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은이는 경제학자이다. 그렇지만 장하준은 여느 소설가 못지않은 필력을 가지고 있다. 더더군다나 이 책은 영국에서 영어로 발간된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은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잘 사는 나라들은 개발도상국가에게 <자유 무역>을 들이댄다.
그걸 저자는 여섯 살 난 아들 진규에게 공장가서 일하라 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물론 진규가 지금 당장 가서 일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에 비하여 '돈'이 된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아이를 차근차근 공부시켜 일꾼을 만든다면 지금 버는 돈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남의 돈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을 진규처럼 <한창 자라는 청소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개도국들은 이미 다 자란 <난쟁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러기가 더 쉽다.

신자유주의 광풍은 교육 시장에까지 밀어 닥치고, 인수위원장이란 할머니 한마리가 지껄인 '사견'에 이 땅의 '공교육(사실, 별로 공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지만)'에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킨다.
미국도 앞장서지 않는 FTA를 국회에서 빨리 비준해야 한다고 발광들이고, 또 혼란스런 틈을 타서 유럽과의 자유무역을 준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교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는 커녕 이용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로 쓰인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하는 한 남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교도지만 착한 사마리아인도 있다는 것인데, 이 책에선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님을 명백히 하려는 강한 의지로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강조점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렇게 <사다리 올라가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이 이제 개도국에게 <신자유주의>의 자유 무역을 들이대는 일은 정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도국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120)임을 그는 분명히 보여준다.

'평평한 경기장'에서 '자유'로이 경쟁하자는 아름다운 조건에 왜 저자는 반대하는가. 특히 불평등이 심화되는 분야가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지적 소유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무역 관력 지적소유권 협정>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발간되는 저서와 한국에서 발단되는 저서, 아주 작은 못사는 나라에서 발간되는 저서가 가진 '포스'가 같지 않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이수근과 최홍만의 '자유 경쟁'임에랴.

잘사는 나라에서 보자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느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화도 변화한다. 조선의 팔자 걸음이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의 파시즘 아래서 '빨리빨리' 민족으로 그 문화를 바꾼 사례도 있지 않은가. 문화는 그 나라의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경제적 성과가 문화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몇몇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공이나 실패를 문화의 측면에서 설명하지만, 이것은 가능하지도 유용한 일도 아니다.(306)

못사는 나라들은 게을러서 산업이 낙후된 것이 아니다. 잘 사는 나라들이 결코 그들의 산업이 발전되도록 도와주지도 이끌어주지도 않는 것이 그 이유이고, 잘사는 나라들은 사다리를 걷어찬 후에 올라오라고, 그러려면 프리 트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썩은 동앗줄을 드리운다.

강호동의 스타킹을 가끔 보는데, 재미있는 재주꾼들이 나오면 패널들이 한번씩 따라한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심하게 위험한 경우 붉은 경고문이 뜬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이런 것을 장하준은 '집에서 해볼 필요'라고 이야기한다. 사다리를 걷어찬 넘들을 부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집에서 자꾸 해 봐야 스타킹에 나간다는 것.

물론 브라질, 인도, 차이나, 러시아의 브릭스 그룹처럼 맹렬하게 달려오는 국가들이 있지만, 저자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들도 사다리를 걷어채이는 일에 처하게 될 거라고 한다.

개도국에게는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태도를 바꿀까? 저자는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짓는다. 설득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그까지도 케인즈처럼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꾸는> 일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큰 이익을 얻어서가 아니라 가장 쉬운 일이어서 저질렀던 일들은, 균형잡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임을 그는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 민족이니 뭐니 하는 걸 웃기게 생각하려 하다가도, 이런 멋진 사람과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라는데 행복할 때도 있다. 월드컵 축구공 만드는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을 비판하다가도, 축구는 재미있게 보는 것처럼...

장하준,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명쾌하고 쌈박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단단하다. 그가 영어로 글을 쓰는 이유를 알겠다. 고맙습니다.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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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2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비판'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렇다면 글샘님은 그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삼성이 뉴스를 수놓고 있고 금산분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좀 그렇긴 하지만.

글샘 2008-01-30 01:32   좋아요 0 | URL
박통의 경제 개발이 '성공'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죠.
그 부작용으로 재벌이 이만큼이나 횡포를 부리게 된 거구요.
한국의 독특한 경제 양식인 재벌과 사회적으로 대타협을 벌여 나갈 수 있을는지는... 글쎄, 좀 회의적이죠.
재벌이란 문어는 식탐만 있을 뿐, 양식은 없는 넘이고,
정치가란 넘들도 국익이란 이름으로 가진 자의 단기적 이익만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라...
IMF 이후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가 갈수록 무시되고 있는데, 재벌을 사회적으로 제약하거나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일은 멀고도 먼 일로 생각합니다.

혜덕화 2008-01-2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 많구나, 새삼 느끼면서.....

글샘 2008-01-30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경제학 같은 분야는 워낙 밑바닥이라죠. ^^ 공부하는 맘으로 읽는 거죠. 그래도 장하준 선생은 워낙 비유와 사례 제시가 출중하여... 읽는 이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바람돌이 2008-01-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씨 책이 요즘 진짜 많이 나오던데 한번쯤은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글샘 2008-01-30 15:30   좋아요 0 | URL
이책은 부분부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글 참 잘 쓰더군요.

2008-01-30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8-12-2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ㅎㅎ
허접한 이벤트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네요.ㅎㅎ
글샘님께서 추천해 주신 시비돌이님의 리뷰가 2007년 10월 8일 작성된 것으로
애초에 정했던 2008년 1월 1일~12월 30일까지 작성된 리뷰를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다른 리뷰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