. 그렇게 전구를 빼놓고 새것을 소켓 연결 부위에 끼웠다. 이제 전구를 스탠드 안쪽에 밀착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전구가 스탠드에 딱 붙는 순간, 작은 유리 조각이 눈으로 튀었다. 아마도 사놓은지 오래된 전구의 유리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얼른 눈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리 식염수로 여러번 눈을 헹구어 내었다. 거울로 이리저리 결막 쪽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눈 안쪽에 뭐가 들어있는 불편한 느낌은 나는데, 유리 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전구를 교체할 때, 안경을 쓰고 있었더라면 그 유리 조각은 안경알에 부딪혀 튕겨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전구가 잘 빠지지 않자 소켓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고 나는 안경을 벗어두었다. 맨눈 작업에 오래된 유리 전구의 불운이 겹치면서 결국 눈에 유리 조각이 들어가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는 불운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제까지 유리 조각 같은 것이 내 눈에 들어가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안과에 갔다. 의사는 유리 조각은 투명하기 때문에 그걸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의사가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눈꺼풀 안쪽을 면봉으로 살살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반짝이는 흰색 유리 조각 하나를 빼내었다. 더이상의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각막에 상처는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로도 눈에 무언가 있는 이물감과 통증이 계속 되고 있다. 아주 미세한 유리 조각이 아직도 결막에 남아있는 것인지 나도 알 수는 없다. 전구 갈다가 눈에 유리 조각이 들어가다니, 참 재수도 없지 싶다. 이런 안좋은 일을 겪을 때는 좀 달리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도 유리 조각이 각막에 박히거나 하는 것 보다는 낫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세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1.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생리 식염수, 또는 흐르는 물에 눈을 씻어낸다. 2. 이물질이 들어간 눈은 비비거나 만지지 않는다. 3.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안과를 방문한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의 유리의 느낌은 정말로 차가웠다. 그런 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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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분, 잘 들으세요. 백내장은 약 먹어서 낫는 병이 아닙니다. 수술을 해야한다구요. 그 약들 다 소용없단 말입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이 안과의 진료실은 문이 다 열려 있어서 대기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가 다 들렸다. 그렇군. 눈에 좋다는 무슨 무슨 영양제 같은 것은 다 소용이 없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가 지긋한 노인 환자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올해 들어 부쩍 눈이 침침해져서 나는 안과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세 명의 안과 전문의가 보는 이 병원은 환자들로 미어터졌다. 말 그대로 돈을 쓸어담는듯 했다. 검사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대기실에서의 시간은 짧았다. 의사를 만나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의사는 간결하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아마도 채 5분이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고, 백내장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주 초기 단계라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백내장'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나는 그것이 아주 나이든 노인 환자들의 질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백내장은 눈의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의사가 보여준 모니터에는 작은 유리 알갱이가 반짝이는 내 수정체 사진이 있었다. 언젠가 저 유리 알갱이가 더 많아져서 뿌옇게 되면 수술을 해야할 것이다. 백내장의 진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눈을 덜 쓰면 되나?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건조하고 피로하다면 사유(蛇油)성분이 들어있는 영양제를 추천합니다."

  그날 저녁, 인터넷 검색창에 '눈 영양제'를 넣고 이리저리 사이트를 들쑤시다가 나는 그런 글을 읽었다. 사유(蛇油)는 말 그대로 '뱀기름'을 의미했다. 아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뱀기름하고 눈 건강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비타민A', '루테인', '지아잔틴', 이런 것들은 들어봤어도 '뱀기름'은 처음 들어봤다. 뱀기름은 뱀을 잡아서 어떻게 특수한 과정을 거쳐 쥐어짜내는 것인가?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제로 '뱀기름' 영양제는 몇몇 제약회사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뱀기름을 어떻게 먹어? 그건 좀 그렇다.

  눈 영양제 따위는 소용없다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래도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해왔다. 이젠 거기에다 백내장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불안과 호기심이 뒤엉켜져서 '뱀기름'에 대한 나름의 인터넷 연구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도대체 '뱀기름'은 어떻게 눈에 효과가 있단 말인가? 뱀기름에는 오메가 3의 성분으로 알려진 EPA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눈의 건조함을 덜어주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오메가 3를 먹으면 되잖아. 그런데 뱀기름에 있는 성분이 일반적인 오메가 3와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오메가 3는 안구건조증, 고혈압을 비롯해 우울증까지 개선시킬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막상 임상 연구 결과를 보면 그 효능을 명확히 입증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뱀기름' 영양제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뱀기름에 대한 임상 논문이 있나 찾아보자. 나는 구글 검색창에 'snake oil'을 입력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쏟아져 나온 것은 '뱀기름'에 대한 서양의학계의 준엄한 꾸짖음과 멸시였다. 서양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 '뱀기름'을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은 약장수들이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영어 단어 'snake oil'은 관용적으로 돌팔이 약장수의 사기 수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물론 '뱀기름'에 EPA 성분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안과 관련 학회와 의사들은 '뱀기름'을 신뢰할 수 없는 동종 요법(同種療法)으로 취급하는듯 했다.  

  "딸이 지독한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했는데, 사유 성분 영양제 먹고 많이 나아졌습니다. 효과 좋아요."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좋은 후기도 있었다. 그래, 제약회사에서 저렇게 약으로 만들어 판매할 때에는 뭐 나름의 근거가 있겠지.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먹어보자. 나는 약국에 가서 그 뱀기름 영양제를 사볼 요량이었다. 어느 회사 제품이 좀 나은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뱀기름 영양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뱀기름'이라는 동물성 생약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과 '루테인'의 무지막지한 파워에 밀려서 그리된 모양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뱀기름 영양제를 만들었던 제약 회사들이 해당 제품에 대한 품목 허가를 반납하고 생산을 중단했다는 2021년도 기사들이 주르륵 떴다.

  시중 약국에서 씨가 마른 뱀기름 영양제를 찾아 발품을 팔고 다녔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이들처럼 내가 그 눈 영양제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뱀기름'이 들어있는 그 약을 먹으면 건조한 눈이 촉촉해지고 좀 나아질까 궁금하기는 했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뱀기름은 결코 돌팔이 약장수의 협잡을 뜻하는 'snake oil'이 아닐 터였다. 그렇게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내 인터넷 검색의 여정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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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모친이 치매 진단을 받은지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의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 매일 한 것이 있다. 바로 '인지 학습'이다. 인지 학습은 뇌 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학습 활동을 가리킨다. 낱말 풀이, 숫자 계산,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 종이 접기와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한다. 고시 공부 교재를 사들이듯 많은 교재를 사보고 어머니와 함께 공부를 해나갔다. 오늘 글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사실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이 정확히 어떤 것인가에 대한 표준적 지침이나 학습 도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각 지역마다 있는 보건소 부설 치매 안심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지 학습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그런 프로그램들도 아직까지는 시범 사업적 측면이 강하다. 인지 학습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교재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나는 보건복지부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 교재 개발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쓰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제 4차 치매 관리 종합 계획(2021년-2025년)'에 있다. 그것은 선제적 치매 예방과 관리, 치매 환자 치료의 초기 집중 투입, 치매 돌봄의 지역 사회 관리 역량 강화, 치매 환자 가족의 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 확대, 이렇게 구성된다.

  거기에서 '선제적 치매 예방과 관리'와 '치매 환자 치료의 초기 집중 투입', 이 두 분야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의료계는 인지 학습을 '인지 중재 치료'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거점으로 한 치료 모델로 끌고 가려는 입장에 서있다(출처: 메디칼업저버 www.monews.co.kr의 2021년도 기사). 나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질병-치료 모델'에 끼워 맞추는 것이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지 학습을 병원에서 '중재 치료'로 시행하게 된다면 반드시 '의료 수가'가 매겨져야 한다. 수가의 문제는 정부의 한정된 의료 재정과 연결된다. 또한 치료의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도 문제다. 의사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직접적으로 주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마도 종합 병원급 이상 대형 병원의 경우, 임상심리사들이 치료팀으로 참여해 해당 학습 치료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병원 주도의 인지 중재 치료가 치매 환자에게 효과적일까? 병원에서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얼마나 자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은 매일 꾸준히 해야하는 것이 최상이다. 현재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은 주간 보호 센터, 보건소 부설 치매 안심 센터, 요양보호사에 의해 보조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습, 이러한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주간 보호 센터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인지 학습에 대한 인증을 받은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주간 보호 센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다수의 주간 보호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인지 학습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일종의 개인 사업적 측면을 지닌 주간 보호 센터가 인지 학습과 관련된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일도 드물다. 요양보호사는 주로 신체 활동의 보조, 돌봄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 자격증에 인지 학습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치매 안심 센터의 경우 인지 학습 프로그램 자체는 무료로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수의 프로그램에 늘 신청자는 넘쳐 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치매 안심 센터의 인지 학습에 참여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치매 안심 센터의 프로그램 참여는 접근성과 이동 수단의 제한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환자의 보호자가 직접 환자를 매번 데리고 가서 학습 과정 동안 함께 해야 한다. 자가용이 없는 보호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환자와 동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자격을 검정하는 '청소년 상담사'처럼 치매 환자의 통합적 학습, 관리에 대한 국가 전문 자격증을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현재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는 체계성과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보건 복지부가 이 부분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전문 인력이 양성된다면 치매 요양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자의 요청이 있다면 그러한 전문 인력의 치매 환자 가정 방문 학습을 지원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부분은 장기 요양 보험의 예산에 배정하면 된다.

  나는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치매 환자의 가족 지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치매 환자의 돌봄 서비스는 요양 보호사 파견과 기관에 대한 장기 요양 보험 예산 지원에 치중되어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치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한다. 치매 가족을 돌보기 위해 가족 구성원이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그에 따른 수당을 지급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이다. 아동 양육 수당처럼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수당을 주고, 심리 상담과 같은 정서적 지원 서비스를 신설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나의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치매'라는 낯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지치지 않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이 길을 걷는 많은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의 이 글은 그런 생각에서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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