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흐리네요. 

알라딘에서 마기 님이란 제자를 만나서 팔자에도 없는 시 특강을 하고는 있는데요.^^
아, 마기 님 시가 일취월장, 날로날로 진보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특강하기가 오히려 두렵습니다. ㅎㅎㅎ
저의 일방적인 칭찬은 아닐 것입니다.  
수강생들이 한결같이 칭찬을 하니깐 말이지요.
지난 시간의 '바람에게 배웠다'란 시는 뜻밖의 놀라운 수확이었습니다.
그 전에 마기 님께서 '노래'라는 놀라운 시를 썼을 때, 제가 '당분간 이 시를 뛰어넘는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마기 님을 놀렸는데, 아, 정말 괄목상대할 만한 분입니다. 

마기 님, 나중에 유명해 지시더라도 저 잊으심 안 됩니다. ^^  

마기 님의 '바람에게 배웠다' 같은 시를 <관조적인 시>라고 합니다.
관조적이다.
음, 뭔가 좀 있어 보이죠?
무게가 있는 말 아닌가요? 관조적...
한자로 볼 관 觀, 비출 조 照 를 써서 관조,란 말을 씁니다.
우리말로 풀면, "뭔가를 골똘히 보아서 생기는 마음 속에 비치는 생각"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기 님이 골똘히 바라본 것이 무얼까요?
제가 보기엔 마기 님의 삶이에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골똘히 살펴보신 거죠. 그러다 보니깐, 마음 속에 슬쩍 생각이 비쳤을 겁니다.
그걸 잡아서 쓰는 걸, 관조적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 관조적인 생각에 <바람>이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형상화>를 시도한 시가 마기님의 시였죠.
그러다보니깐, 삶을 아직 오래 살지 않은 젊은이들에게선 관조적인 자세가 나오기 어렵겠지요.
사물과 삶을 연관짓고, 거기다가 <형상화>의 옷을 입혀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양철나무꾼 님 서잰가 어디서 이 시를 만났습니다.
김해자의 <데드 슬로우>입니다. 우선 한번 읽어 보시죠.
61년 소띠 누님인데, 많이 유명하신 분은 아닌 거 같더군요.  

큰 배가 항구에 접안 하듯
큰 사랑은 죽을 만큼 느리게 온다
나를 이끌어다오 작은 몸이여,
온 몸의 힘 다 내려놓고
예인선 따라 가는 거대한 배처럼
큰 사랑은 그리 순하고 조심스럽게 온다
죽음에 가까운 속도로 온다

가도 가도 망망한 바다
풀 어헤드로 달려왔으나
그대에 닿기는 이리 힘들구나
서두르지 마라
나도 죽을 만치 숨죽이고 그대에게 가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김해자, 데드 슬로우>

시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해 용어가 두 가지 등장하네요. 데드 슬로우와 풀 어헤드, 그리고 예인선도...
큰 배, 예를 들어 수십 만 톤 되는 배는 항구에 들어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부산같은 항구 도시엔 컨테이너선 들도 많은데요.
그런 배가 관성에 밀려 항구까지 들어왔다가는, 그 관성이 아마 항만을 다 부수고도 남을 겁니다.
물리학에서 F=ma라고 하잖아요. ㅋㅋ 항만을 부수는 힘에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배를 접안시키는 방법이,
바로 데드 슬로우예요.
배는 바다 한복판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도선사가 예인선으로 맞으러 나오기까지 닻을 내리고 기다리죠.
그러면, 그 무거운 배를 움직이려 밧줄로 함께 묶인 예인선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속도 역시 '겁나게' 슬로우 해야 되겠죠?
질량이 어디 간 거 아니니깐 말입니다. 그래서, 큰 배는 거의 서있는 듯한 속도로... 천천히 천천히... 항만으로 다가옵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도선사는 엄청난 기술로 취급된답니다.(돈도 열라 번대요. ^^) 

아, 바다에서 속도계를 풀로 놓고 앞만보고 달리던 <풀 어헤드>가
이제 목적지인 항구를 앞에 두고, 멈춘 듯한 속도로, <죽자고 느린> 데드 슬로우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속도를 '관찰'한 시인은 '마음에 상이 맺'힙니다.
아, 이 속도로 가다가 언제나 항구에 도착하나...
가기는 가는 건가?
그런 관찰이, 어느 순간,
아이고, 내 사랑하고 이놈의 배가 움직이는 꼬라지가 똑같구나.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그치만, 저는 좀 웃음이 나는데요. 피식 웃게 됩니다.
저렇게 죽는 시늉을 하지만요, 사실은 데드 슬로우의 속도는 큰 배를 항만에 반드시 접안시키기 위한 안전장치임을 화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쩜 반어같아요. 속마음은 어떻겠어요? 

얌마, 암만 느려도 닿긴 닿을 거야, 꼼짝 말고 기둘려~~ 

이런 마음이 비추이지 않습니까? 참 제멋대로 해석이죠. ㅎㅎㅎ 
그대가 기다리는 창가로 금세 달려가서 활짝 웃음을 짓는, 그런 만남이 아닌 것 같죠?
오래오래 기다려온 사랑이지만, 쉽게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 보이지는 않는 조금은 슬픈 사랑.
그렇지만, 저에게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조>가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시선으로 읽히네요.  
관조를 통해 기다림에 대한 넉넉한 통찰력 이 생긴 것처럼 보여서 든든해요.

이왕 관조를 공부한 김에, 같은 작가의 작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활짝 연 자줏빛 심장은
당신에게 날아가는 화살이다 아니
당신이 꽂히길 기다리는 과녁이다
따스한 빛살이여,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온몸 굽혀서라도 간다
마알갛게 속 내비치는 연자줏빛 혈관 내뻗다
지지대 휘감고 돌아 비틀린 허리
가늘고 긴 용맹정진이여,

당신에게 가는 길은
날마다 용솟음치고 밤마다 숨죽이는 일
당신을 사랑하는 길은
밤마다 희망을 접고 날마다 다시 손 뻗치는 일
당신과 하나 되는 길,
나를 떼어내는 일이라는 듯
어젯밤 뚝 떨군 검붉은 살점 위로
오늘은 여린 잎살 하나 솟아오르고 <김해자, 사랑초>

사랑초란 풀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검색했더니, 잎사귀에 화살같은 무늬가 있기도 하더군요.
그치만 사진이 별로 안 이뻐서, 조 위의 것으로 넣었습니다. 저것도 사랑초래요. ^^ 

화자가 보고 있는 건, 당연히 '사랑초'죠.
그런 관찰을 통해서 화자의 마음에 비추이는 상념은,
풀꽃일 뿐인 사랑초에게서,
심장과 화살과 과녁을 느낍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온몸 굽혀서라도> 가는 <용맹정진>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앞의 '데드 슬로우'에 비하면 훨씬 대놓고 가죠? ㅋㅋ 

당신에게 가는 길은 역시 탄탄대로가 아닌 모양이에요.
<숨 죽이는 일>이 되고, <희망을 접었다가도 다시 손 뻗치는 일>이 되니까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는 <나를 떼어내는>, 그래서 <검붉은 살점이 뚝 떨어지는> 고통스런 과정과 함께합니다. 

그렇지만, <당신과 하나되는 길>의 그 기다림...의 결과로, <오늘은 여린 잎살 하나 솟아올>랐습니다.
작가는 마음 속 '슬픔'을 <관조>를 통해서 '희망의 기다림'으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네요. ^^ 

수강생 여러분, (여럿이 듣기나 하는 건지...)
제 해설을 읽고는 반드시, 꼭, 위의 시로 되돌아가서 감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안 보이던 단어들이 보이는 것을 느끼면서,
뭔가 공부가 되었고, 감상의 포인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잠시라도 착각에 빠져 보시라는 거예요. ㅎㅎㅎ 

기다림,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기다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간절한 바람이 들어있는 거예요. 와서 만나기를 말이지요. 

역시 기다림의 미학의 최고봉은 한예종에서 김회장네 둘째 인촌이한테 퇴장당한 황지우의 시입니다.
조금 길지만, 길단 생각 안 드실 정도로 좋은 시입니다. 감상해 보시죠.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화자는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고 기다립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이니까요.
그런데, 그 기다림은, 마음의 조바심을 동반하죠.
옛날 노래에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요... 내 속을 태우는구려.' 이런 가사가 있었지요.
좀 싸구려 티가 나죠? ㅋㅋ 커피 한 잔과 내 속을 태우는구려. 

뭔가 관찰한 속에서 마음에 비추이는 '관조'가 없잖아요. 그러니 싸구려틱하죠.
시는 물론 클래식한 계급에서만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감정보단 조금 고상한 '감추는 장치'가 있죠. 그 감추기는 은유가 되기도 하고, 관조가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내 속을 태우는구려'와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사이에는 '와'만 있는 게 아니죠. ^^
전자가 직설적으로 아이고 속탄다~~를 외치는 반면, 후자는 가슴 애리는 일로 감각적 표현을 합니다.
감각이란 건, 뭐 이미지, 배우셨죠? 감각적 이미지...
보이는 건 시각, 들리면 청각, 맛은 미각, 느낌은 촉각, 냄새는 후각...
시에서 가장 흔히 쓰는 게 시각인데요, 여기서는 가슴이 애리는, 가슴 속이 알싸하게 뒤집혀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네, 기다림의 간절한 조바심을 촉각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아, 얼마나 간절한지, 몇 글자로 다 보이지 않습니까?
어려서 부모님 오시길 간절히 기다리다보면, 형제들끼리 이제 정류소 왔다, 전봇대 돌았다, 슈퍼 앞이다... 이러고 기다리잖아요.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너였다가, 너였다가... 다 너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이여'를 부름을 기점으로 화자의 태도는 '기다림에 조바심내는' 수동적 태도를 버립니다.
이제 화자도 그대에게 가기 시작하죠. 적극적 태도와 능동적 자세로 그대에게 다가섭니다.

아직 너와의 거리는 멀겠지만, 그 아주 먼 데서 부 나는 너에게 가기 시작하고
아주 오랜 세월 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합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금세> 이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거리는 <아주 먼 데>기 때문에, 아주 먼 데서부터 서로 움직이기 시작하구요.
그래서 <아주 오랜 세월>동안 <천천히> 다가서는 기다림의 자세를 마치 마음공부하듯 스스로를 잡도리하고 있네요.
네가 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못견디게 힘든 일이지만,
내가 천천히 먼 훗날을 내다보며 다가가는 일은 힘겹지만은 않은 일이 되겠지요.  

자, 여기서 퀴즈, 하나! 
위의 시를 쳐다보지 말고, 이 시에서 '문'이 몇 번 나왔을까요?
퀴즈, 둘!
그 문은 어떤 문이었을까요? 

정답은 퀴즈 1번.
     세 번입니다. ^^
퀴즈 2번의 답은,
      문을 열고, 문이 닫힌다, 문을 통해... 이런 문입니다. 

기다림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작가는 '문'을 등장시킵니다.
그 세 번의 문은, 처음엔 자꾸 열립니다.
아, 미치겠죠.
저 문이 열리면 우리 임이 오시려나.
아냐, 다음 문이 열리면 오실거야... 조바심, 심하면 쓰러지죠. ㅎㅎ 

두번째 문, 이제 닫힙니다. 으--윽, 좌절하죠. 닫힌 문 앞에서.
님은 갔슙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슙니다...
기다리던 문이 닫혔을 때, 아, 그 기분은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거기서 끝이면, 시가 아니죠. 일기고, 낙서고, 절망의 기록일 뿐이겠죠.
그렇지만 세 번째 문, 통하는 문이 등장합니다.
네가 닫혀있지만, 내가 가려고 맘먹고 달려들면, 너는 통할 거야! 이런 희망이 보이십니까? 

황지우가 이 시를 쓰던 시절은 서정주가 좋아하던 전두환이 독재를 하던 때였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 그걸 닫힌 문으로 형상화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닫힌 문을 보고 그저 눌러앉아버리면 슬프죠.
그 문을 통해 데드 슬로우로,...
<아주 먼 데서>, <아주 오랜 세월을>, <천천히> 오고 있는 민주화라면, 열린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기다리는 일에도 마음 조급해 하기만 해선 안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 해도, 강사한테 깡통 던지진 않으시겠습니까? ^^(갈수록 눈치 보임)
요즘 양철나무꾼님이 가끔 인용하시는 시도 멋지구요.
낮달님이 엊그제 쓰신 '시'의 리뷰도 아주 멋지더라구요.
돌팔이 시 특강에 다들 감탄하셔서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졌었는데... 긴장타야겠습니다. 

특강이 넘 진지하니깐,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진 이야기 좀 할게요. 19금입니다. 20토는 없습니다. ㅎㅎㅎ 

이 민요 제목이 뭔지 아시죠? 천안삼거리
가사는 이래요. 

천아은 삼거리 흥~흥~
능수야 버들은 흥~흥~
제멋에 겨워서 흥~흥~
축늘어 졌구나 흥~흥~
에헤야 데헤야 흥~흥~
성화가 났구나 흥~흥~ 

이 노래가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 아이 초딩 4학년때 담임 샘이 이제 갓 교대 졸업한 2년차 처녀샘이었는데요.
이 노래를 갈치고는... 우리 애 통지표에, '천안삼거리를 분위기에 맞춰 잘 부를 수 있음'으로 적어 둔 것을 아직 기억합니다.
뭐, 이상한 줄 모르시겠죠? 아직은...
그러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의 서문에 붙은 이 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실감하시게 해 드릴게요.  

이런 재미없는 민요는 없습니다.
이 가사를 그대로 읽으면, 천안이란 도시의 3거리에 능수버드나무가 늘어졌다가 바람에 날리는 서경적인 풍경이죠.
민요란 것은 '재미'와 '흥겨움'이 어우려진 노래입니다.
주로 노동요로 기능하는 것으로서,
은근히 이성에 대한 감정이 쏠리게 하는 가사가 들어가야 되구요. 박자는 신명이 나야 하는 거죠.
신명나는 박자도 아니고, 좀 축 처진  흥~흥~ 이런 후렴구도 민요의 <구비 전승>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19금 해설 들어갑니다. 

천안 삼거리는 천안 씨티의 쓰리 브랜치가 아닙니다.
천은 클로쓰(옷감)구요, '안'은 인(속)입니다.
아, 어떤 과부가 콩밭을 매면서 땀을 빨빨 흘리고 있었어요.
근데, 그 동네 삼식이 넘이 지게를 지고 휘파람도 가볍게 논두렁 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해가 설핏 지려하기 좀 전인데요, 아, 삼식이의 실루엣이 그만 그 과부 눈에 들어온 거예요.
아, 바로 in the cloth, three branch가 보인 거죠.
천 안쪽의 삼거리 말입니다.
아~~~ 과부 코에서 끈적하고 눅진한 소리가 나요.  흥~흥~
이렇게 요망한 노래랍니다. 

능수 버들은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요?  흥~흥~ ㅋㅋㅡ  그 삼거리에 말이지요.
그리고 제 멋대로, 축 늘어졌다가, 성화가 나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아이고 망측해라... ^^(빨개졌어요.) 
이 노래의  흥~흥~ 은 과부가 혼자서 얼굴 빨개져서 내는 흥소리입니다.
그래서 천안 삼거리란 민요의 멋은 '요망하고 은근한 멋'이죠. 

근데, 우리 아들이 4학년때, 이 노래를 분위기에 맞춰 잘 부를 수 있었다구요???
그 처녀 선생이 뭘 좀 알고 그런 걸 적었으려나요? ㅍㅎㅎㅎ 
이 민요는 초딩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구욧!!!
이 민요는 주부 가요 열창에서 가르치면 아줌마들 혼이 빠지게 좋아하는 노래예요. ^^

음음... 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시다.
첫사랑 이야기, 이런 거 해달라는 수강생은 블랙리스트에 올릴 거예요. ^^ 

이런 시가 익숙하신가요?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서정윤, 홀로서기> 

이 시는 한창 민주화 투쟁으로 날이 선 청춘을 보냈던 젊은이들에게 이문세의 노래가 위무의 손길이 되어 주었듯,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란 부제로 유명했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불후의 명작으로 오래오래 남는 시가 아닌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소녀 취향의 파스텔톤 습작집에는 어울릴 법한 이 시에 부족한 것, 그것은 바로 인생에 대한 <관조>가 아닐까... 이런 생각. 

말은 멋있는데,
가슴이 아픈데, 고개를 들고 미소를 날리는데,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다림... 나같으면 미소가 아니라 눈물이 날릴 거 같은데요.
센치하다... 이런 말을 쓰지요.
센티멘탈... 우리 말로 감상적 感傷的 이라고 합니다.
아픔을 느끼는... 그런 걸 뜻해요. 시를 감상 鑑賞 하는 게 아니라요.
센치한 시들은 사람의 아픈 마음을 콕, 찌르죠. 멜랑꼴리하다... 좀 우울한 걸 그렇게도 말하구요.
이런 마음들을 <정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인이 표현한 <정서>가 독자에게 찡하는 감동을 주려면,
제대로 형상화가 이루어지거나 관조적 통찰력이 들어가있는 편이 훨씬 오래 남는 느낌을 주는 거 같습니다. 

오늘은 '관조'라는 글쓰기 방식과 '기다림'에 대한 시를 몇 편 만났는데요. 

전에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읽었지요.
오늘은 황동규의 시 연작 세 편을 함께 보겠습니다.
완전 떨이~~~로다가...
제목하여 <조그만 사랑노래>, <더 조그만 사랑노래>, <더욱더 조그만 사랑노래>
이 사람, 사소한 거 좋아하더니, 조그만 거도 좋아하죠. ㅎㅎ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의 눈.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또 사소한 사랑을 이야기하네요. 조그만 사랑...
그대의 배경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사소한 일도 있었듯이,
그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길도 있죠. 맨날 같이 걸었던 그 오솔길... 뭐, 이런 거요.
그런 길이 사라졌어요. 이별,이죠.
그런데 편지를 받아요. 어제를 동여맨 편지.
어제는 과거의 추억이겠죠. 우리의 사랑 이야기들...
그런데, 그 사랑이야기를 꽁꽁 동여맨 편지를 읽으면 이제 헤어진 마당에 눈물이 흐를까요?
아니면 한숨만 폭~ 날까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 뇌어 보고 싶어도...
눈이 날려요.
그 눈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떨면서 떠다니는 불안한 눈이네요. 

이 시에서 화자의 마음, 이별한 화자의 처지를 가장 단적으로 <형상화>해주는 시어가 뭔가요?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화자의 마음게 간 금들이 보이시죠?
이 금을 보여주려고, 자기 마음에 찍~~하고 갈라진, 그 금을 나타내려고 쓴 시가 이 시죠.

아직 멎지 않은
몇 편의 바람
저녁 한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황동규,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이번엔  더 사소한 노래래요. ^^ 귀여운 아저씨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요, 젖은 눈이 내려요. 아세요? 젖은 눈?
날이 아주 춥지는 않은가 봅니다.
눈과 물방울이 섞여 내리는데,
왠지 화자의 눈자위가 붉게 젖어있는 느낌도 드는데요.
물방울을 향해 그대가 손을 펼치기라도 한다면,
바람에서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로 변신하고 싶은 사소한 사랑이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아, 화자의 미련,
아직도 그대를 향한 그 사소한 사랑은
그대에게 젖은 눈,
눈발이든 눈빛이든,
사소한 사랑은 눈이 녹은 물이든, 눈에서 흐른 물이든,
그대 손끝에 스치기라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리석은 사내의 간절한 바람이 눈에 보이시죠?
형상화.
물방울로 다가가고 싶은 아쉬운 마음의 형상화. 

연못 한 모퉁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위에 놓아주는
이 손. <황동규, 더욱더 조그만 사랑 노래> 

더욱더 작은 거 하나요. ^^
꽃잎이 화르르 떨어져요.
그 꽃잎을
아마도 그 꽃잎을 이 남자의 당신이 사랑했던 거겠지요.
어리석게도,
그대는 곁에 없는데, 이 남자는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를
가만가만 집어다 
물 위에 놓아 줍니다.
그리고 제 손을 바라보죠.
이 손. 

아아, 아마도, 이 손에 집혔던 저 작은 꽃잎과 오버랩되는 손은
내 눈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당신의 그 손이 아닐까요?
차마 잊힐 리 없는 그대의 차고 희던 그 손...
이 사내는 물끄러미 제 손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조그만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 손을 보면서 말이지요... 

아, 오늘은 형상화와 '관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깐,
기다림과 사랑에 대한 시들을 읊게 되었네요. 

역시 10대에서 70대까지 공통의 관심사는 오직 <사랑>이란 말은 진리인가 봅니다. ㅎㅎㅎ 
이렇게도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고 많은데도, 아직도 천 하룻밤을 더 사랑노래로 지샐 만큼 특강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 

제 강의를 듣고,
새로운 시를 만나서 좋다고 하셔도 좋고,
어려운 시를 풀이하게 되어서 좋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시를 가까이 하고,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셨다고 하는 게 저는 제일 좋습니다. 

자, 오늘 숙제 하나씩!!!(수강생 떨어지는 소리가 우두두 나는 거 같아요. ㅎㅎㅎ) 

일 년에 댓 권 정도는 시집을 삽시다!
시 쓰는 사람 머리카락 다 빠지는데, 가발은 아니라도 발모제 살 돈은 벌게 해 주자구요! 

혹시 특강을 했으면 하는 좋은 시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 주셔도 좋아요.(레파토리 떨어진 핑계 겸 ㅋㅋ) 

아름다운 밤이에요. ^^
날마다 저는 밤이 아름답습니다.
자는 일도 좋구요.
꿈꾸는 일도 좋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밤은 상상의 나래를 펴도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모두, 굿 나잇. 

노래는 비틀즈의 '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덧붙일게요. 
판타스틱한 꿈 하나 꾸시라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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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앞에 추천이 있었으니 출석을 두번째고, 댓글은 제가 첫번째네요 ㅋㅋ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시종일관 '관조'의 맥을 잊지 않게 해주시니
웃고 나서도 뭔가 분명해지는 느낌이에요.
'천안 삼거리'도 관조가 있고 없고의 차이겠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모양인데 건강 유의하세요^^

글샘 2010-07-29 07:56   좋아요 0 | URL
그쵸. 관조의 눈을 가지고 민요를 바라보면, 건강한 민중의 힘이 느껴지죠. 저걸 초딩 교과서에 실어 놓다니... 에효=3=3 입니다. ㅎㅎㅎ
진짜 즐겁고 유쾌하셨다면, 그 이상의 칭찬이 없겠네요.

아, 오늘 매미 우는 거 보니깐, 장난이 아니네요. ㅎㅎㅎ
무더위에, 후와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gimssim 2010-07-2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의 시도 좋고, 옆에 달린 우체통도 맘에 들고, 비틀즈도 감미롭습니다.
무엇보다 글샘님의 열정도 사랑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니마니(많이많이) 감사^^

글샘 2010-07-29 18:26   좋아요 0 | URL
이거 중년의 여성분들께 소녀시대의 감성을 심어드린 걸까요? ㅎㅎㅎ
시를 읽으면서 소녀시대로 돌아가시는 것도 좋고, 주부가요처럼 웃으셔도 좋습니다.
자주 오세요~~

순오기 2010-07-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천안 삼거리에서 빵 터졌습니다~~~ 구비문학 배울때 교수님이 저런 강의했었거든요.ㅋㅋ
천안 사는 내 친구한테 그 얘기 해줬더니 천안이 자기들 사는 천안인줄 알았다고...^^
글샘님 머리에는 얼마나 많은 시가 들어 있을까 궁금하네요.
저는 시를 쓰거나 리뷰를 잘 쓰지는 않아도 1년에 10권 이상은 삽니다~~~ 잘했죠?ㅋㅋ
우리집 사랑초 화분엔 서로 다가서지 않아도 맞닿을 정도로 촘촘히 피어 있어요~~~~~^^

글샘 2010-07-29 18:27   좋아요 0 | URL
빵, 터지라고 쓴 건데요. 뭐 ㅋㅋ 빵 터지셨다니 고맙군요. ㅎㅎㅎ
정말 천안삼거리에 능수버들은 민요로서 하나도 매력이 없거든요.
시집을 1년에 10권 이상 사신다면, 모범생 대열에 끼워드릴게요. ㅎㅎ
마기님은 시 쓰니깐 수제자고, 순오기님은 시인을 먹여살리시니깐 우등생으로 부르겠습니다. ㅎㅎㅎ

blanca 2010-07-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드 슬로우.. 예인선...꼭 기억하고 싶네요...이런 좋은 글을 읽어 부셔서 제 더위를 식혀 주시네요....감사합니다.

글샘 2010-07-29 18:28   좋아요 0 | URL
아, 글이 썰렁한가요? 더위를 식혀 주었다니까는... -_-;;;b
우리 주변에 좋은 시는 참 얼마나 많은지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고맙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