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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ㅣ 인터뷰 특강 시리즈 4
진중권.정재승.정태인.하종강.아노아르 후세인.정희진.박노자.고미숙.서해성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21세기' 한겨레 강연 시리즈 네번째 권이다.
해마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책이 되어버렸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이랑 함께...
올해의 강연 주제는 '자존심'이었다.
한국에선 '자존심'이 부정적 의미로 영역이 <축소>되어 쓰이는 듯 하다.
쓸 데없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네... 하는, 개인적인 주장을 조금 세우면 일축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사실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란 뜻의 '자존심'은 결코 부정적으로 쓰일 수 없는 말이다.
개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면 '자존심'만큼 그 사람을 정의하기 적절한 말도 없을 것이다.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이 돌아간다.
결국 모든 생활의 중심은 '자존심'인 것이다.
요즘 학교에 학부모들이 가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교사가 학생을 과도하게 지도(?)하여 뉴스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 핵심엔 모두 자존심 싸움이 있어보이는데, 사실은 지켜줘야 할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오줌을 쌌을 때, 담임으로서 이런저런 행사 준비를 하는데 좀 짜증 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인격을, 그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오줌 싼 아이를 한 시간 세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집단'이 강조되면 '자존심'은 설 자리가 없다.
집단의 '자존심'만 강조되면 그건 쇼비니즘이 되고, 내셔널리즘이 된다.
나치즘이 그거고, 전체주의가 그거고, 군국주의가 그거고,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대한 민국'이라고 '집단의 자의식'을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 조국이라고 '애국심이 곧 자존심'이던 가난한 시대도 있었다.
좋아졌네 좋아졌어...로 스스로를 위안하던 새마을 운동 일념 자존심도 있었고,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가던 시대의 자존심도 있었다.
월드컵때 상대 선수들을 퇴장도 시키고, 페널킥도 얻고 해서 어쨌든 4강까지 올라간 붉은 자존심도 있었다. 모두 집단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이 집단 자존심은 한 순간에 썩소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외환 위기가 닥치자, 모두 '네 잘못'이라며 국민의 자존심을 깎아 내렸다.
민주화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전에, 놈현스러운 국가로 부자 노동자들이 데모해서 기업 못 해먹겠는 나라로... 전락시킨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세력은 '진보 세력'이고 '못 가진 세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이야기는 정희진의 여성이야기였다.
정재승의 과학 이야기도 맘에 들었다.
정태인의 FTA 이야기는 정말 공부해야하게 만든다.
진중권이 차지한 자리야말로 '자존심'의 자리다. 무식하고 말 못하고 권력욕 가득한 '넥타이 맨' 지식인 세계에서 '라운드 티'를 입고 나와서 전사 소리를 듣는 진중권은 지식인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영구'는 '없다'고 말하거나, '황우석의 말'은 '황'임을 밝히는 일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임을 밝히는 일이나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로보는 일이다.
하종강과 후세인의 이야기에서 이주 노동자와 이주 결혼이 얼마나 인격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마음 아프게 읽었다.
자존심을 살리며 사는 일.
직업적으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생각하며 가르치는 일.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당당히 하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단호하게 하지 않는 일.
이런 것이 자존심과 연관된 일인데,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아주 큰 부분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 분위기는 '못배우고 못가진' 사람들더러 '빨갱이나 전라도'소리 듣지 않으려면 찍소리말고 있으라는... 너희가 무슨 자존심이 있기에 인격과 인권을 운운하느냐... 하고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
공자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어른을 죽여야 산다는 말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란 말이다.
오늘, '자존심'을 만난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자존심'에 눈 떠야 할 일이다.
결코 '자존심'은 죽여서 될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그리고 소수자에게...
엊그제 수능을 마친 성인 준비생이나, 대학생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은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