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 로치(Ken Loach) 감독이 부르는 인터내셔널의 노래.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특수한 상황, 특수한 갈등이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현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로 파악되어야 한다. 민족주의/국가주의라는 하나의 '역사적 특수성' 안에서 사고된 '통일'의 주제를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외형적으로 추구하고 갈구하는 듯이 보이는 어떤 '소원'과 '소망'을 오히려 배반하면서 소위 '비정상적'인 분단 체제를 의도치 않게—혹은 '의도적으로'—고착시키고 악용하게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활동하고 있는 민족과 국가의 개념에 대한 천착과 그 극복에의 의지에 덧붙여, 동시에 이 '징후적' 개념들을 그 바닥과 한계에 이르기까지 '소진'시키고 그 '불가능한' 가능성의 실체와 마주하기를 병행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병행이 소위 '국가 및 민족의 소멸'이라는 지극히 '이상적'인 대안과 거리를 두는 것은, 하나의 '불가능성' 혹은 하나의 '아포리아'를 증거로 들면서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징후적인 것이기에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나 '탈근대'를 고민하는 입장에서라면, 근대와 탈근대 사이의 어떤 '명시적'이고 '환상적'인 대립에 대한 강조와 그 지양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극소의' 차이에 대한 섬세한 구분이 오히려 더욱 절실히 필요해지고 중요해지는 것. 이러한 병행이란 어쩌면, 가장 '현실적으로', 하나의 현상과 하나의 이상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기우뚱한 균형'을 잡아가려는 이론적/실천적 노력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기우뚱한 균형'에 이어 역시나 김진석의 개념을 차용하자면, '초월'의 자리란 어쩌면 바로 이러한 '포월(匍越)'의 자리에서 출발하고 완성되고 다시금 시도되는 것일 터.
▷ UN 안전보장이사회가 '보장'하는 '안전'은 무엇을 위한 안전이며 누구의 안전인가?
그러므로 '선한/건강한' 민족/국가주의가 따로 있고 '악한/건강하지 못한' 민족/국가주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국가주의는 그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항상 어떤 '불건강성' 위에 기반하고 기초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징후적인 '건강성'의 담론이다. 지연되고 미완된 근대적 과제로서의 통일이라는 개념은, 말하자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상정된] 혁명론'이나 '부르주아 사회 이후에 도래할 [것으로 상정된] 공산주의의 역사적 운동법칙' 따위의 논의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목적론적' 측면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는 <내 나라 내 겨레>의 문법과 어조 안에서, 내가 불끈하고 울컥하는 '민족적' 감상을 느끼면서도—마치 하나의 핏줄처럼 '도도히' 흐르는 민족과 국가의 저 이데올로기적 강수(江水)가 '체질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이 감정적 반응 속에서, 과연 누가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느냐만—동시에 그것이 정말 말 그대로 '옳은가' 하는 또 다른 반문을 품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저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은연중에 하나의 이상성으로 상정하는 어떤 '건강성' 그 자체가 하나의 근원적 '불건강성' 위에, 곧 어떤 도착과 패착 위에 기초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민족주의 혹은 '건전한' 국가주의의 조건들을 생각하는 방식은 일종의 '부정의 부정'을 통과할 수밖에 없을 텐데, '내 나라 내 겨레'로서의 '우리'가 보편사적 세계사에 '기여'하고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국인 출신 UN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따위의 '민족적 자긍심 넘치는' 일이 아니다(소위 '노동자/민중의 전 세계적 단결과 통합'의 여정이 거쳐 온 역사적 패착의 길 위로, 또한 소위 '세계 평화를 위한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는 UN 자체가 바로 그 '평화'에 대해 극도의 무력함을 노출했던 저 모든 실패의 여정들이, 지극히 '상동적'으로 겹쳐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한반도의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상황 그 자체가 역으로, '불건강성'을 '건강성'으로 덮고 있는 저 민족/국민국가 체제의 상징적이고 폭력적인 '일반성'에 대해, 일종의 파열하는 '실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바로 그 점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세계사 속의 이러한 '실재'로 이해된 한국사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세계사적 기여'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한반도와 통일이라는 주제를 '세계'라는 하나의 상징체계에 대한 일종의 '치명적 실재'로 이해한다. 내가 민족/국민국가 안에서 모종의 '건강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실재가 지니는 '수행적 불건강성'일 것이며, 내가 '조국'이라는 단어로 생각하고 품게 되는 나만의 '민족적 감수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대상은 또한 한반도가 지닌 세계사적 '실재'로서의 역사적/국제[정치]적 파국의 지위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위 '민족해방'의 길과 '민중민주'의 길은 감성의 분할 방식에 대한 일종의 전복과 이종교배의 작업 위에서 겹쳐지고 있지 않은가. 또한 여기서 이러한 '이종접합'이 하나의 정치적 과제로, 아니 숫제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로서 제출되고 있지 않은가.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완전한' 완성을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이자 선결조건으로 이해되고 추구되는 통일이란, '선진국화'에 대한 저 모든 도착적인 담론들의 기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통일의 담론으로부터 이탈한 지점에서 비로소 통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분단'이란—이 '분단'이라는 단어로부터, 그 단어를 '신비화'하고 '신격화'할 수 있는 모든 수식과 형용의 요소들을 과감히 차단하고 생각하건대—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저주'이자 '축복'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에게 '통일'이란 근대적 상식의 복원과 복기라기보다는, 바로 그러한 상식의 가능조건들을 비판하고 파열하는 데에까지 나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역사적/현실적 상황은 어쩌면 '통일'이라는 근대적/민족적 개념을 통해 일종의 '사고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지극히 관념적인 여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그런데 이것은 '관념의 약점'이라기보다는 '현실의 강점'이 아닌가, 혹은, 이러한 관념의 '사고실험'은 현실의 '핵실험'만큼이나 위험하고도 모험적인 줄타기인 것은 아닌가). 소위 '영구평화'와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일개 민족/국민국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그렇다고 그러한 국가들의 '연합'으로 상정된 UN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상황'은 어쩌면 그러한 근대적 국민국가들 사이의 '평화'라는 상식의 체계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균열의 양가성을 더욱 노출시킬 수 있는 '역사적 소여' 그 자체는 아니겠는가. 이러한 역사적 소여로부터 도출되는 하나의 '목적론적'이고 '역사주의적'이며 '지정학적'이고 '세계사적'인 한반도의 '소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흔해빠진 정치가들이 지극히 유토피아적으로 제시하는 '동북아 정치/경제의 허브' 따위가 될 수 없다(이러한 '힘의 균형점'으로서의 정치적 위치 부여는 칸트적인 의미에서 '현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라캉적인 의미에서 '환상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한반도의 근대와 한민족의 통일이라는 도착적이고 착종된 근대적 '병리성' 자체를 백안시하는 저 '균형점'의 담론은 그 자체로 가장 '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러한 시작은, 하나의 끝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또는, 이 난국/파국으로서의 끝은, 여전히 어떤 사유의 시작을,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나의 시작을, 이미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통일을 하나의 '끝'이 아니라 하나의 '시작'으로 보자는 가장 '통속적'이고도 가장 '민족적'인 자기다짐 내지 자기암시는 바로 이러한 근대적이고 병리적인 '불건강성' 속에서 파악될 때 오히려 그 자신의 '통속성'과 '민족성'의 굴레를 털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이러한 물음은 또한, 가장 민족적인 노래인 <내 나라 내 겨레>도 아니고 가장 국제적인 노래인 <인터내셔널 가>도 아닌, 지극히 '중립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상정된 또 하나의 익숙한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어떤 '악보'를 다시금 눈을 씻고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3. 제2바이올린, 혹은 두 번째 사중주: 19세기의 테제, 마르크스를 위하여
▷ In other words, this is Marx's 'profile', literally.
제2주제는 19세기의 테제, 곧 마르크스(Marx)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이 불러일으키는 '유물론적 이름'에 관한 악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Feuerbach)의 이름을 문제 삼았다면, 곧 포이어바흐의 이름을 통해 기존의 유물론에 대해 다시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여기서 나는 바로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마르크스라는 이름에 대해,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그의 이름은 어떻게 오는가.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이름이 한국어 안에서 갖는 표기의 차이와 그 파장에 대해서이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와 '맑스'의 차이에 대하여. 외국어 표기의 표준적 규정에 의거해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Marx'를 '마르크스'로 쓰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또한 '맑스'라는 표기 역시나 결코 낯설지 않다. '마르크스'라는 표준적 표기 규정에 대해 '맑스'를 고집하는 것, 나는 거기서—이 두 종류의 표기법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그 어떤 가치판단적인 규정도 배제하고 말하건대—일종의 '순수함'에 대한 무의식적 열정을 본다. 하여 나는 상상하고, 공상해본다, 어쩌면 이는 곧, '맑고자' 하는 어떤 구별 짓기에의 열망, '마르크스'라고 탁하게 말하지 않고 '맑스'라고 맑게 말하려는 욕망, 혹은 '그들'의 입으로 저주하듯 부르는 '마르크스'의 이름과 '우리'의 입으로 힘차게 불러보는 '맑스'의 이름을 구별하고자 하는 어떤 '순수한' 구획과 대립의 열정은 아닐 것인가, 하고. 어찌하여 소위 '주류 담론'의 매체들에서는 표준적 외국어 표기법이라는 '미명'하에 '마르크스'라는 표기를 고집하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제도적'이며 '비표준적'인 매체로 분류되는 어떤 책들에서는 '맑스'라는 표기를 고집하고 있는가(혹은 '주류적'인 매체라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창비' 같은 곳에서는 왜 굳이 '맑스'라는 표기를 고집하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이는 외국어 발음에 관한 한국어 표기의 확정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심급, 곧 단순히 언어학적인 이론에만 국한된 지극히 '중립적'인 심급에서만 결정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Marx'의 이름을 어느 쪽에서 어떻게 (한국어로) 전유하고 소유할 것인가 하는 '선택'과 '독점'의 문제는, 단순한 표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명명법의 투쟁이 되고 있는 것(덧붙여, 하나의 계급을 '근로자'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로 부를 것인가 하는 명명법의 문제 역시 이러한 '마르크스/맑스'의 표기법이라는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첨언해두자).
▷ 천명관, 『 고래 』, 문학동네, 2004.
이 이름의 문제를 잠시 에둘러 가보자. 2005년에 소설가 김영하는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 대한 단평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어쨌든 이런 결과로 '정통 문학 수업'을 받고 작가가 되면 '문학이 될 수 있는 것'과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에 정통하게 되겠고, 미지의 영역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보다는 자기 속으로 파고들며 이른바 '내면'과 '문체'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반면에 소설에 비해 훨씬 제약이 강한 장르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 소설판으로 넘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를테면 영화판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라면? 시나리오는 이야기를 적는다는 점에서는 소설과 같으나 그 제약의 강도에서는 오직 희곡만이 그와 견줄 수 있을 뿐이다. […] 지난해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천명관의 『고래』는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준다. […] 그러나 쇼가 끝난 후,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이런 의문이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인물의 내면, 묘사의 밀도를 생략하고 '순수한 이야기'만으로 가득 채운 이 작품이 과연 현대 소설의 나아갈 바일까? 만약 그렇다면 대저 소설이란 무엇인가. 정말 이야기의 버라이어티쇼, 그것뿐이란 말인가.
ㅡ 김영하, 「소설, 너는 누구냐?」, 『시사저널』 797호 참조.
이 단평을 읽고 난 후 나는, 김영하의 저 마지막 문장과 똑같이, 근대문학의 질문들 가운데 가장 진부하다고 할 수 있을 다음과 같은 물음을 다시금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설이란 무엇인가. 김영하의 글에서는 이상하게도 하나의 표리(表裏)가 공존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표'와 '리'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글, 하나의 딜레마를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는 것. 오직 바로 이러한 점에서만 이 글은 '매력적'이며 또한 '징후적'이다. 김영하는 천명관의 『고래』가 단지 "순수한 이야기"들만의 나열이며 "인물의 내면, 묘사의 밀도를 생략"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고래』가 그러한가 하는 의문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바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김영하 스스로가 순서를 바꿔 글의 초입에서 이미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흥미로운 의문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 천명관 씨,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십니까?
'내면'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이 그 주제로 삼고 있는 개인의 공간, 그리고 그러한 개인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문학적 방법론인 심리 묘사에 대한 근대[문학]의 등록상표(trademark)가 바로 내면이다. 김영하가 예로 드는 "잡담, 괴담, 객담, 민담, 루머" 등의 다양한 이야기 형태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소설'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예를 들어 돌이켜보자면, 어떤 의미에서 김윤식의 저 모든 저작들은 바로 이러한 '[근대]소설이 [근대]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혹은 '[근대]소설이 아닌 것은 결코 [근대]소설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거대한 천착의 작업이 되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모든 소설이란 적확하게 말해서 언제나 '모더니티 소설'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반드시 '내면'에 대한 어떤 식의 '성찰'과 '반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시 한 번 김윤식의 예를 들자면, 그는 박상륭의 작품들 중 『평심』이 근대적 소설의 형식으로 귀화한 한 '패관(稗官)' 혹은 '잡설가(雜說家)'의 '귀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직 『평심』만이 비로소 근대적 소설 비평의 '유효한' 대상이 될 수 있었음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김윤식, 「자이나교도 박상륭의 고고학적 글쓰기론」, 박상륭, 『소설법』(현대문학, 2005). 353-354쪽 참조], 오직 이러한 모더니티의 형식으로 도래하는 것만이 하나의 '소설'이—'잡설'이 아니라—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윤식의 기준은 확고하며, 또한 그러한 '확고함'에 의해 그 비평 작업의 상징계는 가장 '확고하게' 동요한다, 바로 박상륭이라는 한국[근대]문학의 가장 극단적인 '실재' 안에서). 이렇듯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소설이 아닌가라는 문제는 기준점만 확실히 잡는다면, 그리고 여러 가능한 기준점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선험적(a priori)이기까지 한 '모더니티'라는 규준만 잡는다면, 아주 확실하고 명확하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 명확한 기준은 바로 그 명확성 때문에 흔들리고 요동친다. '모더니티'는 바로 이러한 동요하는 유동성 안에서, 오직 그 안에서만 가장 명확한 개념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서 가장 '모더니즘적'인 개념으로 자기증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영하의 저 글은 그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에 대한 기호론(嗜好論)이지—결코 이것이 '기호론(記號論)'이 아님에 유의하자—소설의 세태와 그것의 나아갈 바를 걱정하는 일종의 '시국선언문'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김영하가 『고래』를 단순히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쇼"라고 느끼는 것은 그가 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기호와 기준 때문일 뿐, 그렇다고 실제로 『고래』라는 한 편의 소설이 '소설'이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며 또한 소설이 나아갈 바가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도 『고래』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그러므로 이는 또한 나 자신의 한 '기호(嗜好/記號)'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선호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미 『고래』는 제도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하나의 소설이 되었고 또 되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근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학 장르인 소설, 동시에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 '불시착'한 가장 '불확정적'인 문학 장르이기도 한 소설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자 '마력'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또한 '문학이 될 수 있는 것'과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의 구별과 결정이란, 그 자체로 이미 '감각적인 것의 분할'이라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것.
▷ 김영하 씨께도 천명과 씨와 동일한 질문을 드립니다.
사실 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이렇다: 모더니티와 산업사회를 배경으로 태어났던 '소설'이라는 장르의 윤곽과 범위 자체가 이미 오래전에 지각변동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부한 상황진단 못지않게 더 진부한 사실은, 김영하의 글에서 잠깐, 아주 잠깐 드러났듯, 그 지각변동의 여러 현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을 수 있는 것이 또한 바로 장르들 간의 교접과 장르 밖으로의 이탈이라는 점이다. 내면과 묘사의 밀도에 대한 김영하의 안타까운 호소는 바로 이러한 '잡종교배'와 '무단가출'에 대한 염려의 잔소리, 소설의 '순수한 혈통'에 대한 완고한 고집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일 수 있다(김영하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들이 종종 '영화적'이라는 세평을 듣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까, 아니면 싫어하는 것일까, 또한 시나리오와 희곡이 갖고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어떤 '불완전성'이란 실은 '내적으로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된] 소설 장르의 '완전성'으로부터 역으로 반추되어 규정된 성격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이 또한 주지하다시피, 소설의 순수한 혈통이란 기껏해야 18세기에 시작된 한 특정한 가문의 문학적 핏줄일 뿐이다. 이 혈통의 '역사적' 성격은 그 피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의해 언제나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을, 모든 이야기의 형식이 지니고 있는 이 가장 단순한 진실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미 예고한 바대로, 김영하 스스로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처음부터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런 결과로 '정통 문학 수업'을 받고 작가가 되면 '문학이 될 수 있는 것'과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에 정통하게 되겠고, 미지의 영역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보다는 자기 속으로 파고들며 이른바 '내면'과 '문체'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혹은 김영하는, 기껏해야 소설 장르가 지닌 '역사적 상대성'에 대한 강조에 머무르려 하는 것인가? 어쩌면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어떤 '징후'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무의미일 것이다. 김영하의 글은 '소설, 너는 누구냐?'라는 제목을 갖는다.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20세기 전반에나 '유효하게' 물을 수 있었던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영하는, 마치 취조하듯 혹은 통성명하듯, 소설이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작품은 상품이 되었고 다시 상품은 신격 또는 신격에 준하는 인격을 얻었다. 물신(物神, Fetisch)에 대한 마르크스의 놀라운 통찰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소설 역시나 이미 오래전에 물신이 된 것이었다. '무엇'임을 묻지 않고 '누구'임을 묻는 것, 나는 바로 이 의문사의 '사소한' 차이 안에서 모더니티 문학의 가장 확실하고 가장 최종적인 '거대한' 징후를 목격한다.
▷ 김사량, 그의 사진, 빛이 바래 있다, 말 그대로.
이 누구냐는 물음 앞에서, 이 이름에 대한 물음 앞에서, 나는 다소 생뚱맞은 비약적인 대답을 내놓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미나미(南)'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김사량의 언어를 빌려 대답하고자 한다. '소설은 누구냐'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소설의 '이름'으로, 소설의 이름을 전유하기 위한 투쟁의 '이름'으로, 곧 김사량의 '언어'로 답하고자 한다. 김사량의 소설 「빛 속에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협회 안에서는 어느새 미나미 선생으로 통하고 있었다. 내 성(姓)은 알다시피 '남'으로 읽혀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일본식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 동료들이 그런 식으로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런 호칭이 매우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나 나중에는 역시 이런 천진한 아이들과 같이 뒹굴며 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위선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또한 비굴한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타일러왔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만약 이 아동부 중에 조선 아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억지로라도 나를 '남'이라고 부르도록 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열심히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런 호칭은 내지(內地) 아이들은 물론 조선 아이들에게도 감정적으로 나쁜 영향만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ㅡ 김사량, 「빛 속으로」, 『빛 속으로』(오근영 옮김, 소담, 2001), 22-23쪽.
'남(南)'이라는 성을 '미나미'로 발음하게 되는 것, 그 이름을 통해 '내지(內地)'와 '외지(外地)'의 경계를 그리게 되는 것은 다시금 저 '네이션(nation)'의 자장 안에서이다. 나는 피식민지인이 피식민지인에 대해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로 무엇을 쓴다는 사실을 민족주의가 가질 수 있는 어떤 효과적이고 저항적인 글쓰기의 방법론으로 보는 시각에는 전혀 동조할 수 없다. 그것이 단지 정치적으로 '일차적'이기만 한 분석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이중어 글쓰기'라는 근대적/식민지적 문학의 한 극단에 위치한 김사량의 언어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쟁점은 보다 더 '극적'인 것인데, 내가 인용한 부분은 특히나 고유명의 '번역' 혹은 '표기'라는 문제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적'인 것이 된다. 번역이란 단순한 일대일대응의 옮기기가 아닌 것, 번역이란 오히려 무엇을 잃거나 덧붙인 상태에서의 어떤 변환 내지 전화(轉化)를 의미하는 것이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어떤 상실이거나 덧칠이다. 번역에 있어서는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대일대응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가감 없는 번역이란 없고 곡해 없는 해석이란 무의미하기까지 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김사량의 소설 안에서 "선생"으로 표상되고 있는 '근대적 지식인'이란, 특히나 피식민지인으로서의 지식인이란, 그런 자립적이고 독자적인 옮김의 존재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그러므로 이러한 '식민지적' 언어의 특수성이란 그 자체로 근대적 번역이 처한 일종의 '보편성'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해하지 말기를, 그는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또는 기대 '이상'으로—곧 필요 '이하'나 기대 '이하'가 아니라—착종(錯綜)된 존재일 것이다. 이 착종된 존재에게 언어의 선택이란 곧 삶의 선택, 아니 차라리 죽음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왜냐하면 이러한 언어의 '선택'이란 다시 말해 곧 '네이션'의 선택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거국적 저항도 민족적 배반도 아닌 하나의 '도약', 그것도 마르크스식(혹은 맑스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죽음을 무릅쓴 도약(salto mortale)'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이션'의 선택이라는 의미에서 언어의 선택은 또한 하나의 '경제(economy)'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선택'이란 다양한 선택지들 사이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이 전혀 아니다. 언어와 네이션은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면에 이러한 선택은 바로 그러한 극도의 '부자유성'으로 인해서 역설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선택이 되기도 한다(따라서 이러한 선택의 '자유'에 대한 성찰은 그 자체로 가장 '근대적인' 사유에 속하는 것). 언어와 네이션이란 선택할 수 없는 태생적인 것이라는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전제에 대해, 바로 그러한 전제의 한 최극단인 식민지 안에서, 그 '선택'에 대한 회의와 상념은 바로 그러한 ‘태생’과 '핏줄'이 언어와 맺고 있는 것으로 상정된 하나의 '절대적' 관계성 자체를 의문에 부치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 하지만 또한 선택할 수 없는 것의 '선택적인 성격' 그 자체를 노출시키는 이러한 선택의 불가능성이 바로 우리의 '근대'와 그 '근대적' 언어가 제출하는 가장 문학적이고도 정치적인 문제이다. 김사량의 언어가 가장 근대적인 공간 안에서 그 근대성의 가장 외부적인 '주변부'를 가장 '중심적으로' 건드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와 네이션의 선택의 문제가 그의 소설 안에서 가장 예리하고 민감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사량이 말하는 공간, 곧 '빛 속'의 공간이란, 빛 그 자체에 결부된 오래된 은유처럼, 일종의 개안(開眼)을 위한 광명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어둠을 보기 위한 눈의 서툰 깜빡거림, 일종의 폐안(廢眼)을 위한 조건, 빛이 만들어내는 어둠의 조건이기도 하지 않은가.
▷ 메치니코프의 이름: 아편이 될 것인가, 유산균 발효음료가 될 것인가.
하나의 기억. 2000년 언저리의 어느 때 즈음이었던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던 한국/민주 양대 노총의 합동집회를 마치고 동석한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한국노총 관계자 한 명이 내게 들려주었던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는 언젠가 한 번 마르크스(혹은 맑스?)의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시골집에 내려갔다고 한다. 시골집의 막둥이 동생은 그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음... 아, 생각났다! 메치니코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좌중은 일제히 웃어 넘어갔지만,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또한 그 질펀한 웃음 속에서 각자 머금을 수밖에 없는 흥그러운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다. 동생이 그렇게 티셔츠 속의 인물을 '알아보자' 옆에 있던 어머니가 이어 장단을 맞추듯 이렇게 말씀하시더란다: "맞다, 맞아! 생명 연장의 꿈!"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농담을 넘어선다(그리고 나는 이렇듯 '농담'이라고 하는 그 자신에 대한 제한적 규정을 넘어서는 농담을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생명 연장의 꿈'을 예의 내 나름의 방식으로 '확대'해석해보자면, 마르크스/맑스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은 어쩌면 메치니코프의 저 퀭하니 꺼진 역시나 수염 가득한 얼굴로 착각되고 오해돼도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마르크스와 맑스 사이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와 메치니코프 사이의 차이가, 혹은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보다 더 '감각적'이며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아니 '맑스'는, 어쩌면 '메치니코프'의 다른 이름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며, 또한 그러한 종교를 대신하게 된 과학은 어쩌면 그 아편의 지위마저도 물려받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인민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 아편을 필요로 한다는 것, 곧 '실재'의 이름으로 환상의 '이름'을 걷어내기 전까지는, 인민은 아편이라는 '환상'의 기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아편의 이름이 '마르크스'이든 '맑스'이든 혹은 '메치니코프'이든 간에. 그렇다면 문제는 보다 극명해지지 않는가. '아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유산균 발효음료'가 될 것인가(그리고 여기서는 다만, 이 질문이 단지 어떤 상황을 '희화화'하기 위해서 던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만을 첨언해두자).
4. 비올라, 혹은 세 번째 사중주: 20세기의 테제, 벤야민을 위하여
▷ 벤야민, 그의 두통은 '실재적'인 고통일 수도, '상징적'인 기호일 수도 있다.
제3주제는 20세기의 테제, 곧 벤야민(Benjamin)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가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악상에서 시작한다. 이른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의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세계시민주의자(코스모폴리탄)가 오히려 더욱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반대로 민족주의자(내셔널리스트)가 더욱 코스모폴리탄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는 사실이다. '코스모폴리탄의 민족주의'라는 형용모순이야말로 한국의 근현대사 속의 특정한 정치적 흐름과 운동들을 규정짓는 하나의 대표적 은유가 아닌가(반대로 '내셔널리스트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일종의 대구를 이루는 은유, 하지만 또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 자체로 '국수주의자의 사대주의'를 바로 연상시키는, 보다 '악질적'인 은유가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은유에 '불과(不過)'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은유는 이데올로기의 거울이며 일종의 징후이자 증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파와 좌파의 착종된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수놓고 또한 그 역사를 수놓고 있는 이 은유들의 잔치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은유는 여러 미시적인 단계에서 작동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메이지(明治) 시대 최고의 엘리트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테러리스트' 안중근을 민족의 영웅으로 평가하는 데에 실로 익숙하고 친숙하다(실제로 나는 중학교 때 '안중근 의사는 사실은 결국 테러리스트가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던져 교무실에 불려갔던 적이 있다). 이러한 지극히 자연스런 '민족적' 평가 안에는, 당연하게도, 일종의 '중립적' 윤리성을 가장한 '민족주의적' 편향성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평가의 '기술'을 '국민학교'에서 배웠다(요즘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초등학교’에서 배우겠지만,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단지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꾼다고 해서 그 학교라는 제도가 지닌 '국민-국가적' 특성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그러고 보면 이름과 그 이름의 변환에 대한 이 순수하고도 순진한 맹신은 또한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국민학교'에서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울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안중근 의사가 지극히 '당연하고도 올바르게' 살해한 '악당'의 보스였을 뿐이니까(그러므로 이 애국심 어린 대항적 민족/국가주의란 또한 그 자체로 얼마나 '조폭적'인가). 이로부터 다시 몇 개의 예시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비약시켜보자면, 우리는 그 '국민학교'에서 심지어 '김산'이라는 이름은 들을 수조차 없었고, 백석의 시를 읽어주거나 임화의 비평을 소개해주는 교사는 거의 전무했다. 그렇다면 저 '국민학교'의 교육이란 과연 내셔널리즘적인 것인가 코스모폴리탄적인 것인가, 이참에 묻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몇 가지 '이름'들을 더 들어보자. 우리는 윤이상, 이응노, 송두율(이들 이름 사이의 어떤 '공통점'이 느껴지는가) 등에 대한 국내의 이른바 '주류적인' 평가에 깔려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코스모폴리탄'의 이름들에 대해서 가장 극우적인 '내셔널리즘'의 잣대를 들이댈 때, 그 이름들이 이루어놓은 소위 '보편사적'인 가치는 마치 민족/국민국가의 '취미란'에나 기입해 넣어야 할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본업과 취미의 대차대조표와도 같은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의 이 빈약하기 그지없는 '이력서' 한 장. 그 이력서 안에서 저 모든 이름들의 자리는 지워지고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가장 거대한 이름, 그러나 동시에 가장 왜소한 이름만이 처량하게 남는다. 이 근대는 무엇인가. 우리의 근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일종의 '이중-번역된 근대(double-translated modernity)'가 아닐 수 없다(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중-번역'의 또 다른 이름이 아마도 임화가 말했던 '이식문학'이 될 터). 예를 들어 나는 '이광수'라는 이름, 곧 한국 근대문학의 등록상표('트라데말크')와도 같은 그 아이콘의 이름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라는 이름의 '한국적 번안'을 목격한다. '번역'에 앞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근대적 '번안'의 풍경과 기제이다. 단순한 '문화사' 혹은 '세계사'가 아니라, 문화의 고고학적 '징후사'와 세계라는 개념의 계보학적 '성립사'를 쓰기 위해, 다시 말해서, '객관적'이고 '초극 가능한' 근대의 역사를 쓰고 닫고 봉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대라는 전염병의 병리학과 역학조사라는 메타-이데올로기의 궤적을 쓰고 열고 해방하기 위해.
이러한 쉽지 않은 작업의 첫걸음을 위해서, 우리는 아마도 먼저 언어에 대한 하나의 '집착'에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벤야민은 「번역가의 과제」에서 다음과 쓰고 있다:
그러므로 번역(Übersetzung)은, 역설적이게도, 원문을 적어도 보다 더 결정적인 언어의 영역으로 옮겨 심는(verpflanzt) 것이다. 왜냐하면 원문은 더 이상 이 이외의 그 어떤 중계(Übertragung)를 통해서도 옮겨질 수 없으며, 항상 오직 이러한 언어의 영역 안에서만 새롭고 다른 부분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ㅡ Walter Benjamin, "Die Aufgabe des Übersetzers", Gesammelte Schriften, Band IV-1,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1, p.15.
이를 일종의 전도된 낭만주의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또한 이를 그저 '낭만주의'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들로부터 먼저 시작하자. 이어 벤야민은 또한 이렇게 쓰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원문의 성립과 같은 시대에 있어서는, 번역의 언어가 원문처럼 읽힌다는 것은 번역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문자 그대로의 번역에 의해 보장받게 되는 충실한 번역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작업에서 언어의 보충(Sprachergänzung)에 대한 거대한 갈망(Sehnsucht)이 드러난다는 점이다."(같은 책, p.18) 여기서 문제는 어떤 '보충'으로서의 번역/중계, 곧 원문 전체에 대한 포괄이 아니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원문보다 더 '결정적일' 수 있는 어떤 언어의 영역, 곧 이식과 이행의 영역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집착 아닌 집착이란 내게는 순수한 '언어' 자체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불순한 '교통(Verkehr)'에 대한 이론과 열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집착이 내게 단순한 '아집'이나 일종의 '절대주의'로만 여겨질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 언어의 ‘순수성’이란 언제나 언어 사이의 교통과 번역이 지닌 어떤 '불순성'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순수 언어(die reine Sprache)'는, 바로 그 순수 언어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에서,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므로 '순수 언어'란, 하나의 확고한 동일성으로서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행과 이식의 행간에서, 언뜻, 순간으로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것일 터. 그런데 맥락이 여기까지에 이르고 보면, 나의 언어, 나의 공간이란, 그 이행의 순간들과 이식의 지점들을 포착하고자 하는, 무수히 헛되거나 헛되이 무수한, 그런 덩어리들이 비우고 있고 그런 틈새들이 채우고 있는, 하나의 장소에 다름 아닐 텐데, 그렇다면 아마도 나의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다름 아님'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여기서 '다름 아니다'라는 표현이야말로 어쩌면 '이중-번역'된 '이중-부정'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아니겠는가).
번역이란 무엇인가, 라는 ‘사실’에 대한 질문, 혹은, 번역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당위'에 대한 질문,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은 번역의 '정의(definition/justice)'를 묻는 이중적인 의문문이기도 하다('정의'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했을 때, 문과생은 'justice'로, 이과생은 'definition'으로 옮긴다는 저 웃지 못 할 오래된 농담을 떠올려보자). 세계시민(코스모폴리탄)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조잡한 인류애의 총합이 낳은 결과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다언어와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대한 요구는 하나의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당위'가 아니라 하나의 인문학적이고 사상적인 '위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일종의 부정적 '모토'가 지닌 어떤 '진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다문화주의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불능성의 위기일 것이다. '문화적 상대론'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보편적 정의(justice)로 정의(definition)되는 다문화주의의 윤리란, 혹은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는 소위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류애 넘치는 배려와 관용의 윤리란, 그 자체로 존재론적이고 사회적인 '번역의 위기'를 봉합하고 봉인하려는 하나의 무력한 '당위'—하지만 무력한 그만큼 동시에 '폭력적'이기도 한 하나의 당위—가 되고 있지 않은가. '번역'의 층위를 인구어(印歐語)-한국어 관계의 층위에 국한시키지 말고, 오히려 한국어-동남아시아어 관계의 층위에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번역의 문제가 어떤 정치적/국제적 쟁점의 심급에 있는가를 보다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언어적 실천'이 되지 않는가.
▷ 여기에 왜 에드문트 후설의 사진이 들어가야 하는가?
예를 들어, 당연하게도, 인구어의 구조는 한국어의 구조와 상이하기 때문에—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 유명한 작가의 상상력 넘치는 '알타이 연합' 같은 구상이 또한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는가—우리가 흔히 '번역문 투'라고 부르는 어투와 어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이 비문인가 아닌가를 점검하기 위해 주어와 술어의 정확한 호응, 주절과 종속절의 적절한 포함관계를 따지는 것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역시나 지극히 냉정하게 말하자면, 결코 '우리식'은 아니다(곧 가장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문장 구조의 분석과 교정은 전혀 '민족적'이지 못하다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읽으면서, 쓰면서, 그렇게 한다. 이는 인구어의 번역과 교육이 낳은 '긍정적'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렇듯 하나의 구문과 하나의 문장 안에서 품사를 가르고 구분하는 행위는 분명 지극히 근대적/서구적인 입장의 언어관으로부터 나온 것이기도 하다. 확장해서 말하자면, 번역 안에서는 쫓아야 할 두세 마리의 토끼들이 '공존'하고 '병존'하고 있는 것일 텐데, 흔히들 언어적 '구조'의 정합성이라는 문제만을 쫓다가 '저들'말도 '우리'말도 아니게 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하게 되지만, 그래서 또한 가장 훌륭한 '의역'의 가능성을 찾곤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직역'의 영역에서 더욱 치밀하게 파고들어갈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또한 내게는 바로 이 점이 벤야민의 저 수수께끼 같은 글 「번역가의 과제」를 계속해서 다시 읽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번역의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곧 원문의 언어가 가진 구조와 성격을 가장 잘 '환기'시키는 언어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이 여전히 '한국어'로 남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의문으로 제기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의문은 가장 적극적으로는 '국어'의 문제, 곧 '국가-언어'로서의 '한국어'의 문제와 결부하여 생각해야만 하는 물음이기도 한 것이다. '코스모폴리탄의 국어'라는, 일견 형용모순으로 보이는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내게는 이러한 '국가-언어'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문제로 남는다. 이러한 번역에 대한 상상과 몽상, 언어의 '간극' 속에서만 존재하는 '순수 언어'에 대한 공상은, 어떤 구체적인 번역물에 대한 비난이거나 비판이라기보다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조금 '과(過)하다' 싶을 정도로 과(科)하는, 번역에 대한 일종의 '이상적' 규준이 된다. 단, 이러한 하나의 '이상성'은 순진하고 단순한 '유토피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그 희랍적 어원에서 또한 마찬가지로 부정어 접두사를 포함하고 있는—'아포리아적'인 것으로, 곧 하나의 '불가능성'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 아도르노의 '섹시한' 망중한(忙中閑).
여기서 먼저 분명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바로 저 벤야민의 '순수 언어'가 서 있는 정확한 위치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벤야민의 사유 안에서 이러한 '순수 언어'가 차치하는 지위란, 아마도 벤야민 그 자신의 이론적/학문적 위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설 한 자락을 제시하고자 한다. 벤야민의 '순수 언어'란 것이 과연, 우리가 그 말에서 손쉽게 '유추'하고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순수'하거나 '근본주의적'인 개념인 것인가 하는 물음, 바로 이 물음이 또한 나로 하여금 벤야민의 저 잠언과도 같은 글 「번역가의 과제」를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추동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순수 언어'의 정체를 벤야민 자신의 이론적 입지와 연계시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텐데, 이는 벤야민이야말로 가장 '주변적'이며 '파편적'인 글쓰기에 있어 가장 큰 성과와 예감을 보여주었던 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으나, 그의 글은 독일 고전철학과 괴테 이후의 독문학 또는 당대의 유럽 문학/문화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또한 그의 글쓰기 전략에는 동시대의 다른 이론가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오롯이 도드라지는 어떤 구별점이 있는 것이다. 극명한 대조의 예를 통해 이를 형상화해보자면, 벤야민의 글은 후설(Husserl)의 글과도 다르고 아도르노(Adorno)의 글과도 다르다. 이러한 '변방'과 '주변부'의 저자로서의 벤야민에게 도대체 '순수 언어'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저 '직역'에 대한 사유와 천착은 바로 벤야민의 이 '순수하지 않은' 순수 언어, 가장 '주변적'인 '중심'언어에 대한 물음의 형식으로밖에는 이루어질 수 없지 않을까. 모든 번역이 '숙명적'으로 일종의 '의역'이 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사실 벤야민의 출발점도 이러한 '숙명적 의역'의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는 또한 '제대로 된' 직역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가장 훌륭한' 의역일 것이라는 '보편적' 명제의 실제적/실정적 정체를 문제 삼는다. 이에 나는, 벤야민의 '신비주의'라는 것을, 이 '순수 언어'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저 '직역'의 영역과 '의역'의 영역이 상충되지 않고 양립가능하게 만나게 되는 어떤 '신비한' 지점, 바로 그러한 간극과 이행으로서 번역이 갖게 되는 성격이 바로 저 '순수 언어'의 자리는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저 '순수 언어'의 '순수성'이란 오직 이러한 '불순한' 교통 안에서만 사유되고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물음들을 던져보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러한 역설적 접근이 벤야민의 '신비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오는 중이다. 그렇게 보면 '순수 언어'라고 하는 것은, 동일성에 기초한 하나의 ‘실체’로서, 곧 일종의 '메타-언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번역과 이행과 이동의 사이와 간극, 그 틈새와 골 안에서 하나의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렇게 이해된 '순수 언어'란, 그 말 자체가 주는 손쉬운 인상과는 다르게, 결코 '순진무구'하거나 '근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주변적'이고 '매개적'인 역설적 '순수성'을 띠게 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곧, '순수 언어'란 '타자의 언어'와 '타자의 이름'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 일종의 '보편적 고유명'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수 언어'와 '직역'의 문제, 혹은 '원문의 구조와 어감을 환기시켜줄 수 있는 번역'에 대한 내 생각의 시발점은 바로 이러한 '순수 언어'의 '불순성'이 되고 있는 것. 이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에서 '부정적'인 길을 걷는 것, 혹은 언어들 사이의 '오인/왜곡/변형/재창조'의 길을 보다 적극적으로 따라가 보는 것일 텐데, 또한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저 '순수 언어'에 대한 상상과 사유는 기실 언어의 가장 '불순한' 성격에 대한 뒤틀린 직시가 되고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5. 첼로, 혹은 네 번째 사중주: 21세기의 테제, 랑시에르를 위하여
▷ 랑시에르를 읽자, 다만 찬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삐딱하게 하기 위해, 불화를 확인하고 산출하기 위해.
제4주제는 21세기의 테제, 곧 랑시에르(Rancière)의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가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주체화'와 '정체성'의 악상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는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또는 셈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셈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미학적 체제' 안에서 하나의 예술 혹은 예술가가 어떻게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꿔 지극히 '국부적으로' 살펴볼 텐데, 어쩌면 정치적 주체화란 곧 몫이 없는 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하나의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또한 미학적/감성적 혁명이기 때문이었던 것. 책을 읽는 사람이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그 역(逆)은 왜 아니겠느냐마는!).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배움'의 이야기에 앞서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가끔씩 이 두 종류의 인간, 곧 책 읽는 인간과 음악 듣는 인간 사이에 어떤 '장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는 사실이다. '두 종류의 인간'이라고 아예 거창하게 구획 짓듯 분류하고 서로 격리시키기까지 해버렸지만, 이러한 분류법 자체는 실은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 즐길 수 있는 다른 여러 '매체'들이 있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매체의 종류와 그 향유의 조건들을 규정하는 정치경제적 전제들을 백안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더. 그런 의미에서 이는 어쩌면 가장 국지적인 분류, 혹은 가장 주변적이고 어쩌면 가장 부차적이기까지 한 '상부구조'에 대한 분류의 모습을 띠겠지만, 이러한 '장벽'이란,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딱 그만큼, 뛰어넘기가 극히 어렵다. 여기서는 특히 나의 이 문장 '형식'에 주목하기 바란다. 나는 결코 '사람들이 이 장벽을 뛰어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벽은 사실 쉽게 뛰어넘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또한 '사람들이 이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장벽은 그리 만만히 뛰어넘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도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여기서 문제는 '언어(문자)-지향'의 인간과 '감각(소리)-지향'의 인간 사이에서 상정할 수 있는 '체질'과 '성향'의 사상의학적 분류법 같은 것이 아니다.
▷ 이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진이다, 리처드 기어(Richard Gere)의 사진이 아니라.
사이드(Said)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오늘날 문학계 지성과 일반 지식인들은 음악 예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이 거의 없고,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음악 기초이론을 배우는 경우가 드물며, 카라얀과 칼라스 같은 몇몇 유명 연주자들의 음반을 구매하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 실제에 관한 한 사실상 문맹이다. 서로 다른 연주와 해석 및 양식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모차르트, 베르크, 메시앙 음악에서 화성과 리듬이 어떻게 다른지를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ㅡ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마티, 2008), 169쪽.
이 말에 누군가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반성에 가까운 안타까움 한 조각을 마음속에 머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이 문장들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착잡한 상념들은 몇 가지 의문들을, 말하자면 사이드의 이 문장 안에는 '유럽과 비유럽 사이의 학문적/예술적 경계와 지배관계'에 대한 성찰이 누락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그리고 '계급 사이의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차이에 따른 교육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등을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문학계 지성"과 "일반 지식인"이 꼭 음악의 기초이론을 배워야 하는가, 혹은 단순히 카라얀이나 칼라스 '따위'가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이고 '전문적'인 음악적 향유를 할 수 있는 조건들을 꼭 갖춰야 하는가 하는 등등의 많은 질문과 반발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책 읽기의 능력과 악보 읽기의 능력을 단순히 '총체적으로' 서로 결합시키는 '르네상스적 인간'에 대한 어떤 희구나 요청이 아니라, 다시 말해 상이한 '능력'들 사이의 어떤 일괄적인 결합과 통합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적으로' 사고하고 쓰고자 하는 어떤 시도, 곧 '음악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행하는 어떤 노력에 대한 강조에 다름 아니다(따라서 이러한 도약에의 시도는 어쩌면 마르크스적 'salto mortale'가 지닌 예술적 판본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지식인 비르투오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이드의 문제의식이란 내게 이렇게, 이런 걸음으로, 그리고 또한 이런 그림자로 다가오는 어떤 물음의 한 자락이다: 지식인 비르투오소란 무엇인가.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는 또한 저 랑시에르적인 '감각적인 것의 분할(le partage du sensible)'이라는 개념과 지극히 '문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내가 굴드에게서 느끼는 '문제적' 지점은 언제나, 그의 손이나 피아노가 아니라, 그가 앉아 있는 저 '의자'로부터 기인하고 도출되는 무엇이다.
사이드가 지식인 비르투오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꼽고 있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문제적' 특성에 관한 사이드의 글을 읽어보자: "그가 비르투오시티를 의식적으로 재설정하고 재정립하여 도달하려 한 결론은 일반적으로 연주자가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여 담론을 만들어내는 지식인들의 영역에 속한다."(같은 책, 176쪽) 이 문장 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어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견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는 바로 저 "일반적으로"라는 부사이다. '일반적으로', 곧 여기서는 어쩌면 '뭉뚱그려' 이야기했을 때 그렇다는 것, 또한 이렇게 '일반적으로' 혹은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서는 달리 이를 쓸 수 없었다는 것, 아마도 저 "일반적으로"라는 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모호한 '비언어(非言語)'의 지점일 것이다. 곧 굴드가 목표로 했던 지점은 "언어를 사용하여 담론을 만들어내는 지식인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일단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가 '언어'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때론 음악이 '언어적'이기도, 때론 언어가 '음악적'이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 음악은 언어가 아니며 또한 그 역(逆) 역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섬세하게 구분되어야 하는데, 비슷한 관점에서 사이드가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굴드가 비르투오소로서 거둔 성취의 극적인 면은, 그의 연주가 명백한 수사학적 양식을 통해 전달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악 연주자들이 시도하지 않고 어쩌면 시도할 수도 없는 특정한 유형의 진술로서도 전달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전문화 시대, 반인본주의적인 원자화 시대에 연속성, 합리적 지성, 미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주장하는 진술이다."(같은 책, 188쪽) 이러한 "특정한 유형의 진술"은 물론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진술'과 '서술'을 업으로 하는 이들, 곧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자들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인 것도 아니다. 굴드의 이러한 특성이란, 바로 이러한 모호함과 경계성 위에서 번뜩이는 어떤 '확실성', 곧 가장 합리적인 지성이 빛을 발하는 미(美)의 가치를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합리성으로, 가장 '언어적이지 않은' 언어(음악?)로 '진술'하는 행위에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이것이 또한 바로 굴드의 '말년/후기적' 특성이 지닌 파국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진술'이 아닐까. "결국 굴드에게서 바흐(Bach)의 음악은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과 무질서에 맞서는 데서 본질적인 힘을 과시하는 합리적 체계의 등장을 보여주는 원형 같은 것이다. 이것을 피아노로 실현하려면 연주자는 스스로를 소비하는 대중이 아니라 작곡가와 일치시켜야 한다."(같은 책, 188쪽)
이 문장 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이것을 피아노로 실현하려면"이라는 구절이다. 굴드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부정과 무질서에 맞서는 데서 본질적인 힘을 과시하는 합리적 체계의 등장을 보여주는 원형" 같은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런 것만이 될 수 없다. 말하자면 저 "원형"이란 그 화려한 수사와 엄청난 무게감에 비할 때 오히려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오로지 '피아노로써[만] 실현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결국 언어적 진술이 아니라 피아노로써 '실연(實演)'하고 '실현(實現)'해야만 하는 것이다(어쩌면 이러한 숙명적 '감행'은 그 자체로 음악이 선사할 수 있는 어떤 '감동'과 연계되어 있는 것일 터이다). 내가 모호함과 경계성 위에서 번뜩이는 확실성이라고 말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 안에 있다. 또한 나는 "스스로를 […] 작곡가와 일치시켜야 한다"는 지식인 비르투오소의 이 '선택적 책무'가, 연주자가 연주에 임할 때 작곡가의 '의도'나 '정신'과 혼연일체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따위의 지극히 '낭만적인' 지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자 한다. 굴드가 한 명의 뛰어난 '비르투오소'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연주의 과정을 통해 작곡의 과정이 새롭게 다시 '창안'되는 장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또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바로 굴드가 생각했던 바흐적 '인벤션(invention)'의 진정한 의미였다. 연주 자체가 선사할 수 있는 희열과 더불어 '작용 중인 현재' 혹은 '작곡 중인 작품'을 가장 '현재적'이고 '진행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그러므로 내가 저 '지식인 비르투오소'라는 정체성을 생각하면서 다시 묻게 되는 오래된 질문은 실로 간단하고 단순하다: 책 읽는[쓰는] 자와 음악 듣는[만드는] 자는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헤어지는가. 이 둘의 언어적이고도 음악적인 '정체성'은 누구의 밤을 통해 구성되고 또한 해체되는가.
6. 갱신되는 반복, 혹은 피아노 독주곡의 끝과 처음: 사티를 위하여
▷ 사티의 도돌이표 없는 도돌이표.
같은 것의 반복, 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것의 반복, 아니 반복됨으로써 오히려 동일하지 않게 되는 것들의 반복이 있다. 테제들은 동일한 것들을 동일하지 않은 방식으로 반복하고 그 반복 안에서 어떤 전복을 이끌어낸다. 혹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테제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 위에서 하나의 보편성을(칸트), 유물론적이지 않은 것 위에서 하나의 유물론을(마르크스), 역사적이지 못한 것 위에서 하나의 역사성을(벤야민), 그리고 정치와 가장 멀어 보이는 것 위에서 하나의 정치를(랑시에르) 수립하고 정식화한다. 나의 현악사중주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곡의 피아노 독주로, 혹은 피아노와 현악사중주를 포함하는 한 곡의 피아노 오중주로, 바뀐다, 변주된다, 반복된다. 주지하다시피, 에릭 사티(Erik Satie)는 자신의 음악을 일종의 '가구'로서 이해하고 '가구'로서 제작했다(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ambience'의 효시일 것이다). 사티는 <Vexations>에서 단 한 개의 테제를, 곧 단 세 줄로만 이루어진 한 장의 악보를 제시한다. 이 악보의 지시문은 이 짧은 악구가 840회나 반복되어야만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1963년에 존 케이지(John Cage)가 몇 명의 피아니스트를 기용하여 19시간가량을 '소모'하면서 이 곡을 발굴/초연했지만, 결국 이 단 세 줄의 악보를 결코 '완주'하지는 못했다(그렇다면 이러한 'vexations'이란 누구를 '약 올리고' 무엇을 '괴롭히기' 위함인가). 이러한 840번의 반복 안에서, 일종의 '가구'로서의 사티의 음악은, 가장 커다란 하나의 가구, 말하자면 하나의 '분위기(ambience)'를 형성한다. 피에르 앙리(Pierre Henry)처럼 음악을 이해하고 추구하려는 경향의 가장 '극단적인 극단'이 있다고 한다면, 혹여 그것은 어쩌면 '피에르 앙리'라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분위기 그 자체를 하나의 '음악'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닐 것인가. 조성이 무조 속으로 개입하고 침입했던 바르토크의 악보와는 다르게, 사티의 악보는 그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진행 속에서 조성과 무조를 교차시키고 뒤섞어버린다. 이토록 짧은 악구의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반복 안에서, 이러한 조성과 무조의 끊임없는 교차와 혼합은 어떻게 '들리는가', 곧 어떻게 '감지'되는가? 여기서는 조성이 무조를 침입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조가 조성을 파괴하는 것인가? 혹은, 거의 24시간 동안 지속될 840번의 반복 후 우리가 '감지'하게 될 모종의 '통일성'과 '일관성'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 840번의 반복이 종국에 맞이하게 될 하나의 끝을, 우리는 과연 '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는 테제들의 한 역사와 그 가능성/불가능성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독’하고 '변주'해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해독(解讀/解毒)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곧, 포이어바흐에 관한 마르크스의 저 마지막 테제를 비틀어 차용하자면, 문제는 테제들을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테제의 '불가능성'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서두에 붙인 제사(題詞)로도 모자라 글의 말미에도 또한 동일한 시인의 동일한 시로부터 추출한 또 하나의 제사를, 그것도 시작이 아니라 말미에, 하나 더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것으로 끝이 아니므로, 이 글은,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의 시작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혹은, 더 냉정하게 말해서, 이 글로는 오직, 하나의 시작밖에는 가리킬 수 없으므로. 나는 하나의 악보로 시작한 이 글을 또한 하나의 악보로 닫고자 한다. 끝이 없는 시작과 반복의 악보로, '400번의 구타'가 아니라 '840번의 반복'을 지시하고 있는, 단 한 장의 악보로. 내가 이 글을 닫고 이 곡을 마치면서 덧붙이고자 하는 하나의 '악보'는 고로 840번 반복되어야 하는 하나의 '테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제들의 역사에 대한 연주와 변주는, 그리고 그 '불가능성'에 대한 어떤 실천의 형식은, 아마도 840번이라는 반복의 회수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랄, 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In my end is my beginning.
— T. S. Eliot, Four Quartets
▷ Erik Satie, <Vexations>.
*) 사족(蛇足)을 하나 첨부하자면, 아직 바르토크의 현악사중주(총 여섯 개)와 사티의 피아노 곡들을 들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일청(一聽)을 강권하는 바이다(단, 사티의 <짐노페디>는 논외로 한다). 나는 최근에 어떤 우발적이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ㅡ하지만 '우발적이고 우연하지' 않은 계기란 게 과연 존재할까?ㅡ오랜만에 다시금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들에 열광하고 있는 중이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 글의 정리도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8번을 들으면서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들으면서 수학 문제를 풀기도 했는데 말이다! (2010. 2. 15.)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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