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정지용을 이야기할 때, 1987년까지 출판금지, 열람금지로 묶였다고 했지.
그 시인 중 하나가 백석이다. 

나도 1987년 해금조치 이후에야 백석의 시를 만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백석의 언어를 처음 읽었을 때, 깜짝 놀랐어.
어쩜 이렇게 그 시대의 언어를 오롯이 잘 잡아둘 수가 있었을까 하고 말이야. 

우선 교과서에서 배웠던 <여승>을 한번 읽어 보자.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

이 시를 <서사적>이라고 하는 건,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화자는 어떤 여승을 만났지. 그 여승은 '옛날'같이 늙었고, '불경'처럼 서러워졌대.
여승의 늙을 모습을 보고 서러워졌다는 말을 조금 새롭게 표현한 것일 뿐이야. 

2연에서 과거로 시간이 회상되지.(이런 걸 시간이 역행한다고 그래.)
평안도 어느 깊은 산 속 금점판(금광)에서 파리한 여인을 만난 일이 있어.
여승의 젊은 시절이겠지.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뭔일로 딸아이를 때리면서 울었대.
그런데, 그 기억이 남아있어. 촉각적으로. 차갑게... 

그 여인과 이야기나눌 기회가 있었겠지.
일벌처럼 일하러 집나간 남편은 십 년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금광으로 일하러 갔단 말을 듣고 금점판에 옥수수를 팔러 다닌다고...
그랬는데... 

남편은 만나지 못하고, 어린 딸은 그만 죽고 말았어.
죽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도라지 꽃을 좋아하더니 돌무덤으로 가고 말았네요...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아픈 마음. 

그래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벗어나려 여승이 되는 이야기로 마감이 된단다.
산절의 마당 귀퉁이에서 긴 머리 오리가 잘리워져 툭툭 떨어지는 모습.
그 시간에 산꿩이 울었어.
세상을 버리는 여인의 <눈물 방울>과 함께 울어주는 <산꿩도 섧게 우는> 울음.
꿩이 뭐 서럽다고 울었겠니? 감정이입이지.  

남편은 나가고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 어떠할지... 상상하기도 어렵구나.
교과서에서 배운 <규원가> 기억나니?
허난설헌의 노래.
'군자호구(군자의 좋은 짝)' 되길 원했지만, '장안유협 경박자(경박한 인간)'를 만난 여인.
'베 올에 북 지나듯(시간이 빨리 지나) 시간이 흘러' 삼 년이 가도록 집에 얼굴을 안 내미는 남편.
근데, 허난설헌은 자식이 셋 있었나봐.
그 자식 둘이 죽은 걸로 보아, 전염병이라도 돌았는지 모르지.
허난설헌의 한시를 한번 읽어 보자.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去年喪愛女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今年喪愛子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蕭蕭白楊風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鬼火明松楸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紙錢招汝魂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玄酒存汝丘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應知第兄魂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夜夜相追遊
비롯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縱有服中孩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安可糞長成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浪吟黃坮詞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          血泣悲呑聲 (허난설헌, 곡자 哭子)

두 아이를 차례로 잃은 어미.
광릉 땅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겠지.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는 광릉 땅. 
자식들의 무덤에 제사를 바치러 가는 어미의 마음...
두 남매가 그나마 옆에 있으니 서로 위로가 되어 어울려 놀라는 말을 남기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만 흐르겠다.
뱃속에 아기가 있는 것을 보면 임신 중인데, 그 아기가 자라는 것이 즐겁지도 않구나.
황대노래는 중국에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모를 비판'하는 노래였대. 

요즘에야 영아 사망률이 낮지만, 예전엔 어린 시절에 자식을 보낸 부모가 많았다는구나.
허난설헌은 양반집 부인이었고,
여승의 여인은 가난한 여인이었지만, 자식 잃은 슬픔은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여승에게서 나는 냄새는 '불경'의 낡은 냄새, '가지취'의 낙엽 냄새 같은 것이었단다.
속세의 화장품 냄새처럼 여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후각적 감각이 느껴지지 않지.
또 여인의 우는 소리를 듣고 '가을밤처럼 차갑게' 촉각적으로 표현한, 청각의 촉각화,
공감각적 표현도 느낄 수 있구나.

백석의 시에 드러난 인물들은 '일제 강점기의 민중'이라고 볼 수 있단다.
구체적으로 일본놈들로 인한 피해자인지는 드러나있지는 않아.
일본놈 때려잡자! 이런 건 시가 아니잖아.
그렇지만, 그 민족의 삶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그 시대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인이란다.
일하러 나간 남편이 1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면, 무슨 일이 생겼겠지. 무서운 시대.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의 암흑기란다.
그 시대에 무너져가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서 <민족적 원형>을 탐구하고,
모국어로 보존하여 재생하는 일에 백석은 열심이었지.
김영랑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갈고 닦은 시인과 같은 시대에 말이야.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고,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아프게 그린 시로 거미 이야기를 쓴 <수라>가 있단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

수라,는 수라장, 아수라장 처럼 쓰이는 말로,
불교의 여섯 가지 세상(육도)의 윤회에서 나온 한 세상이란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곳이지. 이 세상이 그렇게 쌈박질하는 곳으로 변했다는 판단이겠다. 

차디찬 밤, 그런 시대,
거미새끼를 한 마리 쓸어 버린다. 무심하다. 

2연에서 큰 거미가 온다. 가슴이 짜릿하고, 서러워한다. 

3연,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에 알에서 갓 깨인듯한 작은 거미가 아물거린다. 가슴이 메인다. 서럽다. 

그것을 쓸어버리지 못하고 고이 버리며 가족과 만나기를 빈다. 슬퍼하면서... 

가족이 흩어져버린 상태를 백석은 <수라>라고 표현한 것이다.
평화롭던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고 세상은 수라장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마찬가지 의식을 드러내는 시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 있다.
<수라>에서는 서럽고 슬프게 가슴 메이는 화자는 <남신의주~>에서 좀 강하게 변한다.
그 변화를 보자. 이 시는 기니까 부분 부분 잘라 볼게.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첫 부분에선 <거미>에서와 같이 <해체된 가족>을 이야기한다. 어렵지 않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이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인데,
옛날에는 주소란 것이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편지를 부치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평생 거기 눌러 살았으니 주소가 의미가 없을 밖에.
근데, 근대화되면서 도시의 주소는 공동체를 해체한 증거가 된다.
남신의주란 도시의 유동(동네) 박시봉씨 네 집에 방을 하나 얻어 셋방살이를 시작한 삶.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날은 저물고 바람도 불어 추위는 더해 온다.
두렵고 험한 시대. 일제 강점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목수네 집에 헌 삿자리(짚을 엮은 자리)를 깐 방에서 주인을 붙인
셋방살이가 시작된다.
그 셋방은 마치 '싸구려 커피'에 나오는 집처럼 눅눅하고 불쾌하다.
그리고 무척 좁다. 또한 외롭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곰팡이 냄새나는 춥고 눅눅한 방. 혼자 있어도 너무 좁은 방.
질옹배기에 지푸라기 등 불을 피워와서 손도 쬐고,
맨날 누워 뒹굴면서 슬픔과 어리석음을 반추(되새김)하는 화자.
갑자기 고향 생각에 가슴이 콱, 메이고 눈물이 고인다.
이럴 때 쓴 시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던 정지용의 향수와도 같은 마음이겠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저 슬퍼하던 이전의 <거미>에서와는 달리,
이 시에서는 <그러나>가 나온다. 반전. 전환.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님을 깨닫는다.
세상은 크고 높은 힘, 운명 같은 것이 있어서 나를 굴리는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러 날을 보내면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슬프거나 좌절스럽지만은 않다.
더러는 나중에 싸락눈이 쌀랑쌀랑 창문을 두드리기도 하는데,
춥지만 화로를 끌어 안고 생각한다.
먼 산 뒷옆 바위섶에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올 때 하이야니 눈을 맞으며
마른 잎새에서도 쌀랑쌀랑 소리도 내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마치 '지금 눈 내리는' 시대에도 '여기 노래의 씨를 뿌리'는 초인처럼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살겠다는 힘을 내는 모습.
농촌 공동체가 해체된 도시에서 외롭게 살지만, 현실 극복 의지를 가진 인간임을 표명하는 멋진 시.
이런 것이 이 시의 힘이다. 

그의 시에는 '공동체'를 긍정하는 시들이 많다.
많은 작품을 다룰 순 없으니,
먼 타지에서 고향을 떠올리는 따스한 시를 한 편 소개하고 마칠까 한다. 그의 <고향>이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고향)

북관은 특정 지명이라기 보다 북쪽의 타향을 뜻하겠다.
어느 타지에서 앓았는데, 부처같고 관우같은 의원이 진맥을 한다. 

진맥을 하며 심심했던지 고향을 묻는데,
아무개 씨를 들먹인다. 화자도 아는 이인데 의원은 막역한 사이란다.
화자가 아버지처럼 존경한다고 하니
의원이 넌지시 웃고 말없이 진맥을 한다.
이제 의원은 진맥을 할 뿐이지만,
그와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 같아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같은 의원도 함께있는 현실에 만족한다. 

타향을 유랑하는 사람은 소외감과 고독감에 몸부림치다 병이 난다.
그렇지만 의원의 한 마디 말처럼 작은 것에도 감동한다.
이 시에도 짧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서사적>이라고 한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들어 있다.
고향에는 따스한 정이 있는데, 타지에서는 마음이 시리기만 했던 화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 그렇게 떨었던 화자가 안쓰럽다.

참고로, 이 <고향>이라는 시가 2004 수능에 출제된 적이 있었는데,
창의적인 문제에서 '복수 정답'의 시비에 걸려 곤란을 겪게 되었다.
그 문제를 한번 보자.

(고향)의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보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이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이렇게 <유사한 것을 추리>해 내는 것을 줄여서 <유추>라고 한다.
[나 - 의원 - 고향] 이런 관계와 유사한 것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나'는 '의원'을 통해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보기>에서는 '테세우스'가 '미궁의 문'을 통해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 탈출에 성공한다.
문제 출제 의도는 주어진 시에서 '화자'가 '의원'을 통해 '고향'을 떠올리는 긍정적 방향의 경험을 하므로,
'테세우스'가 '실'을 통해 '탈출'에 성공하는 관계를 유추하는 것으로 구성한 것이다.

[테세우스 - 실 - 탈출] 이렇게 되면, 의원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실>이 된다.
애초에 <실>을 정답으로 발표한 교육과정평가원의 의견에 반박한 사람이 있었는데,
'테세우스'가 '미궁의 문'을 통과하여 '괴물'에게 다가간 것도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다는 의견이었고,
그것을 인정해서 <미궁의 문>도 정답으로 인정한 것이다. 

아빠 의견은 애초의 평가원 의도가 훌륭한 문제였던 것 같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한다면 3번도 오답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문제였다.  

백석의 시 세계는 더 풍부하니 다음에 다시 다룰 기회가 많을 줄 안다.
낮밤의 일교차가 크다.
감기 조심하고 기말고사 준비 잘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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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11-25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 학생의 질문입니다. 불경과 서러움은 어떤 연관이 있죠?

글샘 2010-11-26 16:54   좋아요 0 | URL
이런 불경스런 질문이 있나?

그건 저한테 물으심 안 되죠. ㅋㅋ 화자에게 물어야지.
유사성에 기초한 '비유'인데,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쉽사리 그 유사성이 떠오르지 않죠.
제 추측엔, 절간에 들어간 사람들이 뭐, 다들 사연을 갖고 살았던 데서, 절간의 인생 - 불경 - 서러움... 이런 비유가 나오지 않았나 싶은데요. 제 맘이죠.
조지훈도 '고운 뺨이 정작 고와서 서럽다'는 표현이 있죠.
중이 되어버린 여인을 보고 서러워하는 마음... 불경은 그저, <절간, 스님>을 떠올리는 것 정도...

마립간 2010-11-30 13:39   좋아요 0 | URL
제가 학생의 입장이 될 때는 진보적인 입장이 되서요.^^ 답변 감사합니다.

cyrus 2010-11-2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간 바빠서 글샘님 문학 수업에 뒤늦게 접하네요^^;;
백석의 <여승>을 문학 교과서에 처음 접했는데, 내용이 슬퍼서 저에게는 잊혀지지 않고 있는
시 중 하나입니다. 이 시 덕분에 백석이란 인물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백체처럼 이루어져 있는 그의 시가 마음에 와닿는 것도 처음이었고요.
오랜만에 <여승>이라는 시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26 16:54   좋아요 0 | URL
여승은 아무래도 슬픈 정조가 지배적이죠.
백석의 시 세계는 참 넓어서... 저도 그 중 여승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순오기 2010-11-2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금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건 우리들 복이지요.^^
처음 백석을 접했을 때의 감격이 다시 떠오르네요.


글샘 2010-11-29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백석 시 전집을 들고 한 달을 살았답니다.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진 시집...

반딧불이 2010-12-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시를 읽으면 어디에서나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기대했는데 언급을 안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