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 - 이 모든 것이 현대라는 이름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한국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곧, 외로움과 불행, 그리고 군중 속의 고독과도 같은 의미로 쓰이듯이, 현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요즈음.

내가 한창 자라나던 소년 시절에, 한자를 열심히 쓰던 중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글이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일컬음이었고, 토착화란 것은 독재의 고착화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는 곧 근대화의 기수였고, 근대화는 서구처럼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라다크는 티벳의 작은 지역이다. 늘 즐겁게 웃고 살던 그들, 평화로움이 가득하던 그들의 삶에 '모던'이 들어가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평화롭고 즐겁던 공동체가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부탄의 국왕이 말했다. "한 사회의 진정한 지표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이라고.

우리는 아직도 국민총생산의 신기루를 좇고 있지 않은가. 행복을 저당잡힌 국민총생산은 대부분 미국이 시키는대로 비행기를 사고, 프랑스와 돈을 주고 받으면서 철도도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떼제베를 사들인다. 우리는 국민총생산이 높아서 양주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고, 여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코팅으로 얼굴을 가린다. 외제 화장품을 이용해서... 과연 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를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가. 우리의 복지의 목표는 행복에 있는 것일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과연 나는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가.

컴퓨터, 통신, 교통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벌어 들이고 있지만, 그 남은 시간들이 정말 우리가 잘 살게 되는 데 투자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정말 우리가 '잘 살기(well-being)' 위해서는 '잘사는(rich)' 것 보다는 미래에 투자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늘 병원에 가야 건강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을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은 벌써 어딘가가 고장난 사람이란다.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 얼마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가 떠오른다. 우리에게도 불과 얼마 전에만해도 공동체가 있었고, 여인네들의 함박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담스런 웃음과 어머니의 사랑과 뜨거운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결과로, 현대화가 가져다준 선물로 우리는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를 감수해야하게 되고 말았다. 연탄가스 냄새 넘쳐나던 우리의 근대화의 과정은, 자동차 천만대 시대를 구가하며, 인간 소외의 시대에서 인간성 말살의 시대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우리의 초라했던 과거를 바람직한 미래로 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 번쩍거리는 현대식 빌딩들 사이로 숨어버린 과거가 사뭇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우리의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이제는 '미래'를 준비할 때이다. 녹색 평론처럼 재생용지도 사용하고, 그러면 책도 가벼워서 좋다. 아파트 대신 좁게 이층집도 지을 일이다. 무덤들도 없애고, 납골당을 만들어야 될 거고, 인스턴스 식품도 줄이고 밥으로 돌아갈 일이다.

비록 연극 대본이긴 하지만, 서구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서구세계에서 살다온 의사의 다음 말은 사뭇 시사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사람들은 돌로 빻은 통밀 빵을 먹지요. 그건 우리의 전통적인 빵과 비슷한데, 거기서는 흰빵보다 훨씬 더 비쌉니다. 그곳 사람들은 집을 우리처럼 천연재료로 짓고 있어요. 콘크리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옷도 '100퍼센트 천연 섬유'와 '순모'라고 쓰인 상표가 붙은 걸 입는 추세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폴리에스텔 옷을 입고요.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어요. 미국에서 현대적인 것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라다크 것과 비슷한 게 굉장히 많아요.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내게 '당신은 라다크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참 운이 좋군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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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3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님의 정교한 리뷰에 책 한권을 읽다가 갑니다. 이거 추천하나는 저여요.안할 수가 없더군요.

하얀마녀 2004-08-3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막연하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써놓으셨네요. ^^

글샘 2004-09-0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정교한 리뷰까지는 아니랍니다. 추천까지도... 읽어주시는 것도 고마운데요. 코멘트가 달리면 기분 좋은 마음이 90%쯤, 서재를 폐쇄하고싶은(아니, 비공개로 하고픈) 마음이 10% 정도랍니다. 사실 쓰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그래도 자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녀님/ 저도 글로 적지 않으면 막연해서 자꾸 적어보는 작업을 하는 거랍니다. 제 작업의 목적을 명료하게 지적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파란여우 2004-09-0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러실줄 알았어요. 드디어 일을 저질르셨더군요.이주의 리뷰 당선 예상했던 일입니다. 너무 늦게 님의 차례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하 드려요!! 앞으로 더욱 친해져요 우리.^^

글샘 2004-09-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된 줄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님은 알라딘의 파수꾼이신가 봐요.
더욱 친해져요 우리...-.-;;; 남들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알라딘의 인기인 파란여우님의 프로포즈라니... 영광이네요.
요즘 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바빠서 코멘트를 달지는 못하지만, 태풍의 피해 입은 작은 농부님의 아픈 마음과 공근 친구의 아픔을 느끼시는 고운 마음을 잘 배우고 있습니다. 님을 만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태풍 피해로 맘이 쓰리실테니... 따끈한 브렌드 커피에 양주를 다섯 방울(그러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커피가 더 맛있다는 물리 선생님의 말씀... 근데 물리 선생님이 화학적 변화를 설명한 건 좀 이상하기도 했어요.) 넣어 드세요. 푹 주무시길...

파란여우 2004-09-0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4-09-08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미래' 책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군요...어쩌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미래란 정말 오래된 우리의 옛 전통의 정신을 되살려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삶의 성숙도 마음의 깨달음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글샘님 말대로 내 리뷰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는 되겠군요...글을 못보내드릴지는 몰라도....선생님의 마음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