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님, 생일 미리 축하합니다!!(7월 13일이면 기억 못할 거 같아서요. ^^)   

                          깃 발

                                                       유 치 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시의 주제는 통상적으로 '이상을 향한 갈망과 좌절' 뭐,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네, 깃발이죠.  

 

우선 시를 한 번 읽어 보죠. (꼭 이 대목에서 읽어 보셔야 합니다. 소리 내서...  

이것은(쉬고) 소리없는(쉬고) 아우성(좀더쉬고) 

...아아(좀 슬프니깐 더 쉬고) 누구던가(좀 느리게 읽고)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4마디를 느끼면서)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참 잘 읽었습니다. 짝!짝!짝!  

 

화자는 깃발을 보고있죠. 근데 어떤 마음을 느낀다고 했죠?  

슬프고도 애달프다고 했습니다.  

화자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 슬프고 애달픈 거예요. 

왜? 왜? 깃발을 보면서 슬프고 애달픔을 떠올린 걸까요?  

 

이 두 가지, '깃발'과 '슬프고 애달픈 자신의 처지' 를 딱, 갖다 붙이는 마법이 바로 시에서 쓰는 <비유나 상징>같은 건데요. 

깃발을 보고, 자기 처지와 같다!고 느낀 점이 있었던 거죠.  

유사점 발견하기. 이것이 비유와 상징을 읽는 포인트입니다. 

 

깃발과 자기 처지의 유사점은? 

'소리없는 아우성', '해원을 향하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무언가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이 아우성이구요. 

노스탤지어(도달할 수 없는 향수)의 손수건이지만 저 푸른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흔들고 있지요. 

이 시의 주제가 '이상에 대한 갈망'이라면... 추구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화자는 거기서 좌절한 경험이 있었던 거죠. 

바로 깃발이 깃대에 묶여, 이념의 푯대에 묶여 날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요.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히히 제가 세실님을 정말 간절히 사랑한다면요~) 

그렇지만,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폭주를 시대가 용서하지 않는다면요. (이 시를 쓴 시대는 1930년대, 시인이 20대 때입니다.) 

화자는 얼마나 큰 좌절을 느꼈을지...  

1930년대의 삶을 상상하기도 힘들지요. (1920년대 정지용의 '향수'에서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 보셨죠? 기껏 4연에 가서 한다는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라니요. 헐! 지는 일본에 유학가서 쓴다는 시가...)

 

암튼, 깃발을 보면서, 

에고에고, 내 사랑하는 이에게로 달려갈 수 없이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에 꽁꽁 묶인 내 처지나,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는 제 생각엔 조선조 유교의 정절 개념과 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깃대에 꽁꽁 묶여 지향점도 없이 펄럭거리기만 하는 깃발의 처지를 '같다'고 본 거죠. 

 

요즘 아이들 유행가는 좀 낫죠.(요즘은 아니고, 한 10년 된 노래네요. ^^) 

달려 가겠어 훨훨 날아 가겠어 널 안아 주겠어 내 모든걸 주겠어...  

외로울 땐 나를 불러 뭐가 니 맘에 걸려 네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게... Run to you 

 

나의 사랑은, 정말 깨끗한 은(불륜이 아니란 말이에욧!!!),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날마다 물결따라 바람에 철썩이는데,

그러나 슬프게도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나의 사랑은 슬픔이 애수가 되어 백로의 날갯짓처럼 힘없는 퍼덕임이 되고 마네요.  

 

 이러니 시인은 목놓아 소리칠 밖에요. 

아아 

시에서 이렇게 감정을 아아~ 하고 표출하면, 그건 월드컵에서 골대 앞에서 수비수가 두손으로 골 막는 짓이나 마찬가지거든요. 

퇴장당할 노릇입니다만, 미치겠는데 어쩌겠어요.  

아마 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도...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에 '묶인', 자유인이 아닌 자신은 

소리없는 아우성만 지를 뿐, 그 고리를 끊고 날아가지 못합니다. 좌절하죠. 

그래서 외칩니다. 

 깃대에 깃발을 맨 처음 단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죠. 

도대체, 운명의 장난을 벌이는 자여, 당신은 누구란 말이냐.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화자의 마음을 

저 푯대끝에 매달아 놓고 나를 희롱하는 너는...  

운명의 신, 당신을 저주한다... 

이런 심사가 아니었을까요?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제 이 슬픈 마음을 정리합니다. 좌절한 그는 맥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리질러 저항할 힘도 없죠. 질서에 순응합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죠.

그래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의 힘차던 세 마디(3음보라고도 합니다.)의 자유로운 외침은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 푯대 끝에'에서 잦아 들다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렇게 네 마디(4음보겠죠?)의 정형화된 구절로 마무리합니다.  

소리내어 읽어 보시면, 3음보에 비해서 훨씬 맥빠진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나요? 

 

속담에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시야말로, 이 속담에 꼭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면, 

이 시를 '이에 대한 동경과 좌절'로 읽으면, 글쎄요, 감이 잘 안 오지만, 

같은 시를 '이에 대한 동경과 좌절'로 읽는다면, 저는 심장이 떨리는 울림이 옵니다. 

 

어떤가요? 제 이야기가 억지같다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시는 개인의 자아를 세계에 드러낸 것인데, 그걸 읽는 저의 자아가 그이의 세계를 저렇게 받아들였다는데 뭐 할말 있어요? ^^ 

문제집에 보면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떤 설명이 더 수긍이 가시는지??? ㅎㅎㅎ 

 

이 글 읽으시는 분, 모두 주말 잘 보내세요~~~ 

 --------------

   핵심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관념시, 상징시, 낭만시   
성격: 역동적, 의지적, 상징적, 낭만적
표현법: 남성적인 장중, 강건한 어조, 비애와 환멸의 목소리,  색채에 의한 시각적 심상,  은유, 

           직유, 영탄, 도치법 사용

어조: 인간 존재를 깨닫는 순간의 비애와 환멸의 목소리  

특징: 도달할 길 없는 이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

주제: 영원한 이념을 향한 낭만적 향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그 비애

        인간의 영원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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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가 어딜봐서 남성적인 장중함을 느끼게 한답니까?
ㅋㅋ글샘님 강의 멋져요!!!!

글샘 2010-07-11 02:00   좋아요 0 | URL
좀 말이 되나요? ㅋㅋ
박수를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기님을 위한 특강도 준비해 볼게요.

세실 2010-07-1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는 이영도 였을까요? 청마시인은 많은 여인을 사모했다고 하지요.
이미 결혼한 후에 쓴 시겠죠?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ㅎㅎ
님처럼 한문장 한문장 숨은 뜻을 알려주면 정말 시를 사랑할듯 해요.
'노스탤지어=도달할 수 없는 향수'라니 멋져요.
'그리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참 좋았던 기억이^*^

글샘 2010-07-11 02:01   좋아요 0 | URL
그저 이영도다, 하면 재미없죠. ^^
시인은 한 문장도 깎아서 쓰는데, 저걸 그냥 도매금으로 넘기는 게 아쉬워서 한마디 한 겁니다.

pjy 2010-07-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어떻게 낭독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지는데요^^;
제가 읽어보니 한서린 여인네의 두고보자는 표독함이 시끝에 묻어 나옵니다~ 이런게 자아반영인거죠?? ㅋㅋ

글샘 2010-07-13 09:06   좋아요 0 | URL
음... 이건 좀 새로운 해석이네요. 한 서린 여인네의 표독함... 그런 자아를 갖고 계세요???

pjy 2010-07-13 19:25   좋아요 0 | URL
다들 많이 아시는 그런 시인의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제한 상태에서 읽는 당시의 고때의 제 상태만 고려하면 그렇다는거죠^^;
가끔 착하기도 하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