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야.
아쉬운 일요일 밤이다.
  

이런 그림 보면, 요즘 세상엔 참 아이디어가 중요하구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별 것 아니지만, '이웃집 토토로'의 '메이'를 인형으로 만든 캐릭터라는데,
저런 인형을 만들어서 돈을 벌기도 한대.
아이디어가 신선하지 않니?

도둑들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집중력, 남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시간에 일하기, 파트너와 호흡 맞추기 등 우스개 소리가 있었지.
아빠도 아침잠이 많은 스타일인데,
일어날 때 이런 생각을 한단다.
도둑처럼 가치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일을 하러 벌떡 일어날텐데,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되겠구나... 하고. 

어젠 김춘수의 <꽃>을 읽었지.
서로 별 의미없던 존재로 만났지만,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을 불러주길 간절히 바랐던 시.
민우도 너의 빛깔과 향기를 찾는 행운아가 되길 바란다. 

오늘은 한국 서정시에서 가장 유명한 김소월의 시를 몇 편 볼게. 

우선, 김소월을 <민요시인>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작을 보자꾸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엄마야 누나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고 발병난다(아리랑) 

두 노래를 딱 붙여서 적으니깐 어때? 신기할 정도지 않냐?
운율이란 것은 저렇게 신비한 역할을 한단다.
첨 듣는 노래라도 익숙하게 들리게 만들지. 민요의 3음보를 잘 살려서 쓴 노래야. 

1학년때 배운 시 <진달래 꽃>도 3음보의 노래임은 같아.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진달래꽃) 

이 노래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7.5조라고도 하는데, 요즘엔 자존심 내세워서 3음보라 부른단다.
주제는 '이별의 슬픔을 내세우지 않음'이 되겠지.
한문으로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퍼도 슬퍼하지 않겠다는 <의지>
슬픈 <속마음>과 슬퍼하지 않는 <표현>이 반대라고 해서 '반어'라고 불러. 

'반어'란 건 이처럼 '속마음'을 강조해서 표현하기 위해 반대로 '표현'하는 방법이란다.
지각한 학생에게 '참 일찍도 왔구만!' 이렇게 비꼬는 식이지.
옛날에 god란 가수들이 <거짓말>이란 노랠 했는데,
<잘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제발 내 걱정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마~~> 

이런 구절이 있었단다. 앞부분은 표현이고, 뒷부분은 속마음이겠지. 이런 걸 반어라고 한단다. 

오늘은 반어가 드러난 시를 몇 편 보자꾸나. 

먼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 “무척 그리다 잊었노라” 
그래도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먼 훗날, 김소월>

먼훗날 당신이 나를 찾아오신다는 시츄에이션은, 지금은 임이 내 곁에 없는 거야.
그런 당신이 와서 날 나무란대. 뻔뻔한 임이구만. ㅎㅎ
그러면 대답한다는 화자의 말이 참 애절하게 슬프다.

당신을 잊었어요. 근데 그냥 쉽게는 아니구요.
무척이나 그리워하다가 잊었어요.
도저히 당신의 부재를 인정할 수가 없어서 잊으려 잊으려 노력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서럽게 우는 대목 ㅠㅜ)
저는 오늘도 당신을 잊을 수 없고, 어제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요.
다만, 먼훗날 그때가 되면... 잊게 될 날이 올까요? (대성 통곡의 분위기) 

아, 사랑했던 여인이 이렇게 펑펑 우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겠다.  
'나는 당신을 잊었습니다.'하고 말하는 화자를 보자꾸나. 정말 잊었을까?
사실은... 잊을 수 없었던 거잖아. 그런데 잊었다고 표현했으니까, 이 경우도 <반어>가 되겠지?  

다음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보자꾸나. 역시 '반어'가 나오는 시란다.

  <I>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II>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시는 여느 시와 다르게, 연과 행의 구분이 없어.
특이하게, 연으로 보이는 앞에다가, 논문에나 붙일 법한 로마자로 1부, 2부 같이 구별해 두었구나. 
이렇게 연과 행의 구별이 없이 자유롭게 쓴 시를 자유시 중에서도 특별히 산문시라고 부르기도 해. 

시를 볼 땐 제목을 먼저 보는 게 좋아. 제목에서 시의 핵심이 드러나거든. 이 시의 제목은 '즐거운 편지'다.  
영화 '편지'에서도 낭송된 시인데, 시를 읽고 나니 분위기가 정말 즐거운가? 좀 아니지?
화자는 '그대'와 함께 있지 않아.
수능 용어로 '임의 부재'라고 하지.
쳇, 쉬운말 냅두고... 
앞에 나왔던 <먼 훗날>도 마찬가지로 '임의 부재'구만...
속마음은 즐겁지 않은데, 아니 고통스러운데, 제목은 즐겁다고 했으니깐,
표현 방법은?
반어법.
영어로 아이러니(irony)라고...

근데, 문장이 길어서 좀 이해를 가로막지?
화자가 의도한 바가 그런 거야.
자기 속마음을 바로 들키기는 싫은 거.
속마음을 덜컥 들키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깐 반대로 말하기, 반어를 쓰는 거야.

문장을 잘라서, 다시 보면...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나의 사랑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울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조금 감이 오니?
임과 떨어져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임을 그리워하지만, 자기의 사랑은 사소한 일이라고 말하지.
그렇지만 먼~~~~~~~~ 훗날 그대가 고통받는 일을 당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 만큼 사소한 것이래.
말로는 사소하다고 하고 있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지?
이것도 반어법.
난 널 이~~따~~~~만큼 사랑해! 이런 속마음표현. 얼만큼 사랑한다고? 사소하다고...
뭔, 사소한 사랑이 먼 훗날 그대가 고통속을 헤매일 때까지 생각하냐?
두번 사소했다간 까무라 치겠네~ 

2부는 1부의 부연 설명, 더 늘어놓는 설명에 지나지 않아.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내가 아직도 곁에 없는 임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 속, 당신에 대한 기다림이 남아있기 때문이래.
곁에 없는 임, 이별한 임, 떠나간 임, 또는 사별한 임일지라도,
나는 당신을 쉽사리 잊을 수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당신을 기다리기로 했던 거야. 난 너를 영원히 기다릴거요~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니?
나의 기다림도 언젠가는 희미해지고, 연해지고, 약해지고, 결국은 스르르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
그렇지만, 그 때까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소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당신을 기다리려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것이 나의 사랑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이러는 중에 눈이 내려. 눈이 내리고 그치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세월이 가고... 내 사랑이 스러지는 날이 올는지 모르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내 사랑도 그칠 것을 믿>는다는 말이 더 마음 아프지 않냐?

이런 부드럽고 상냥한, 사려깊고 임에 대한 배려로 가득한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구나.
원래, '죽도록 너만 사랑해',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다음날이면, '내가 널 잘못 봤어, 우리 그만 헤어져!'
이렇게 말하기도 쉽다는 세태를 에둘러 표현한 건지도 모른단다. 

민우도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사랑해' 이런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야. ^^
나는 당신을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뻔뻔하면서도 뭔가 좀 믿을 수 없는 상투적인 멘트보다는,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사람에게 깊이 다가가는 법일지도 몰라. 

<즐거운 편지> 화자의 마음을 쉬운 줄글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지.

나의 사랑은 사소해요. 
지금 당신은 나를 보고있지 않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어요.
언젠가, 또 당신을 잊을지도 몰라요.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나는 내가 할수 있는 한의 모든 힘을 모아서... 당신을 기다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황동규의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좀 쉽게 키포인트가 들어올 거야. 
<사소함> 그리고 <기다림의 자세>가.  

오늘은 김소월의 아리랑과 음수율이 같은 민요시 <엄마야 누나야>로 시작해서,
예전에 배운 <진달래 꽃>의 반어를 거쳐, 같은 작가의 반어를 넣은 <멋 훗날>까지 읽었고,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까지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시의 화자, 곧 '서정적 자아', '시적 화자'가 어떤 처지였는지,
왜 그런 표현들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구나.
아빠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꼭 시를 한두 번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문학을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거야.
문학은 '인간의 언어로 된 예술'이니만큼 인간 삶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분야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단다. 

가끔 민우의 생각을 답장으로 보내주면 좋겠다.
설명이 너무 어려운지,
아니면 너무 복잡하거나 재미 없는지...
이번 한 주도 즐겁게 살자~ 반어 아닌, 진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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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1-0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아름다운 문학 수업이에요. 이 밤이 행복해집니다!

글샘 2010-11-01 00:30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 좋은 말이네요. 행복해 진다는말두요.
덕분에... '문학'도 좋은 말이 되었음 합니다.

글샘 2010-11-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작 블로그에 글을 올리니깐, 몇 사람이 이 글을 봤는지 조회수가 뜹니다.
전에 올리던 내용이랑 오늘은 좀 겹치게 되었는데요.
1920년대 중요한 작가 김소월, 한용운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1930년대의 김영랑, 임화 정도 하고, 1940년대의 윤동주, 이육사,
1950년대의 박인환, 서정주, 유치환, 1960년대의 김수영, 신동엽,
1980년대의 신경림, 황지우, 고은 정도 떠오르네요.

창작 블로그의 글은 콘텐츠 보호를 위해 인쇄도, 드래그도 안 되는 모양입니다.
글쓴 저도 안 됩니다. 수정 모드에서나 카피가 될 뿐이네요.
매일 아들에게 이 글을 메일로 보내고, 인쇄해서 주려고 합니다.
혹시 자녀분에게 이 글을 메일로 보내고 싶으시거나, 인쇄하여 주고 싶으시다면, 메일 주소를 아래 남겨 주시면, 아들에게 보낼 때,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날이 찹니다.
벌써 올해 달력, 두 장 남았네요. 모두들 건강 주의하시길...

양철나무꾼 2010-11-0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둑들에게 배울점 세가지...고개를 주억이게 되는 걸요~

이제,매일밤 문학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전 낮보다는 밤을 즐기는 야행성이었는데 말이죠.
매일 밤 시간이 기다려지겠는걸요~^^

글샘 2010-11-01 00:39   좋아요 0 | URL
그걸 배우라는 게 아니라, 무엇에서든 배울 점이 있단 얘기죠.
매일 간단하게라도 한 편씩 올려서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합니다.
편안한 밤 시간에 보시길...^^

반딧불이 2010-11-0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늘 반어와 역설을 헛갈려하는 듯해요. 무식한 저도 헛갈리기는 마찬가지구요. 질문이라 생각하시고 커리큘럼에 넣어주셔요.

글샘 2010-11-01 23:02   좋아요 0 | URL
오늘 '한용운' 시인의 '역설 폭탄' 구상하고 있습니다. ^^

반어와 역설은 비교적 쉬운데, 반어적, 역설적... 이러면... 구분이 안 되니깐, 어려울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시간 되면... ^^

부산의 준영맘입니다 2010-11-1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편안한 문학수업입니다.
쉬운 말로 개념 정리를 해주시니 더 쏙쏙 들어오네요.

멀리 떠나있는 아들에게도 보내고 싶은 글입니다.
아직은 열어볼 상황이 아니지만 보내주신다면... 일러두겠습니다.
supertot1@naver.com 입니다

글샘 2010-11-21 21:10   좋아요 0 | URL
제가 꼬박꼬박 보내드리긴 어려울 거 같구요.
아래 <우리학교>란 카페에 가시면 <글샘의 샘터>에 글들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복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afe.daum.net/ohmy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