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100회가 되었구나.
숫자가 별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100번이나 민우에게 강의를 했다는 걸 기념해 보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조금 특별한,
어려운 시들을 두어 편 읽어 보자. 

송찬호의 '구두'는 가끔 문제집에 나기도 하지만,
워낙 환상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시라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읽어 보자꾸나. 

우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하나 보자.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란 화가가 그린 그림이야.
그림 제목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다.
분명히 이 그림은 파이프 그림이지. ㅋ
그런데 글씨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음으로써,
<그림>과 <의미>의 관계, 그리고 <언어>의 관계를 한번 생각하게 한단다. 

물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지.
파이프 그림일 뿐.
그렇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게 뭐야? 이러고 물으면,
어, 그거 파이프네. 이렇게 대답하겠지. 

일상적으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부려 쓰는 언어들도 사실은
자기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단 걸 알 수 있지. 
아빠가 민우에게 '사랑해~'하는 말을 하는 거랑, 엄마에게 하는 건 전혀 다르단다.
민우에게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잘 자라서 행복한 인생을 살기 바란다.' 이런 의미고,
엄마에게는 '당신은 나와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쳐서 남은 일생을 즐겁게 살 나의 짝입니다.' 이런 의미겠지.  

마그리트가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고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 보면, 그러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웅변이 아닐까 해. 

그럼 송찬호의 구두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는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송찬호, 구두> 

자, 이 시의 제목이 '구두'임을 생각해 본다면,
중심 생각을 '구두'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자. 

그런데, 바로 '새장'이란 단어가 나오잖아.
'감옥'이라고도 하고.
화자는 구두와 새장, 감옥의 속성에 주목하고 있는 거야.
왜, 구두를 오래 신고 있으면 갑갑하잖아.
우리 삶은 오래 신고 있는 구두처럼, 구속되고 갑갑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를 전개하는 건가 보다. 

1연에서 '날뛰는 발'은 자유롭고 싶은 자신의 영혼을 뜻한다고 봐야겠지.
누구나 세상에 얽매여 살지만 내심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
세심한 아저씨는 구두 하나를 신으면서도 새장 속의 새처럼, 답답함을 느꼈나봐.
아마도 화자는 어린 시절 들판에서, 논밭에서 맨발로 자유롭게 뛰어다닌 추억을 가지고 있겠지. 

2연에서 처음엔 구두가 너무 커서 덜그럭거렸대.
'구두', '새장', '감옥'은 모두 부자유, 구속의 환경이잖아.
발에 너무 커서 덜그덕거리는 구두.
자신은 왠지 세상 속에서 꼭맞춤하게 살지 못하고 덜거덕거리는 느낌이 있다.
감옥이 작아지고, 그래서 구두가 발에 꼭 맞았으면... 하는 희망과,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새가 오버랩되면서 시를 쓰고 있어.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이란 작품이다.
바다 위로 넓은 하늘이 펼쳐졌는데,
그 위에 공중에 뜬 땅이 있고, 그 위에 성이 있지.
물론, 이것은 '바다'도 '하늘'도 '바위'도 '성'도 아닌 그저 한 장의 그림일 뿐이지만. ㅋ
파이프가 아니라는 그림처럼 말이지. 

그러나, 화가는 넓게 펼쳐진 바다.
그리고 푸른 하늘을 가득 날고 있는 구름.
또 산 위의 성을 그렸어.
어찌 생각하면, 저 바위는 둥근 지구를 축소해 놓은 것일지도 몰라.
이런 환상적인 그림을 통해서 우린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러하다는 생각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고 바뀌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새장', '구두', '감옥' 그 부자유스러운 구속 속으로
<모자>나 <구름>을 집어 넣어 본대.
모자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것이지만,
왠지 조금 멋스럽게 폼을 잡으려는 도구기도 하지.
야구선수 모자보다는 영국 신사 모자풍이 어울리겠다.  
르네 마그리트가 쓴 것 같은 이런 모자.
역시 이 포스터에도 파이프가 등장하는구만.



새장이라는 구속된 공간 안에서 답답해하는 새.
새장에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어서, 그나마 새는 숨통이 트이듯,
새장 속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려 애써 보는 화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새장 속의 새들은 이미 자유롭게 활강하던 넓다란 언덕을 잊었고,
숱한 이랑들을 세며 날던 시절을 잊어버린 듯,
현실 속의 하루하루는 답답하고 지루하지.  

현대인의 삶은 이렇게 꽉막힌 것이란다.
자유를 잃어버린,
그 푸르른 자유의 추억을 다 놓쳐버린 구속된 삶.

그러나,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 넣듯,
작은 시도로도 현실의 구속감, 답답함은 조금 완화될지도 몰라.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비록 현실적으로 새장은 구속의 의미를 갖지만,
거기 작은 구멍과 먹이통을 통해서나마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할지도 모르지. 

4연에서 화자는 오늘 산 새 구두를 보고 있어.
아직 신지 않은 새 구두.
그 구두는 구름 위에 올려져 있는 듯 땅을 밟지 않았고,
물에 뜨기 전인 듯 물에 젖지 않은 새 구두야. 

원래 새 구두는 발에 조금 맞지 않잖아.
어떤 쪽은 넓고,
어떤 쪽은 찡기게 마련이지.
새 구두를 사 두고 바라보면서, 이런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자유를 바라고 있는 건지... 

속박에 묶인 직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화자,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화자.
그는 새 구두를 하나 사서 쳐다보면서,
자기 인생을 회고한다. 

늙었고 고집세어서 새구두와는 좀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화자의 발.
구두와 화해하지 못했던,
그래서 덜그덕거리고 꽉 쪼여 답답하던 화자의 삶을 돌아보면서,
갑갑한 속박의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의 자유를 상상하고 싶은 것인지도... 

새 구두 한켤레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통찰력.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상상력.
이런 것들을 마음껏 펼친 시가 아닐까 싶다.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의 틀을 깨고 자유로이 비상하려는 꿈을 가진 존재인지도 몰라.
그러기에는 세상은 너무도 많은 속박으로 짜여진 공간이고 말이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렴.
몇 가지 낱말들에 걸려서 의미가 들어오지 않던 시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로 읽히기를 바라며 아빠가 쓴 글이니깐,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는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다음엔 수능에 나왔던 시 중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을 읽어 보자.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내가 만난 이중섭(李仲燮)>

 

화가 이중섭은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어.
그렇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속에서 아내는 일본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 살지.
이중섭은 가난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그림으로 남기곤 했단다. 

어느 날, 화가 이중섭을 시인 김춘수가 만났지.
그런데 이중섭은 김춘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눈을 먼 곳,
바다에만 두고 있었나봐. 
아내가 건너간 곳.
그리고 온다면 거기서 아내가 올 바로 그 바다로 말이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는 표현은,
머릿 속에 온통 바다 생각 뿐이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중섭이 서있는 배경으로 바다가 가득 펼쳐져 있었다는 형상화일 수도 있어.
암튼 이중섭의 이미지에는 바다가 가득한 거지. 

도쿄(東京)로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다,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이 빛깔은 어둠인지, 마음의 어두움인지 모르지만,
그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대. 

아무리 화자가 이중섭을 찾으려 해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더래.
이중섭을 찾을 수 없었던 거지.
그만큼 철저하게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 거겠지.
그 어둠 속으로... 

그러다 한참 뒤에
화자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만나게 돼. 

이중섭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유행가 중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가 있는데,
'눈 멀도록 바다만 바라보다...'하는 구절이 있단다.
아마도 이중섭이 그런 심정이었겠지.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내리는 바다를 보면서,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워나가고 있었대.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면서... 

화자는 이중섭을 두 번 만났지.
그런데 이중섭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내 뿐이야.
그 넓은 현해탄을 한 뼘씩 지워나가봤댔자 거리는 줄어들지 않을 건 뻔한 노릇. 

이 그리움엔 절망만이 가득 남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평양이 고향이며 건강이 악화되어 있던 이중섭을 간첩, 공산당 내지는 정신 이상자로 몰았대.
단지 병을 앓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그래서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자화상을 그렸어. 
정신이상자는 자화상을 이렇게 정확히 그릴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한 달이나 수용되어야 했다는구나.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담뱃갑 은박지에다가 송곳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지. 

 

그의 <가족>이란 작품이야. 

 

우리의 감각과 대뇌는 세상 모든 것을 늘 똑바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힘든 일을 겪으면,
감각과 대뇌가 세상의 빛을 굴절시켜 어둡게 보이도록 만든단다. 

이번에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힘든 일을 겪으면서 결국 목숨까지 버리게 됐대.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 감각을 너무 믿는 것도 늘 경계해야 할 일이란다. 

세상은 힘들게 보여도,
즐겁게 보여도,
늘 힘들지만은 않고 즐겁지만도 않은 곳임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단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잖아.
인간이 옳다, 그르다고 부르는 것들은 늘 그르고 옳은 것으로 바뀔 수 있고,
아름답고 추하다고 나누는 것도 금세 더럽고 이쁜 것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란다. 

오늘 읽은 환상 속의 시들을 감상하면서,
너무 한 가지 생각에만 매몰되어서,
인생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를 경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상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우리 마음에 주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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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25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모르는 시인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
시와 그림이 절묘하게 어울리네요. 그러니 이 페이퍼 한편 쓰시기 위한 시간과 노력,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정도 할 뿐 입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11-05-26 00:58   좋아요 2 | URL
시와 그림이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
페이퍼 하나 쓰는데 시간은 많이 안 걸립니다. 뭐, 맨날 하는 수업이니깐 말이죠.

비로그인 2011-05-26 0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덧 100회로군요. 편집자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을 텐데 내년쯤에는 책으로 묶여 나오는 건가요?^^

글샘 2011-05-26 09:23   좋아요 2 | URL
글쎄요. 아이들에게 도움은 되겠다 싶으면서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영 찜찜하거든요.
그리고 제멋대로 설명이 튀어 다녀서, 출판하기엔 편집자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듯 하기도 해요.^^

smdan 2011-08-30 1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좋은 서재를 발견했습니다. 음. 잘보고/잘읽고/많이 느끼고 갑니다. 구들장(시공부모임)에서 작년에 이어 송찬호(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을 공부하는 날이 오늘인데, 노다지를 발견했습니다.

글샘 2011-08-31 08:58   좋아요 1 | URL
시공부 모임이란 것도 하시는군요. ^^
저는 혼자서 되는대로 쓰던 글이라... 송찬호... 재미있는 작가지요.

저도 저녁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