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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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이다.
전체가 메일로 이루어진 소설.
우연히 잘못 받은 메일이 이루어준 인연.
그리고 급격히 서로에게 가까워졌지만, 이뤄지기엔 조금 먼 인연. 

원제목은 'gut gegen Nordwind'이다. 
북풍에 맞서는 게 좋다... 뭐 이런 썰렁한 제목인데,
독일어판 표지는 우습고, 문학동네 표지도 썰렁하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제목 참 잘 붙였단 생각이 든다. 

새벽 세 시, 이 시각까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외로운 심사를 충분히 헤아릴 듯 하다.
경비를 서는 사람이든, 공부를 하는 사람이든. 사랑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든.
게다가, '바람'이란 단어가 주는 미묘한 뉘앙스란...
저렇게 속옷차림으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턱을 괴고 앉은 그림보다는,
30대 유부녀의 '바람'이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들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온다. 

과연 에미와 레오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일견 뻔하기도 하고,
둘이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둘의 뜨거운 만남과, 블라인드 키스와, 더 깊숙한 만남까지 상상하는 대뇌 피질의 작용에 이끌려 두어 시간만에 마지막 장의 허무까지 접수하고 만다. 

잘 쓴 소설이다.
이십 대의 풋사랑에 비하면, 삼십 대의 간절한 사랑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랑은 첫사랑인 것.
결혼해서 두 아이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에미에게,
레오의 편지들은 N번째 첫사랑을 가져다 줄 정도로 짜릿한 것이었다. 

이 작품이 성공해서 두번째 작품, 일곱번째 파도...도 나왔다고 하던데, 도서관에 오늘 그 책이 들어온 것도 봤지만,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새벽 세 시를 좀더 아련하게 느끼고 싶어서.
새벽 세 시, 그 시각까지 깨어있는 영혼들의 신선함에 애정을 쏟아주고 싶어서...
그 시각에 북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커튼자락 휘날리며 살랑살랑 불어올 북풍에 마음 설렐 젊은 마음, 가끔은 흔들리는 마음들의 자유를 위해서... 

잠이 들기엔 많이 늦은 시각이고,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각.
발을 담그고 보니 빼기엔 적절하지 않은 시각이고, 새로 시작하기엔 뭔가 이물감이 드는 그런 시각.
새벽 세시가 주는 뉘앙스는,
인생에서 30대나 40대의 어정쩡한 시기와 조응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오늘 새벽 세 시에 축구를 한다고 하니,
잠을 자기도 어정쩡하고, 일어나기도 어정쩡한 기분. 이런 것이 새벽 세 시를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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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에 대한 글샘님의 정의와 묘사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네요.
저도 이 책 읽고 <일곱번째 파도>를 바로 빌리려 했는데
누군가 벌써 빌려갔더군요.
좋은 소설에 좋은 리뷰네요^^

글샘 2010-06-22 22:07   좋아요 0 | URL
혹시 독일어 전공하셨나요??? 괜히... 무질...에서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
저는 일곱번째...는 나중에 보려고 남겨 두었습니다.
좀 우울한 날 읽어보려구요. ^^
과도한 칭찬이십니다. ㅎㅎ

비로그인 2010-06-2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후와님의 리뷰보고 바로 구입했던 책인데, 아직 손을 못 대었어요.
음~~새벽 세 시까지 이걸 읽어볼까?

글샘 2010-06-22 22:08   좋아요 0 | URL
음~~ 새벽 세 시에 갑자기 저에게 메일 쓰시기 없기예요. ^^

글샘 2010-06-23 12:37   좋아요 0 | URL
뭐, 메일 보낼 거도 없이 여기 댓글로 다시면 되겠군여. ㅎㅎ

비로그인 2010-06-24 00:17   좋아요 0 | URL
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일곱번째 파도' 주문해 버렸는데....

글샘 2010-06-24 08:06   좋아요 0 | URL
저도 어쩔 수가 없이...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 왔답니다. 뭐, 언제 읽을지는 아직 미정이지만요.

전호인 2010-06-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친구가 상세히 이야기 해줘서 읽지는 않았어도 기억이 새롭네요.
지금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괜히 우울해요.

글샘 2010-06-22 22:31   좋아요 0 | URL
괜히 우울하시면... 포도주라도 한 잔 드시고 푹 주무세요.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까요.

세실 2010-06-2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많이 설레였습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에미에게는 레오가 첫사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동정심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일곱번째 파도...많은 우여곡절 끝에 둘은 만나게 됩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는것 처럼요.
아 오늘은 책의 느낌 다시 떠올리면서 새벽 3시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새벽 3시, 바람이 불겠죠?


글샘 2010-06-23 12:37   좋아요 0 | URL
새벽 세 시, 16강 진출은 했지만, 별로 바람은 없던걸요. ^^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가 됐던 거 같애요. 대학 시절 쯤으로 유치한 마음이었죠. ㅎㅎ
깨고 나니 꿈입디다만...

건조기후 2010-06-2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곱번째 파도를 읽지 않는 데 성공했지요.ㅎㅎ
볼까말까 진짜 무지 갈등에 빠졌었는데ㅋ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아련함은 아련함으로 완성되어야 해요. 아하하.

글샘 2010-06-23 12: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련함의 끝은 아련함이어야 하는 것. 만나고 나면, 꽝! ㅋㅋ

다락방 2010-06-2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번째 파도를 읽으시는건 말씀하신 것 처럼 좀 미뤄두셔도 될 것 같아요. 새벽 세시의 아련함은 새벽 세시의 먹먹함은 그 자체로 완벽하니까요. 이 소설은 저의 패이버릿이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에요. 제 방 책장에도 있고, 사무실 책장에도 한권 더 꽂혀있지요.
:)

글샘 2010-06-23 12:39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좀 미뤄두려구요.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관심'의 의미가 생생하게 형상화되는 걸 느꼈습니다.
어쩜 그렇게 단어 하나하나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