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自費) 출판. 말 그대로 자기 돈을 들여서 책을 내는 것을 일컫는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쓴 영화 리뷰가 470여 편 정도 된다. 그 정도 편수의 글이 쌓이고 보니, 나는 그걸 책으로 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무슨 '파워 블로거'도 아니고, '평론가'라는 직함도 없는 블로거의 영화 리뷰를 쌍수 들어 환영해 줄 출판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있기는 하다. 내 돈 들여서 책을 내면 된다. 자비 출판을 하는 거다.

  물론 그냥 생각만 그렇다. 자비 출판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는 했다. 그런데 자비 출판 이거, 생각보다 꽤 흥미롭다. 나는 자비 출판으로 소설책 세 권을 펴낸 사람의 경험담을 읽었다. 자비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가 있으며, 초판본으로는 대개 200부에서 300부 정도를 뽑는다고. 인세에 관한 부분이 일반 출판사와 좀 다르다. 일반 출판사가 저자에게 통상적으로 인세의 10%를 지급한다면, 자비 출판은 40% 정도를 저자에게 지급한다. 예를 들어 자비 출판으로 낸 책값이 1만 원이라면, 4천 원을 저자가 받는 셈. 나머지 6천 원은 출판사의 몫인데, 출판사도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그 돈을 먹는 건 아니다. 인쇄비는 물론 물류, 마케팅비도 거기에 들어간다. 자비 출판한 책을 누가 읽냐고? 읽는 사람이 없지는 않단다. 출판사가 마케팅 수완이 좋으면 이런저런 유통망 통해서 책이 서점에 깔릴 수도 있다.

  자비 출판으로 소설책을 세 권 낸 그 저자는 출판사의 인세 삥땅(?)을 막기 위해서 책 판매 부수 장부를 써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자신의 지인 누가 어디 서점에서 책을 샀다고 하면, 그걸 꼬박꼬박 기록했다고. 나중에 그렇게 합산한 책 부수의 인세 금액을 출판사에서 자신에게 지급한 액수와 비교해 보았단다. 그랬더니, 차액이 꽤 커서 출판사 대표에게 증빙자료 보내고 나머지 인세 금액 돌려받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인세와 관련한 분쟁은 대형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도 있는 일이니, 자비 출판의 경우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자비 출판 저자는 책 한 권 펴내는데, 돈을 얼마나 썼느냐 하면 300만 원이다. 누군가 그 글의 댓글에 이런 글을 달았다. 그 출판사 어디요? 나는 알아보니 500 부르던데. 자비 출판 경험자의 여러 글을 읽어보니 대략 300에서 500만원 사이의 금액인듯 하다. 자, 그럼, 돈을 마련해서 책을 낸다고 하자. 그런데 책 300권을 찍어서 대체 어떻게 하지? 나는 새삼 영상원 졸업 논문집 찍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논문집을 20부 찍었던가? 도서관에 논문집 제출하고,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렇게 20부를 겨우 다 소진했다. 그런데 300부를 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물론 내가 한 100부 정도 가져오고, 나머지 200부는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을 믿어보는 방법도 있다.

  이제 그 100부를 쪼개어 보자. 20부는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30부는 내 블로그의 독자들 가운데 원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나머지 50부는... 나는 궁리 끝에 전국의 도서관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 여러 공공 도서관에 내 책을 기증하는 거다. 그것도 일종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내 독자를 만나기 위한 투자 말이다. 아, 나는 자비 출판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그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뭔가 기분이 땅 밑으로 한없이 꺼져가는 것만 같았다.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꿈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자비 출판이라는 나름의 루트는 일종의 대안을 제공한다. 돈이 좀 든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책만 찍어내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 책이 생명력을 갖고 보다 많은 독자와 만나야 한다. 자비 출판은 그런 면에서 커다란 구멍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 독자, 내 책을 읽어줄 독자를 무슨 수로 어떻게 만나냐는 문제 말이다.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진 부자가 빌딩 위에서 지폐 다발을 뿌리듯, 책을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비 출판에 대한 서글픈 상상을 멈추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자신의 글에 대한 상품성을 입증하기. 나름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해 저자가 갖추어야 할 제1의 요건이다. 어떻게든 시장에서 팔리는 글을 써야한다. 당연히 출판사는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저자가 상품성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역량. 내가 그렇게 팔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데 시장에서 잘 팔리는 글은 대체 뭘까?

  "그냥 매일 쓰는 글이나 꾸준히 써."

  내가 자비 출판 이야기를 했더니, 동생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냥 쓸 수밖에 없구나. 내 글을 팔아서 먹고사는 일은 정말로 힘들겠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은 좋아하니까. 무언가를 써내는 일은, 씨앗을 심는 일과도 같다. 내가 펜을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작은 글 싹들은 자라날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 글이 만들어낸 숲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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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3 05:30   좋아요 0 | URL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는 모양입니다. 출판사는 돈을 벌기 위해 자비출판이란 미끼를 던지는 듯해요.ㅠㅠ 저도 지금껏 무척 많은 제안을 받아왔지만 응하지 않았어요. 뭐 자랑질하려고 책을 냅니까? 이게 제 생각이었어요.

푸른별 2023-12-13 08:34   좋아요 0 | URL
아, 호시우행님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언젠가는 호시우행님의 글을 알아봐주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책을 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글이 세상의 더 많은 독자를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니까요.

호시우행 2023-12-13 09: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