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니체로 시작한다.

영원 회귀. 삶은 계속 반복된단 거다. 아~ 그 무거움이란...

내가 지금 짊어지고 사는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하여 살아야 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좌절할 것인가?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12)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미묘하다.(13)

 

작가의 탐구 대상은 '삶과 사랑'이다.

삶과 사랑은 과연 묵직한 것일까, 한없이 가벼운 것일까?

진정 비장하고 끔찍한 것일까? 재밌고 가볍게 아름다운 것일까?

 

토마시는 우연과 필연의 중복을 통하여 테레자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토마시를 찾아온 테레자.

모세의 바구니를 연민과 동정으로 주워온 사건으로 인해 세상은 바뀌듯,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21)

 

사랑의 근원은 아주 사소한 곳이다.

하나의 은유, 동정의 감정에서도 싹트는 것이다.

가볍고 가볍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볼 수 없어서... 가벼운 시작에 사랑은 젖어든다.

 

상황은 그 가벼운 시작을 고착시킨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나라,

즉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132)

 

이런 부분은 그의 소설 '향수'에서 상세히 형상화되어 있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88)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헤어짐의 또는 멀어짐의 근원은 보다 감각적이다.

 

토마시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여자 냄새, 성기 냄새가 났다.(230)

 

이 구절은 이 소설에서 몇 번 반복된다. 이 냄새 하나로 얼마나 한순간에 독자에게

테레자의 인생을 가볍게 무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인간 사고의 부정확함과 쏠림 등에 대하여 그 의미 적음과 가벼움에 대하여 '키치'란 말에 몰입한다.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다.

하지만 존재의 근거는 어떤 것일까?(416)

 

합리적 태도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역시 특정한 정치적 키치를 형성하고

어떤 의견도 특정한 키치 속에 통합할 수 있는 가벼움을 발견한다.

 

테레자의 허위 의식은 '안나 카레니나'에 투영되고,

그녀의 개는 '카레닌'이 된다.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화될 수도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조차, 아니 걱정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에도 인간은 좌절하니까...

 

테레자는 미래, 카레닌이 없는 미래 속으로 들어가 생각해 보았고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다.(477)

 

이 소설은 하나의 줄거리를 제공하는 소설이 아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이 다 그렇듯,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생각들을 제공하는 소설이어서,

읽을 때마다 다른 사건들이 눈에 밟히게 마련일 게다.

밀란 쿤데라는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해야 할, 고전 작가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483)

 

의사였던 주인공 토마시는 노동자로 추락하게 된다.

그렇지만, 삶의 의미를 곱씹는 그가 깨달은 것은 이런 것이다.

 

임무라니,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596)

 

씁쓸하지만, 인생의 가벼움에 대한 진리임에랴...

이 한 마디로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가벼움'을 줄일 수 있겠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596)

 

인생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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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8-0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님이 당첨되신 것을 축하하러 왔다가(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글을 보네요.
이 책을 읽었는데, 특이해서 좋았어요. 형식도 내용도...
그리고 카레닌이란 개 이름이 재밌지 않습니까? 안나의 남편이란 인물을 생각하면요... ㅋ

글샘 2012-08-08 16:53   좋아요 0 | URL
당첨이라뇨? 당당히 당선된 건데요. ㅎㅎㅎ
덕분에 책 몇 권 얻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 번 읽어도 낯선 그런 소설이에요.
이름도 재밌구요. 미술가 사비나가 한국와서 사비나 미술관이 되었더군요. ㅎㅎ

페크pek0501 2012-08-09 13:54   좋아요 0 | URL
호호~~ 당첨 아니고 당선, 맞아요 맞아...
ㅁ님이 페이퍼에 당첨이라고 써서 그대로 옮겼지 뭐에요.
저도 글샘 님이 만든 이벤트에서 시를 잘 써서? 당선된 적 있잖아요.
당첨 절대 아니고 당선이요. ㅋㅋ

책값이 많이 드실 텐데,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사비나 미술관 얘기는 처음 들어요. ㅋ

글샘 2012-08-09 16:59   좋아요 0 | URL
지금 읽고 있는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의 작가 이명옥 님이 사비나 미술관 관장이던데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책을 봤는데, 재밌더군요. 겹치니깐~ ㅋ

transient-guest 2012-08-0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한번밖에 안 읽어봐서 그런지 아직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_-: 그래도 귄터 그라스만큼 난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훈련이 덜 된 모양이에요, 깊이 읽는 방법이요.ㅋ

글샘 2012-08-09 08:56   좋아요 0 | URL
밀란 쿤데라는 여러번 읽어야 해요. ㅋ~ 읽을 때마다 다르죠. 귄터 그라스 역시 이야기구조보다는 시대나 작가의 생각을 곰곰 읽어야 하는 작가구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가들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