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통신 2013-1호                                                                              부산 0 0고 2학년 1

세상은 늘 상대적인 것

 

안녕, 새로 2학년 1반이 된 19명의 숙녀와 14명의 미남들~

난 너희랑 1년 동안 같은 반에서 살게 된 0 0 0 샘이라고 한다.

오늘 너희를 만난 첫 날, 몇 가지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몇 자 적으려고 해.

우리 학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함께 생활하지만, 사실 담임 샘이랑 소통할 기회가 그닥 많지만은 않으니 말이지. 미리 좀 친해두자는 거야. 우리반은 문과반이니깐, 내년까지 같이가야 하는 운명이잖아? 너희 서른 세 명이 내년 종업식날, 모두 건강하고 환한 모습으로 진급하고, ‘너희랑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란다.

내가 봄방학 첫 날 아마 그런 이야길 했을 거야. 세상은 절대적이지 않다.

 

이 선분에 손을 대지 않고, 이 선분을 더 짧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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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부리라구? 요술을 부려 볼까?

그 마법은, 요술은 바로, 상대적인 거야. 이 선분 옆에 선을 하나 더 그으면 돼. ~일게.

우리학교는 좀 특수한 학교다 보니, 친구들이 다들 똑똑해 보일 거야. 그 옆에 자기가 서면 작아 보이고 말야. 그건 왜 그럴까? 그래. 상대적이기 때문이지. 너희가 만약, 그냥 기장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내신 성적도 좋고 자신감이 넘칠 수도 있을지 몰라. 거꾸로, 너희가 지금 모두 영재학교에서 배우고 있다면? 다들 자격지심에 침울해 있지 않을까? 암튼, 샘이 하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는, 세상 만사는 혼자 존재하지 않으므로, 단편적인 면만 보고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말자는 이야기야. 시각을 바꾸고 주위를 둘러보면, 전혀 슬퍼할 일도 아닌데, 혼자 우울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는 게 삶이란다. 9점 문제란 게 있어. 9개의 점 안에서 아무리 해법을 찾아도 답이 없는 문제. ㅎㅎ 아홉 개의 점을 연속해서 네 번만에 직선으로 연결하는 문제.

너희는 모두 한 사람씩 훌륭한 개체란다.

나도 마찬가지 훌륭한 샘이야. ^^

근데 늘 긴 작대기의 옆에 대보면 짧은 작대기가 되듯, 그런 맘을 먹으며 살기 쉬운 게 인생이야. 그치만 어쨌든 힘든 일이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엄마나 아빠라고 생각하고 찾아올 수 있음 좋겠다. (전화 010-0000-9750, 메일 shy3042@hanmail.net)

세상이 좋으니 카톡으로 필요한 이야길 나눌 수도 있을 거고 말야.

다음 이야기.

너희가 학급 운영을 자치적으로 잘 해 줬음 좋겠다.

교실도 깨끗하게~, 아침에 등교하는 시간도 규칙적으로~, 아침 식사 거르는 친구도 없이~, 그리고 친구들 사이도 화기애애하고 재미있게~,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알아서 잘 해 줬음 좋겠다. 안 하면, 샘의 잔소리는 끝도 없을 거야. 완전 잔소리쟁이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 진로 · 진학에 관심이 많을 거야.

공부하는 방법 역시 너희들끼리 공유해서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학년말엔 지금보다 쑤욱~ 몸도 성적도 마음도 성장해 있으면 좋겠구나.

1. 매일 잠들기 전에 다음날 공부할 계획을 세우면서 기뻐하면 좋겠다. 툴툴대지 말고~

2. 밥먹는 시간엔 충분히 행복하게 밥먹기에 열중하면 좋겠다. 단어장은 나중에 외고~

우리 몸의 소화액 70% 이상은 뇌에서 분비하도록 관리하는데, 단어외고 스트레스 받으면 밥이 소화돼서 우리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힘들겠지?

3. 수업 시간 중, 수동적으로 조용히 듣기만 하지 말자. 시험에 날만 한 건, 암기! 표시해 놨다가 쉬는시간이나 자습시간에 암기하고, 복습! 표시해 둔 건 복습하고, 질문? 표시해 둔건 질문해서 알아두는 일이 학습에서 중요함은 말 안 해도 알겠지? 선생님들이 우리반 들어오는 걸 정말 행복해 하도록, 능동적으로 수업을 듣기 바란다.

4. 진로와 연관지어 한 가지의 ‘자기 세상’을 가지면 좋겠다. 입학사정관제가 늘어나는 건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유리하단다.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한국의 요리, 음식문화, 전통음식 이런 것을 부지런히 블로그에 모아두고 연구한 학생이, 대학 진학 시 성적을 고려하지 않고 ‘식품영양학부’에 진학한 사례도 있거든.

5. 다음 주,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점으로 삼기 바란다. 이번 모의고사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건 아니잖아? 최선을 다해 친 다음, 선생님과 멘토링을 해서 약점을 보완하다 보면, 내년 3월엔 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너를 보게될는지도 몰라. 그러고 싶지? ^^

6. 너희 3년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펙이나 내신보다는, 꾸준히 오르는 모의고사 성적이란다. 그런 친구는 자신감을 잃지 않아. 당연히 내신도 차근차근 발전하고, 나머지 일도 덩달아 잘되는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된단다.

너희랑 내가 만난 건, 보통 인연이 아닌 거야.

선생님을 만난 것을 일생 일대의 행복한 사건이라고 지금부터 생각하렴.

(그러기 싫은 사람은 다른 반으로 가든가 ㅋ~ 바꿀 수 없다면, 즐기라구.)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랬나? 현재를 즐겨라~! 즐거워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에겐 ‘현재’를 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거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말도 있어.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간 죽게 돼 있어. 너희가 사흘 뒤에 죽게 된다면…. 오늘 행복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겠어. 그치?

그럼 수능 따위 집어 치운다구? ㅎㅎ 늘 열정적으로 살자는 거지. 가능한 한~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영국에서 ‘창의성 퀴즈’에서 ‘런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하는 문제에 가장 우수한 답은 ‘좋은 친구와 가는 길’이랬어. 좋은 친구가 어딨냐구? 좋은 친구를 갖는 방법은, 내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란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친구는 자석처럼~ , 나타나게 돼있다구.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래.

참 멋진 말 많지? 더 멋진 말을 앞으로 많이 들려줄게.

우리, 정말 멋진 한 해를 만들자~ 파이팅~!

멋진 2학년 1반 친구들을 만난 첫 날,

너희를 만나 행복한 담임 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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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3-0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우리 막내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편지네요.
담임샘의 사랑이 묻어나는...^^

글샘 2013-03-02 21:39   좋아요 0 | URL
이놈들은 아무래도 같은 반을 2년 담임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라서요...
올해는 신경을 좀 쓰려하고 있답니다. ^^

아무개 2013-03-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졸업할때는 졸업 앨범뒤에 친구나 선생님들이 졸업축하 글을 써주었어요.
그때 한 선생님께서 "oo는 세상의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써주신게 기억이 나네요. ^^

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멋진 한해 만들어가시기를!

글샘 2013-03-02 21:40   좋아요 0 | URL
저는 졸업할 때는 특별한 이벤트를 하지 않구요. 때때로 애들한테 담임 통신으로 자극도 주고 할 얘기도 하는 편입니다.
좋은 선생님이셨네요. 한 아이마다 글을 남겨 주셨다니...

수퍼남매맘 2013-03-0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창 시절에 담임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수퍼남매는 가끔 가다 글샘 같은 담임을 만나 첫 날 이런 담임편지를 받아 오기도 하더라고요.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편지군요.
감동입니다.

글샘 2013-03-02 21:42   좋아요 0 | URL
ㅋㅋ 예전엔 샘들이 이렇게 말랑하지 않았죠.
맞아요. 저도 가정에서 믿음을 가지시길 바라는 맘에서 쓰는 편지입니다.
감동까진 아니에요. ㅎㅎ

세실 2013-03-04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보림이반 담임샘? ㅎ
보림이도 2학년1반 이거든요.
좋은 가르침 잘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도움되는 글, 감사합니다^^

글샘 2013-03-05 02:44   좋아요 0 | URL
보림이 우리반으로 보내세요. ㅋ~
이뻐해 줄게요. ㅎㅎㅎ

세실 2013-03-05 09: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진심으로 그러면 좋겠습니다.
요즘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ㅋ
문제는 문과, 일본어, 음악을 선택했는데 2학년 전체에서 꼴찌반일듯.
아마도 보림이가 1등 할꺼 같아요. ㅠㅠㅠ

글샘 2013-03-05 13: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예전에 음악,미술반 나누는거보니깐,
음악반이 확실히 처지던데요.
그렇게 과목으로 나눔 안되겠더라는...
그래도 반에서 1등이면 기분은 좋겠구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