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링크: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2
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7949
"에이씨, 나 안할 거야!"
한 인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계단에 울려 퍼졌다. 열린 우리집 현관문 사이로 화가 잔뜩 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잘 안되어서 저러나 보네... 현장 인부들 가운데 지 성질 못 이기고 저러는 건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형님, 진짜 힘들어 죽겠어. 뭐가 이렇게 일이 많아."
"야, 나도 힘들다."
"아, 그럼 나하고 형님하고 일 바꿔서 할까. 바꿔! 바꾸자고."
퉁퉁한 남자는 일도 안 하면서, 우리집에서 작업하는 늙은 인부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는 '노가다의 세계'를 TV로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우리 라인의 보일러 공사가 있었다. 공사는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온갖 소음과 먼지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내가 보니까, 이 공사팀은 대략 7명에서 8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일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공사를 했다. 대략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앞 공정이 끝나면 다음 공정을 맡은 인부가 그 일을 했다. 하루 종일 대문은 열어놓아야 했는데, 낯선 외부인이 내 집에 그 어떤 예의도 차리지 않고 마구 드나드는 것도 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들은 결코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았고, 예의도 없었다. 아침에 제일 먼저 보일러 포장 뜯으러 온 인간은 전등을 켜놓지 않았다면서 큰 소리로 불평했다.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그런 현장직 노동자들은 대개 '밝기'에 민감했다. 작업 현장은 무조건 환하게 밝아야만 한다. 이건 아주 환한 대낮에도 적용된다. 낮에도 전등을 켜놓아야만 한다. 나는 아침까지도 집안의 짐을 치우느라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침의 그 노가다는 아주 무례한 인간이어서, 전등불이 안 켜져 있다며 대놓고 성질을 부렸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는 공사로 드나들 때마다 신발을 내팽개치는 소리에서도 드러났다.
이런 공사를 하게 되면 용역을 주는, 그러니까 공사비를 지불하는 집주인은 '갑'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을'이 되어버린다. 보일러 시공은 일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다. 대개 '노가다'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제 현장의 전권을 쥐고 있는 전문가 '갑'이 된다. 집주인이 시공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계약한 대로 공사가 무사히 잘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니 인부들이 성깔을 부리는 것도 좀 너그럽게 보아야 한다.
그런데 중간중간 인부들이 일해놓은 것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도 배관을 연결할 때는 테플론 테이프로 감아서 연결을 하는데, 그 테이프 감아놓은 꼬라지가 정말 웃겼기 때문이다. 테플론 테이프는 마감이 잘 안되어서 깃발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야, 내가 감아도 저거보다는 더 잘 감겠다. 정말이지 물이나 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난방 분배기를 교체하느라 깨어놓은 시멘트 덩어리는 분배기함 안쪽에 대충 쌓아두었다. 내가 그걸 치워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 그 일을 맡은 인부가 와서 철판으로 그냥 덮어버렸다. 언젠가 TV 뉴스에 나온 인테리어 괴담이 떠올랐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집주인이 1년 뒤에 베란다 누수로 바닥을 뜯었더니, 거기엔 온갖 건축 쓰레기가 다 있었다는. 그렇게 분배기함에는 지저분한 시멘트 조각들이 그대로 매장되었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나는 마지막 현장 인부가 내민 작업 확인서에 서명을 해주고 문을 닫았다.
"일도 못 하면서 곤조는 오지게도 부리네."
곤조. 근성(根性, こんじょう)이라는 뜻의 이 일본어는 영화 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 오래전의 일이다. 후배의 졸업 작품 상영회에 갔었다. 후배의 작품은 20여분 가량의 단편으로 장르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촬영이 좀 이상했다.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된 화면은 내내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아니, 왜 저걸 저렇게 찍었지? 나는 중간 휴식 시간에 그 후배를 만났다.
"근데 말이야, 왜 촬영을 그렇게 한 거야?"
"아, 그게요. J가 촬영 감독이었는데, 핸드헬드로 하겠다고 빡빡 우겨서... 내가 끝까지 그건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걔한테 밀린 거죠."
후배는 아쉬움으로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J는 잘 알고 있었다. J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에 속했다. 그게 좀 웃긴 게, 뭔가 대단한 전문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쓰잘데기 없는 자부심에서 오는 거였다. 아마도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과정에서 후배와 제작팀은 대략의 작업 과정을 합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J가 정작 로케이션 현장에 가서는 핸드헬드로 찍어야겠다고 곤조를 부렸던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후배의 졸업작품은 어쩔 수 없이 J의 뜻대로 촬영되었다.
1) 일머리도 없으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
2) 맡은 일을 잘하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
2번의 경우는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1번을 인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든 1번과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꼭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보일러 시공 인부들의 곤조 부리기. 나는 그런 것을 관찰하는 것도 작가로서 나름대로 흥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 인부들은 보일러 설치를 누군가의 집에 온기와 편안함을 더하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대충대충 해버려도 괜찮은 일이었을 뿐이다. 노가다와 전문가의 그 머나먼 간극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나는 수도 배관의 나풀거리는 테플론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감싸주었다. 테프론 테이프도 제대로 감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가'의 칭호는 결코 합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