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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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삼십 사년간을 학교를 다니고 있다. 중간에 군대에 일년 반을 머물렀던 기간을 제외하면...

내가 사는 학교는 그래도 비교적 많이 민주화된 편이다. 교사들의 성별이 절반이상 여성으로 바뀌면서 윽박지르고 야단치기 보다는 꾸짖고 상담하는 쪽으로 변화된 면이 많다. 아이들의 용의 복장 등에 대한 규제도 많이 완화된 느낌이다. 그렇지만 학교 내에서 '인권'이 설 땅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고, 미래가 싹트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꼬마들은 오후가 되면 봉고차를 타고 특기적성을 기르러 부리나케 달린다. 자칫 놀다가는 제 밥벌이도 못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은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기를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0교시든 야간 보충이든 스스럼없이 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아이들의 생명력을 짓누른다. 각국의 입시 제도는 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침몰하고 융화되어 새로운 억압의 기제로 태어나게 된다.

학교에서 짓눌린 탓일까...
아직도 못사는 나라인 탓일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이 사회에는 너무도 소외받는 이들이 많다.
인권의 사각지대...

이 책에선 외국인 이주 노동자, 어린 비혼모들, 코시안(아시아계 코리안)들의 삶, 도시의 노인들, 광부, 국보법에 물린 사람들, 무슬림들, 어부들, 농촌 청소년들, 한센인들, 일본인처와 동대문 미싱 노동자들을 발로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인권은 다만 머리카락을 잘리기 싫어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인권은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임을 알고, 공유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현상>이 있어야 인간의 기본권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코시안 이야기를 읽다가, <쌀 씻는 그릇이 쌀을 씻지 않는다. 쌀과 쌀이 서로 부딪히면서 씻긴다.>는 말을 만났다.

아, 쌀은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씻는 것이었구나.
쌀씻는 손이나 쌀담긴 그릇은 보조 역할에 불과하구나...

인권이 자리잡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구나...
그렇지만, 쌀끼리 가만히 두어서는 씻어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쌀끼리의 부딪힘이지만, 살살 흔들어 주기라도 해야 부딪히고 정화될 일이다.

이주 노동자, 이주 신부들에 대한 신기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 졌건만, 아직도 여수 출입국 관리소의 화재 현장의 불은 꺼질 생각도 않고 외국인 신분의 노동자들을, 우리 경제의 큰 받침돌인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

십시일반... 이후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멋진 책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고충스런 활동들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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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5-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기관중에서 요즘 맘에 드는데 여기 한군데예요. 십시일반도 그렇고 이책 그리고 영화 여섯가지 시선도 그렇고....

향기로운 2007-05-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두었던 책인데 먼지털어줄 시기가 온 것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07-05-1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과 쌀이 서로 부딪히며 쌀이 씻긴다는 말, 담아갑니다...

몽당연필 2007-05-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도 서로 부딪히며 씻겨진다면 좋을텐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는 건 굼뱅인데 눈은 자꾸 높아가고....큰일입니다. ㅠㅠ

글샘 2007-05-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맞아요. 국가란 것이 해야할 일이 뭔지를 생각해보는 이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아직 힘이나 파급력은 모자라지만, 이런 공적 기관이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애요. 오늘 뉴스에 보니깐, 교육부는 5.18을 폭도들의 저지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구요, 한심한 것들.
향기로운 님... 뽐뿌질을 했군요. ㅋㅋ';'
배혜경님, 책 안에 있던 말인데 참 인상적이어서 베껴 두었습니다. 제 리뷰의 목적은 주로 이런 거죠. ^^ 메모장 같은...
몽당연필님... 굼벵이도 눈 낮으란 법이야 있나요. 사람도 부딪다 보면 씻기기도 하고 닳기도 하고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