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기는 한데, 이제 확실히 늦더위임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더위 속에 가을이 들어와 앉은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 아무리 용맹한 척 하는 장수라도, 슬그머니 숨어드는 복병을 다 알아챌 수는 없는 법이죠.
여름은 그렇게 가고, 또 가을은 그렇게 오고 할 거예요. 

요즘 마기 님의 시를 보니깐, 마음 속에서 불이 확 일어났다, 잦았다 하기도 하구요.
어느 순간, 환한 불이 확, 켜지기도 하고, 깜깜한 암흑 칠흑의 어둠이 오기도 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거 같네요. 

시 속에 담겨있는 언어들이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고 계시니 말입니다.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그런 면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데 말이죠.
마기 님의 시 속에선 구체적인 '인물, 사건, 배경'이 묘사되어있지 않거든요. 

다만 한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이, 연속 장면으로 플레이되지 않고, 스틸 컷으로,
한 장면으로 캡처되어 보여지는 것이 시의 형식이기 때문에, 마기님의 마음 속에 또는 주변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모두 아는 사람 아니고는, 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오늘은 배경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시들을 몇 편 골랐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데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뭘 말하고자 하는 거지?
이럴 때, 유사한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있다면, 훨씬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겠지요. 
시를 읽을 때, 독자가 완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이 보여준 한 장의 필름, 한 조각의 '스틸 컷'을 들고,
앞 뒤에 구체적 배경, 인물간의 관계, 사건을 상상해서 집어넣어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랍니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누가 울고 간다, 문태준>

문태준의 시는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기막힌 재주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경험은 스틸 컷처럼 단편적일 수밖에 없겠는데요,
영화의 플래시 백 장면처럼, 여러 장의 스틸 컷이 플래시 터지는 순간처럼 조합을 이뤄서 엉성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은 그 스틸 컷들 사이의 빈 공간에 자신의 경험을 집어 넣어, 나름의 해석을 하곤 하죠. 

이 시는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에 실린 시 입니다.
제목이 울죠. 누가 울고 간다.
울긴 누가 울었겠어요. 화자가 울고 있죠.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울면서, 누가 우네~ 이런 거.
우는 자기는 밉잖아요. 쓰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누가 울고 간다. ^^ 

이 시의 2연에는 '외따롭고, 머츰하다'는 낯선 말이 나옵니다.
외따롭다는 '외롭다'와 '따로따로 떨어져있어 외롭다' 이런 생각들이 함축된 좋은 시어죠.
머츰하다는... 눈이나 비가 그쳐 뜸하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실려있는데요, 여기서는 생각이 멈칫, 거리면서 진행이 잘 안 되는 상황인 것 같기도 하구요. 좀 멍청하게 멍~때리고 있는 장면인 거 같기도 해요. 

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에서'란 그림을 위에 덧붙였습니다.
저 여성은 제법 오래 창가에 서있는 거 같네요.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걸로 봐서 말이죠.
뭔 생각에 젖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여성의 마음이 '외따롭고 머츰할' 것 같아서 고른 그림입니다. 

화자 옆으로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가 '와서 울고, 와서 울고 갑니다.'
그 새를 보고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는데,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가버렸습니다. 
새가 울었는데, 그 새의 울음이,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게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가느단 울음이 이어지네요.
새의 울음인지, 화자의 울음인지, 낮게, 여리고, 그리고 길게... 울음이 납니다.
귓속에서 이명처럼 울리는 울음. 그 소리를 꺼내어 펼치면, 추억이 떠오르겠지요.
추억 속에는 '그렇게 울다 떠난 사람' 하나쯤, 간직되어 있겠지요.
그 울음이 펼쳐져서 가슴속에 붉게 번지고 스며들어,
이제는 끄집어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거네요. 

번짐.
저는 이 단어가 참 좋습니다.
얼룩,에 비하면 얼마나 투명한 단어인지요.
번져가는 모습도 좋구요. 한때 담배 연기가 공기 중으로 번져가는 모습이 좋아서 담배를 배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체력이 고갈돼서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지만 말이죠. ^^
그림을 그릴 때면, 투명한 물통을 씁니다. 믹싱보울인데요. ^^
거기 원색의 물감이 꼬불랑거리면서 번져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 흥분돼요. (ㅋㅋ 글샘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다. 저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ㅎㅎㅎ)

시를 읽는 일은, 시어를 음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런 시 하나 가슴에 품어 두고, 추억에도 젖어보고, 그 빈칸 속에 자기를 은근히 밀어넣어도 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화자의 배경지식과 독자의 배경지식은 다르지만,
어딘가에서 접점이 있을 것이고, 그 접점에서 유사 체험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거겠지요.  
이런 배경지식을 어려운 말로 스키마(schema), 또는 셰마라고 합니다. ^^ 잘난 체~

배경 지식, 나왔으니 야한 이야기 하나 할게요. ^^
어떤 바람둥이 남편이 너무 미운 아내는 돈을 들여서 한 달 식량과 함께 남편을 무인도에 떨궈 뒀더랍니다.
한 달 뒤에 무인도엘 갔더니, 그 남편이 어떤 동물에게 뭔갈 먹이고 있더래요.
뭔가, 감이 오시나요?
바로,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이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외국인에게 들려준다면, 이해가 가지 않겠죠?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단군신화라는 배경 지식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에서 시작하는 유머니깐 말입니다. 

자, 그럼 좀더 야한 걸로~(요새 글샘이 19금에 재미붙였어요. ㅎㅎ) 
전에 어디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데,
언제 지울지 모릅니다.
a 모양의 테이프, 무삭제판 전격 공개...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클릭을 했는데, 벙 쩠어요. 
이런 게 떴기 때문입니다. ㅋ 

>> 접힌 부분 펼치기 >>

 

기발하죠.
우리가 언제부턴가 O 모 양의 테이프, B 모 양의 테이프... 이런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A자만 보고도 누굴까? 이런 생각이 파박 떠오르는 거져. ㅎㅎ

문태준의 다른 시 한 편 보죠.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 만지작 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 보았다
무른 나는 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문태준, 그맘때에는> 

제목이 '그맘때에는'입니다.
그맘때, 화자의 마음 속에선 언제나 그맘때, 면 떠오르는 심상이 있는 거죠.
양철나무꾼님,
나무꾼님에게 그맘때는 어떤 계절이죠?
마기님, 마기님에게 그맘때... 하면 누가 생각날까요? 
갑자기 물어서 당황하셨죠. ㅋㅋ 수강생 놀려먹는 거 재밌습니다. ㅎㅎㅎ 무료니깐 많이 놀려야지.
pjy님, 혹시 백지영 아니시죠?  내 귀의 사탕먹는... ㅋ

이 시의 시적 화자,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는 그 이에게 '그맘때'에는 이런 생각이 납니다.
그맘때는 '잠자리가 날고, 잠자리가 사라지는' 그런 시절이에요.
벼가 차츰 익어갈 늦여름 무렵이면 파란 논둑 사이로 밀잠자리, 고추잠자리들이
어지럽게 하늘을 수놓고는 했더랬는데요. 

그럴 무렵, 화자는 어떤 비석 옆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비석은 돌로 만들죠. 오래오래 단단하게 거기 버티고 있으라구요.
그 단단한 화강암 재료의 비석을 쓸어보면서, 아, 넌 참 단단하구나.
나는 물러터진 인간인데,
나약하고 보잘것 없어서,
금세 스러질 인간인데...
화강암의 석재가 풍기는 단단함이 손 끝에서 사라지기도 전인데,
내 손을 애처로이 바라봅니다.
빈 손입니다. 텅 빈 인생이죠.
그렇게 하루가, 보잘것없는 하루가 지나갑니다. 빈 손인채로...

화자는 마음이 여려서,
금강, 이란 말을 싫어하나봅니다.
뭐, 영원한 사랑,
끝없는 사랑, 언제까지나... 이런 단단해 보이는 말들,
화자하고는 인연이 아닌 거 같죠? 
그런 말들을 쉽게도 쓰는 사람들 보면, 금강석처럼 마음도 단단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안 그런데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후두둑 후두둑하면서 풀잎에 내려앉고 떠오르는 어지러운 비상을 즐기던 잠자리들,
그들이 어느 순간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린 걸까요?
여름의 우르릉거리는 우렛소리를 따라 간 것일까요?
온 세상에 잠자리가 가득할 것만 같던,
영원히 잠자리들의 세상일 것만 같던 그 들판에서, 

그맘때가 오면요. 잠자리들이 사르르 스러지듯,
영원히 불멸의 몸일 것 같던 나도, 그대도,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이 아닌 거죠.
자, 이쯤에서 손바닥 한 번 봐 주세요. ^^
빈 손.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이야기를 조금 넣으니깐, 어떤가요?
이거 뭐야? 이러던 데서, 아, 얘도 나랑 똑같은 애구나~ 이런 동감이 밀려 옵니까? 
잠자리떼를 보면서, 비석 하나를 만나면서,
관찰한 것이 마음 속으로 와락, 달겨드는 때,
관조의 순간입니다.
시인들은 이렇게 예민해요.
민감하고, 온 몸이 감수성이어서
촉촉하게 젖어있습니다. 개구리 표피처럼요.
그러다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향기가 끼쳐오기라도 하면,
표피에서 산소를 잡아채듯, 낚아채는 거죠.

시를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예요.
시는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편이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할 거란 생각을 합니다.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란이 깎은머리
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밤에
오동닢 닢새 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저 감기우고 다시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合掌이냥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조지훈, 僧舞> 

뭐, 교과서에도 실려서 다들 알고 있는 조지훈의 승무입니다.
조삼모사. 기억 나시죠? 낯선 시 읽었으면, 디저트로 익숙한 시 하나쯤 읽어도 무방하겠죠.^^ 

익숙한 시인데, 고딩들에게 이 시를 이해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 시하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답니다. 애들이 다들 긴가민가 하고 듣는데,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에요. 

화자는 30대 중반쯤의 신문 기자쯤 됩니다.
절간에 어떤 스님과 승무에 대한 취잿거리를 만들 일이 있어서 절에 하루 묵습니다.
초저녁에 개울에 나가 땀을 식히고 있는데,
조용조용한 걸음의 한 비구니를 만나죠.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음 속에 계속 비구니의 표정이 남아있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스님이 되었을까... 

그러다 밤이 이슥해서 부처님께 바치는 공양으로 '승무'가 펼쳐집니다.
미리 약속이 되어 이 기자는 줌렌즈로 당겨가면서 승무를 촬영하곤 하는데요.
아,
승무를 준비하는 스님이 아까 그 비구니인 거예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왜인지... 

얇은 비단으로 하이얀 고깔을 접어 쓴 모습,
뷰파인더로 보인 그 모습은 한 장의 나비였어요.
아, 중력의 지배에 개의치않고,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이용해 나풀거리며 공기 속의 계단을 찾아가는 나비 말이죠. 

스님의 두 뺨으로 불빛이 비치는데,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그 눈물은 여승의 눈물인지,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끔쩍이는 기자의 눈물인지, 분간도 안 가지만요.
텅 빈 무대에 노란 촛불 둘이 말없이 녹고 있습니다.
고요,
원시적인 고요함이 지배하고 있어요.
아주 정적이죠.
뷰파인더 안에서 간혹 한들 흔들리는 촛불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정지한 상태 같습니다. 

오동잎 잎새에 달빛이 비친 배경으로, 드디어,
승무가 시작됩니다.
긴 한삼자락을 휘감아 하늘을 가리웁니다.
어쩌면 나비처럼 중력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작이에요.
이제 뷰파인더에 스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알록달록 의상에
화려한 손동작이 아름다웁게 가득 찼습니다. 

그러다, 작가는 찍었어요.
새초롬하게 내민 외씨같은 버선발 한 쪽. 

여승은 동작을 줄이고,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데드 슬로우로...
여리게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먼 하늘 한개 별빛을 응시합니다. 

작가는 다시 비구니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요.
아~ 그러다 보고 말았어요.
그 이쁜 복사꽃 두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 맺힌 것을...
찰칵찰칵찰칵, 연속 사진으로 그 방울을 잡아내려 계속 찍습니다.

세상사에 시달린 한 가냘픈 인생이,
어쩌다 머리를 밀고, 번뇌를 별빛으로 보내는 승무를 추고 있는 것이냐!
아, 인생의 사닥다리는 어디에서 끊어져있는지 알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다시 동작은 이어집니다.
나어린 여승의 동작치고는 무척이나 유연하고 장엄해요.
그래서 그 동작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합장이라도 해야할 듯 한 느낌이랄까?
시간은 점점 흐르고 밤이 깊어 귀뚜라미 소리도 어디선가 들리는데요. 

다시 스님의 모습으로 가득한 뷰파인더 안에는,
한 마리 나비로 정지한 여승의 모습이 잡힙니다. 

처음의 나비와는 조금 다른 나비죠.
번뇌를 별빛에 의탁하고 난 후라서 그런 걸까요?
뭔지 모를 애상감에 젖어들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어때요.
조지훈의 승무,가 그림으로, 아니, 사진으로 가득 마음에 들어차셨나요?
이런 시를 그냥,
주제 : 승무를 통한 속세의 번뇌의 종교적 승화
이렇게 외워버리면 재미없잖아요. 

빈 칸을 조금 메워보고,
그러면서 시를 익숙하게 끌어안고 쓰다듬고 그 부드러운 언어의 결을 느끼는 거죠. 
느껴지세요? 매끈거리면서 보들보들한
어쩌면 어린아이 젖살에서 나는 향기라도 맡아질 것 같은 시의 냄새가... 

7,8년 전에 '눈사람'이란 드라마가 있었어요.
공효진이 형부인 조재현을 사랑하는 뭐, 그런 설정이었는데,
노래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한번 들어 보세요~

 

노래 나오기 전에,
첫부분의 공효진 목소리가 왠지 애끊는 느낌이 있죠.
보고싶을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사랑.
사람들에게 막 자랑하고 싶지만, 꺼내면 눈사람처럼 녹아서 사라질까 두려운...
그런 사랑,
이런 설정 하나로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겠죠. 

하이데거란 철학자가 있어요.
'인간은 의미있는 존재, 순수한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후설의 의견에 맞짱뜬 사람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신이 선택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세계에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라고 정의해요.
음, 쿨한 형이죠. ^^ 

째콤입니다. ㅎㅎ 아세요? 째콤.
옛날에 인디언 마을에 세 아들이 있는 가족이 있었어요.
큰 아들 달빛 아래서, 둘째 큰 나무 기둥, 막내 째콤.
엄마, 우리 이름은 어떻게 지었어? 이렇게 물었더니,
큰 아들은 달빛 아래서 닷,닷,닷... 사랑을 나눈 결과였구요.
둘째는 큰 나무 기둥에서 닷,닷,닷...(맘마미아 버전이라구요~) 

근데, 막내가 묻죠? 엄마, 째콤은 뭐야?
엄마가 째려봅니다.
뭐긴 뭐야, 임마! 째진 콘돔이지...

으---음!! 다시 하이데거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자의와 상관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 것을 한자어로 피투성(被投性)이라고 해요.
피투성이,가 아니라, 피투성!
던져짐을 입은 존재! 피,투,성.

이 피투성은 인간의 기분, 그 중에서도 불안을 통해 자각된대요.
피투성, 세상에 내버려 졌음이 늘 불안을 가져오는 거죠.
예를들면, 일상생활의 어느 순간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혹은 머지않아 죽을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와 같은 불안을 내포한 물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왜 나는 여기에 존재하는가라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여기에서 절대로 도망가지 못한다는 피투성을 자각할 수밖에 없구요.
일단 피투성을 자각할 때,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될 것이며
이 세상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잠자리들이 사라지듯이...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짜릿하지 않으세요? 난 느끼는데~~ ㅎㅎㅎ
시를 읽는 일은 이렇게 신나고 짜릿한 체험이랍니다.
철학 책을 읽다가, 한 편의 시와 같은 영감을 얻는 오르가즘의 순간. 

오르가즘은 산소의 결핍에서 오는 거라는데요. ^^(갈수록 성인판 시 특강으로 변질되고 있음)
그래서 섹스를 하면 숨을 헐떡거리고, 산소가 결핍되고, 오르가즘을 느낀다는데...
시를 읽으면, 맛있는 섹스보다 더 아름다운 오르가즘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가 산소를 막 먹나봐요. ㅍㅎㅎ

아, 다시 하이데거로...
하이데거 왜 이렇게 잡담 속에 잠깐 튀어나오는 거야? ㅋ
이런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포착해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시작돼요.
이런 시도를 기투(企投)라고 합니다. 

피투성이 세상에,
피투성의 외로운 불안감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
그걸 언어로 표현한 것이 <기투>라는 것이죠.
뭔가 기획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인데... 

마기님과 제가 요즘 하는 짓이 바로 <기투>입니다.
마기님은 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ㅋ
저는 그 시의 바다를 항해하는 네비게이션을 프로그래밍하고 있죠.
제 네비게이션은 아직 프로그래밍 중이라서 목적지를 콕, 하고 찍으면 정답을 보여주는 수준은 아니지만요.
좀 불안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안심 보험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 

sk 텔레콤에서 <되고송>을 만들어서 성공한 적이 있었죠.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하던 노래요.
생각대로 T의 로고를 보면, 그냥 폐곡선이 아니에요. 

한 번 꼬여있죠. 바로 뫼비우스의 띠랍니다.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그곳.
그맘때에 머물러있지 않은 마음을 내는 바로 그곳.
어디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그곳을 지향하는 회사의 경영마인드가 느껴지는 로고예요. 

제가 젤 좋아하는 한 권의 책!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아무데도 마음 붙잡히지말고, 그 마음을 내어라~ 생각대로~~ 티,

    

피투성으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이 존재들이 한 번 꼬인 이 도형에 의지하는 그런 것이 바로 <기투>가 되는 것인데요.
오래오래 기투의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오래된 영화 중에 <시네마 천국>이라고 있잖아요.
거기 보면, 맨 마지막에 토토의 주제가가 나오는데요. 엔니오 모리꼬넨가? 
속세에서 나누는 더러운 장면이라고 신부님들이 잘라냈던 키스신들을 모아서 편집한 화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키스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런 생각을요.
비록 버리려고 잘랐던 모든 것들이지만, 그것들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인지...
생각을 조금 바꾸면,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조각나서 버려진 존재들처럼 무의미한 '센'에 머물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 스틸컷들을 모으고 모아 나가면,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 나가다 보면> - 찾을 심 尋 한 자만 붙여 주면요.
센 千이 치히로 千尋가 되는 환상적인 순간을 맛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퍼즐조각들이 잘 맞지도 않고, 전체 그림의 윤곽이 보이지도 않아서 불안해하는 인간에게,
뭐, 어떠냐, 이 자슥아~
꼭 죽어 봐야 지옥을 알겠냐?
쪼가리난 필름들도 눈물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곳이 바로 천국이야, 임마!
시네마, 파라디소~ 시네마 천국!!! 

이런 외침을 주는 거나 아닌지... 오늘도 센은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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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8-0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투성(被投性/Geworfenheit) 게보르펜하이트
기분(Stimmung) 슈티뭉
불안(Sorge) 조르게
기투(企投/Entwurf) 엔트부르프

2010-08-0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8-04 20:43   좋아요 0 | URL
보통 사람은 그걸 놓쳐버리고 마는데, 시인은 그 순간을 잡는 거잖아요. ^^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죠. ㅎㅎ
조그만 돌멩이를 여섯개의 손으로 꼭 끌어안고 그냥있는... 힘빠진 잠자리를 보셨군요.
스르르 풀려나기 직전의 잠자리를... 뭐, 사람도 그런 거겠죠.

양철나무꾼 2010-08-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그맘 때는 지금이신가 보군요,인디안 섬머라고도 불리우는 요즘.

제 그맘 때도 지금이예요.
오행을 해석하는 여러가지 관점 중에 '중앙土'라는 개념이 있어요.
나머지 木火金水가 중앙토로 가기 위해서 거치는 '토용'이라는 시기가 있는데,
제가 지금 그'토용'인거죠~

중앙토가 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시기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려 간과하기 쉽죠.
전 좋은 샘을 만난 덕분에 온몸으로 누리는 행운을 경험하고 있는 거구요.

제가 샘의 특강을 들으면서,
또 마기님의 시를 읽으면서,
어렵거나 궁금했던 부분들이 이렇게 해결되어서 더 좋은 것도 있구요~^^

글샘 2010-08-05 13:09   좋아요 0 | URL
정답이네요... 항상 '지금'이 그맘때입니다. ^^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거구요. 스틸 컷이죠. 스틸 컷! 한 장. 오늘도...

좋은 샘...이라고 칭찬하시면, 자꾸 쓰고 싶어질 거예요. ㅎㅎ

pjy 2010-08-0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장면, 한 컷이 모여서 인생인거죠^^
근데 어쩌다기 멈칫하는거야 그렇다쳐도 너무 사소한 장면마다 퍼드득거리면 과다 에너지소모ㅋㅋ;
그래서 예술가들이 쫌 힘든가? 생각이 듭니다~

마기님은 이런? 오후에 저런 감성이 생긴단말입니까?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글샘 2010-08-07 09: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소한 장면마다 퍼드득거리면... 지치죠.
마기님의 감성, 정말 감탄할 만 해요.^^

낮에나온반달 2010-08-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좀 오래 알라딘을 쉬었더니 그동안 특강이 세 개나!!!!
소급해서 읽기는 하지만 출석 도장은 여기다 찍습니다.
좀 불성실한 학생이지만 이런 문제아도 함께 품어가실 거라 믿으면서.
설마... 우등생, 수제자, 범생이들만 제자로 받는 건 아니시죠?
그렇다해도 할 말은 없고,
내치시면 몰래 들어야지 생각합니다.

2. 속에 날개를 감추고 있던 제자를 만나시고,
날개를 끄집어내주시고,
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군요.
마기님이 시를 써본 적이 없다는 말이 혹, 뻥이 아닐까 싶은...
천재일까요? 아님 뛰어난 스승님 때문일까요?

3. 제 서재에 달아주신 댓글에 대한 답을 지금 합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 나오는 시들을 특강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셨는데...
그게 제 오케이가 필요한 일이겠습니까.
무조건 찬성이지요. 특강이 계속되는 것만 해도 어딘데요.
그 만화책을 읽지 않으시고 특강을 하시면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글샘 2010-08-07 09:3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자들 중엔 다들 있어요. 제자를 내치면 선생이 아니죠. ㅎㅎㅎ
네. 마기님의 날개를 제가 끄집어냈다면 정말 큰 기쁨입니다. 근데, 저도 뻥이 아닐까... 의심해요. 천재이거나... 뛰어난 스승은 한 게 없는걸요. 뭘~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 나오는 시들은, 생활이 진하게 묻은 거여서... 특강보단 이야기 형식으로 집어넣어야 할텐데... 그 시들은 유념해 뒀다가 특강에서 틈틈이 엮어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한방에 가는 건 재미가 없을 거 같구요. 제 능력도 안 됩니다. ㅎㅎ
더운 여름 잘 나세요~

세실 2010-08-1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내용도 설마 1시간만에 쓰신 거예요? 일필휘지~~~
님은 아무래도 EBS로 가셔야 할듯. ㅎㅎ
승무에 대한 님 나름대로의 설정. 멋집니다. 30대 중반의 신문기자라...

그리고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느낌이 좋아서 몇번 소리내어 읽었는데
대략 맞추었네요. 헤헤~~~

글샘 2010-08-11 01:32   좋아요 0 | URL
요건 두 시간 정도 걸렸을 거 같습니다. ^^
저는 ebs 싫어해요. ㅎㅎ
시가 막막할 땐, 머릿속에 저렇게 드라마를 만들면, 재밌어 지더라구요.

아무래도... 가재미는, 반갑죠?

세실 2010-08-11 19:51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 헤헤~~~ 사무실 책꽂이에 두고 생각날때 마다 읽고 있습니다. 누구? ㅎㅎ

글샘 2010-08-11 21:48   좋아요 0 | URL
틈틈이 시집을 펼치는 세실님~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