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이 배우자를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와이프'란 용어가 난 싫다. 그 대신 아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손윗사람이나 글에서 쓸 때는 '처'라는 말도 쓰곤 한다. '마누라'나 '집사람'이란 표현은 절대 안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우리 아내가, 내 아내가' 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고마워'라고 말하기 쑥쓰러울 때 '땡큐'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편한 것처럼 아내를 지칭할  때 '와이프'라고 하는 것이 덜 쑥스럽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와이프란 용어로 내 아내를 표현하긴 싫다.

사무실 여직원들이 자신의 남편을 말할 때 '신랑'이라는 말을 쓰면 참 느낌이 좋다. 남편이란 말은 왠지 어감이 좋지 않다. '니 남편 간수나 잘 해~' '남편이 웬수지' 란 말이 막 떠올라서 그런가? 그렇지만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우리 신부가'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옆지기란 말은 글쓸 때는 정감있지만, 일상적 대화를 할 때, 특히 이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쓰기엔 적당치 않아 보인다.

 

내 아내는 얼마 전부터 긴치마를 입기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 두꺼운 것이 컴플렉스가 되어 여지껏 치마란 것을 잘 입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치마를 안입어도 되는 외고에 지원했을까? 대학생 때 사진을 봐도 치마 입고 찍은 것이 없다. 사회생활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청치마를 사더니 몇 번 입고 다니긴 했다. 그러나 짧은 치마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갑자기 긴 치마가 좋아졌나보다.

지난 2년이 넘는 동안 한 사람의 여성이기보다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임신 20개월 기간이 여성으로서 가장 축복받는 시기이긴 하지만, 자신을 꾸미기엔 힘이 드는 시기이고, 출산 후엔 달라진 자기 몸을 돌보기는 커녕 아이에게 온 정을 주느라 바쁠 수 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느라, 그리고 바쁜 일을 맡아서 하느라 만신창이가 된 몸. 섬섬옥수같은 손은 습진이 걸려 갈라지고, 팔이 아파 아기를 드는 것도 힘이 든다는 아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 꾸준히 발라'라는 말과 그저 몇번 팔과 다리 주물러주는 것뿐.

이제는 자기를 챙기고 싶다는 아내. 빠듯한 살림이지만 아내가 옷을 사고 싶다고 할 때 거절할 명분은 전혀 없다. 그저 내 마음에 드는 이쁜 옷을 사기만을 바랄 뿐. 얼마 전에는 퇴근하는 나를  지하 상가 이쁜 옷집으로 이끈다. 자기 맘에 드는 치마가 있다며 나한테 허락을 받고 싶다는 거다. (어차피 자기 돈으로 사니 허락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산 치마가 사진 속의 저 치마. 넉넉한 품의 치마가 요즘 좋단다. 사실 아내의 패션감각에 자주 좌절했던 나였는데, 그러고 보면 너무나 전형적인 여성 스타일의 옷을 입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내와 내가 맘속으로 그리고 있는 여성의 참된 스타일이란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그래도 잔소리꾼이란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옷입는 것까지 참견하곤 했으니..



오늘도 거리거리엔 휘황찬란, 형형색색의 패션들이 돌아다닌다. 비싼 옷이 때깔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리고 섹시한 차림에 눈이 돌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나와 우리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이쁜 아내의 옷차림, 특히 아이 둘을 감싸안을만큼 넉넉한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내 눈엔 가장 멋있어 보인다. 수많은 인파의 인사동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고 하면 너무 편향적인가?

패션 리더는 아니지만,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나에게 코디를 조언할 만큼 색채감이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엄마인 아내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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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8-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상도 사람들은 "으"발음이 잘 안 되서 <와이퍼>에 가깝게 발음해 저는 늘 킥킥거리며 웃어요^^;
첨엔 울 남편이 쓴 글인가 싶어 깜짝 놀랐잖아요. 어쩌면 우리집 이야기 같은지...
앞으로도 늘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부인께선 무척 여성스럽고 아리따우시네요! 추천은 부인께 드립니다)

물만두 2005-08-2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하시군요^^

깍두기 2005-08-2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예쁜 남편이시군요. 부인은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인사동에서 가장 눈에 띄셨겠는데요뭘)

모과양 2005-08-2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좋고, 너무 고와요~ 두 분다.

날개 2005-08-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옆지기가 서림님 반만 닮았으면......ㅎㅎ

마늘빵 2005-08-2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살고 싶다.

클리오 2005-08-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사모님이 소녀같으세요... ^^

파란여우 2005-08-20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서림님은 미녀군단의 섹쉬모드 사진을 보고(흑백 티뷔님 뉴스레터에서)
즐찾을 늘리겠다는 다짐을 하신 분입니다. 참고 하시라고 알려 드렸어요 헤헹^^

인터라겐 2005-08-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와이프니 그런 소리 싫더라구요.. 저희 남편도 어디가면 아내라고 표현해줘서 좋아요.. 전 신랑이란 표현을 잘 썼는데 사람들이 뭐라 해서

남편으로 바꾸어 쓰고 있답니다...흐흐 오늘 부터 다시 신랑이라고 할까봐요..^^

두아이의 엄마라고 믿기지 않을정도로 팔뚝이 가느십니다요;....아웅 부러워요...^^

울보 2005-08-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뻐요,,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제가 입으면 ㅎㅎ 상상하면 두리뭉실인데,,어찌 저리 잘어울리시나,,

바람돌이 2005-08-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둘다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잘 씁니다. 별 뜻은 없구요. 그냥 집에가면 만나는 사람이란 뜻이죠. 근데 우리집 서방이 쓰는 집사람은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는데 제가 쓰는 집사람은 사람들이 다 웃더라구요...^^그래서 요즘은 그냥 우리집 서방으로.... ^^
근데 부인이 정말 소녀같은 분위기네요. 예뻐요. ^^

2005-08-21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5-08-2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회사에서도 옆사람 내지 옆지기라고 합니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요새는 자기들도 따라쓰더라구요.

엔리꼬 2005-08-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오우 옆지기라고 부르시는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어색해서 힘들 것 같아요...
속삭이신 님...별 이야기도 아닌데, 속삭이실 필요가... 그냥 혼자 쓰는 글이고 아내가 모르니깐 멋진 것 처럼 이야기하는거죠.. 이 글 봤다면 '놀고 있네'라고 했을지도... 쿨럭
바람돌이님... 우리집 서방도 괜찮은 표현이지만, 남편들은 아내를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소녀긴 한데, 30대 중반의 소녀죠
울보님.. 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사진 올렸겠죠? 저도 이런 느낌 오래간만이예요..
인터라겐님.. 팔뚝이 가늘다뇨.. 제가 맨날 놀리는건데.. 애들 돌사진 찍을 때도 특별히 뽀샵을 부탁한 팔뚝인데요... 사진이 가끔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파란여우님.. 누구나 이중성이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남자는 늑대라고요.. 흐흐흐
클리오님... 소녀같은 옷을 입어서 그렇지.. 별로 소녀같지는 않습니다.. 쿨럭
아프락사스님... 할 말 없습니다... 빨리 연애하시고 결혼 하세요....
날개님... 이거 사실 쌩쑈입니다... 마누라가 이걸 보면 '웃기고 있네'라고 콧방귀낄 지도 몰라요.. 제가 원래 제 이미지작업을 잘 하거든요.. 쿠쿠
모과양님... 님의 미모에 어디 명함이나 내밀겠습니까?
깍두기님... 저는 이상하게 글 쓸때는 아내한테 참 잘해주는 것 같은 남편으로 써요... 아내 검열이 없어서 이렇게 쓰는 것이지.. 아내의 검열에 걸릴 문장이 한두개가 아닌데요...
물만두님..
우아 : 아름다운 품위와 아취(雅趣)가 있다. 부드럽고 곱다.
아취 : 아담한 정취, 또는 고상하고 운치 있는 취미
감사합니다.
진주님.. 제가 경상도 남자라서 대충 압니다, 그 발음에 대해선. 어떤 면에서 진주님 집과 닮았는지 참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05-08-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전 여태까지 서림님이 여자분이신 줄 알았어요. 이를어째...ㅜ.ㅜ
글 너무 좋은데요? 저도 '와이프'란 단어 늘상 쓰는 용어이긴 하지만 좋아하진 않아요.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하게되면 제 남편에게 못 쓰게 할겁니다. '아내' '처'란 단어 얼마나 친근감있고 좋은 말입니까? 쓰신 말씀중에,
'특히 아이 둘을 감싸안을만큼 넉넉한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내 눈엔 가장 멋있어 보인다.'말 좋은데요. 이 멋을 아시는 서림님은 또 얼마나 멋진 분이실까요? 추천하고 갑니다.^^

엔리꼬 2005-08-2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저도 님이 결혼하신 줄 알았으니 쌤쌤이네요... ㅎㅎ
실제로 아이가 저 치마를 가지고 장난을 치더군요.. 치마에 푹 싸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아직 아이스케키를 모르니 다행이더군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추천받기 위한 페이퍼일 뿐입니다.. 멋지다는 환상은 깨버리시길...

마냐 2005-08-2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호. 파란여우님의 충고를 감안하겠지만.....그래도, 넘 좋은걸요? 울 옆지기도 좀 닮아야할텐데. 맨날 마눌 패션감각 후지다구 구박이나 하구..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