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andcat >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죽음은 삶이 아닌 것, 곧 삶의 부재 상태이며 미래완료형으로 인간이 일용할 필수 관용구이다. 삶의 의지로 가장 충만할 때 종종 죽음의 수사가 동원되는데 가령 ‘죽고 못 살고’, ‘죽기보다 싫거나 죽자 사자’ 하고, ‘죽기 살기로 기를 쓰는’ 식이다. 먹을거리들의 죽음은 날마다 사람의 삶을 살찌운다. 소의 죽음, 배추의 죽음으로 인간은 먹고살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날마다 죽어나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날아다니는 새가 하늘을 사유하지 않듯, 자신의 죽음은 사유하지 않는 게 사람이지만, 죽음이 과연 삶과 따로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이겠는가.

죽음은 영원한 익명의 상태이며 죽음의 형식은 권총자살한 소설가 로맹가리의 유언처럼 “나를 마침내 완전히 표현”하는 방식이다. 죽음에도 생명이 있어 시대에 따라 대접이 달랐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의 자세는 대부분 비슷하다. 바로 죽음을 맞는 자세는 감연하기 짝이 없고, 나의 죽음, 내 가족, 지인의 죽음만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며 무덤처럼 고요하기를.(달리 ‘젖무덤’이란 말이 생겼겠는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죽음
일본 만화 『시마 상무』(히로카네 겐시, 2006)를 보면 노인복지로봇이 나온다. 최첨단 기기가 장착된 옷을 노인이 입으면 책 한 권 드는 힘으로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복지와 의료, 기계의 힘으로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겠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학과 의료기술 등 물리적인 부분이 덜 발달한 탓도 있었지만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긍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죽어갔다. 오늘날은 되려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이며 한편으로는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든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수명이 정해져 있듯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임계치라는 것이 있고, 그 인구가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노인복지로봇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장시키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안락사 문제에서 짐작되듯 그것의 한계와 기준, 가치가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이렇듯 한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시사하며 그것은 또한 한 사회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죽음은 과거에 없었던 각종 질병과 복잡한 사회구조로 인해 흡사 백수광부처럼 달려드는 경우가 많다. 때로 테러나 건물 붕괴로 어이없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교통사고 사망률과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죽음은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삶과 멀어진 느낌이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건물을 지어대고, 지구의 평균온도를 올리고 있는 삶의 양태 때문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죽은 자임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만큼 철학이 부재한 시대가 요즘이 아닌가 싶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경건한 죽음
죽음에 관한 방대한 저서 『죽음 앞의 인간』(필립 아리에스, 2004)을 보면 19세기 초에는 임종환자의 최후 성찬식 때 가족은 물론 안면이 없는 사람들도 집안이나 환자의 침실을 방문하여 만인이 참석한 가운데 죽어갔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죽음이 오히려 아름다운 유혹이었고, 바다나 광야처럼 방대한 자연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죽음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광적인 탐구의 시대였던 르네상스와 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찼던 중세의 시공을 지나 19세기 말 도래한 산업혁명은 죽음에 대한 인식 또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의 죽음은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회피하거나 배척하며 외양을 왜곡하고 조작할 정도로 두려운 것으로 바뀌었다. 과거 죽음의 현장은 차가운 의료기기와 수술등, 심폐소생술이 주는 공포감 가득한 병상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속한 혈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죽어가는 침상 주위로 결집했고, 죽음이 공동체를 통과함으로써 빚어진 불안감을 다 함께 애도하면서 표출했다. 죽음으로 인해 허약해진 공동체가 감지된 위험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의식이자 마지막 절차가 바로 장례였고, 그것의 형태는 축제였다.

근사체험을 통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연구하고, 지난해에 〈한국죽음학회〉를 창립하여 국내에 ‘죽음학’의 존재를 알린 최준식 교수는 “지금 한국사회를 휩쓰는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며 “주위 사람들과 품위 있게 이별하고, 자신의 생을 차분히 돌아보는 ‘죽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 교수는 또한 영면실에 비해 중요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영안실에 대한 엄청난 관심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영안실은 갈수록 화려하고 고급화되고 정말 필요한 영면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는 단적인 사례들이라며 죽음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은 엄청난 의료비와 장례비로 귀결되고, 그 부담은 살아남은 자들이 떠안는 부조리함에 대해 꼬집는다. 오랜 역사 동안 ‘영적(spiritual) 문화’를 간직해온 한국이 산업화란 암초를 만나 물질문명에 더욱 매달리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현세만이 가치 있다는 편향된 생각을 갖고 세속적 가치에 천착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놀랍게도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지닌 문제점과 상통한다. 마치 나(우리 세대) 이후에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살리는 대안을 외면하는 삶의 태도 말이다.

최첨단 시대에 미개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의 책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2006)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살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조금 과장해서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의 부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둘로 분열되어 있는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고유하다는 것을 앎으로써 장엄성을 간직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썩어 문드러져서 땅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원적인 딜레마를 숙지하는 게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전쟁도 결국은 죽음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동물 가운데 인간은 유독 남을 엄청난 규모로 처참하게 살육하는데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영생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오토 랑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경감된다. 즉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자신은 죽음이라는 벌, 혹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벌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전쟁도 자신의 불멸을 확인하기 위해 일으키는 것이며 전장에서 적을 죽이면서 너는 죽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니 나는 ‘불멸의 존재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을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은 영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부활절 때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다(부활하셨다)!”고 외치는 것이고, 그런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꾀하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생명들에 대한 무차별 살육과 불로장생을 향한 현대인의 욕망, 종교의 부흥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로 설명될 수 있을까?

죽음과의 화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1년에 한 번,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친인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오는 날이다. 그 날이 되면 설탕으로 해골을 만들고(설탕처럼 달콤한 죽음?), 나무나 종이로 만든 해골 가면을 쓴 후 죽은 이의 사진이나 갖가지 꽃과 음식으로 재단을 만들고 밤이 새도록 먹고 마신다. 시인인 옥타비오 파스는 “멕시코는 죽음과 친하고, 죽음을 농담 삼고, 죽음을 애무하고, 죽음과 함께 자고, 죽음을 축하한다.”고 했다. 우리는 주변인,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죽음을 환기하곤 실존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본질적인 허무와 직면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죽음을 둘러싼 창백한 아우라와 허무를 외면함과 동시에 조금 덜 허무하기 위해 무덤 같은 일상에 기꺼이 묻히고 만다.

존중되지 못하는 오늘날의 야만적 죽음 또한 개인에게 주어진 수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나무와 같다. 처연하게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욕망에 끄달리지 않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연히-또는 필연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었듯이, 죽음은 어느날 잘못 배달된 소포처럼 무람없는 얼굴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저 오늘의 죽음을 충실히 살자.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에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의 경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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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관찰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 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 양귀자의《모순》중에서 -


* 자신도 잘 살펴야 보입니다.
너무 메말라 마음밭이 갈라져 있지는 않은지,
돛은 제대로 달려 있으며 가는 방향과 목표는 과연 맞는지...
늘 탐구하고 살피면서 인생의 노를 젓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착점이 사뭇 다릅니다
                                                                                                - 11월 둘째 날 아침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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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11-0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고 있어요 모순.
모순을 쓰시고 힘이 너무 빠지셨나요? 작가 양귀자 소설은 더이상 나오지 않네요.
옳지 않아.. 라고 말했던 주리를 미워하는 시간이 지나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면
제가 더 커질수 있을거 같아요.
낙엽이 자꾸 떨어져요.. 낙엽이......

프레이야 2006-11-0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역시 아이가 저보다 마음이 넓네요. 착한 마음 잃지 않으면 좋겠어요. 힘 주는 말 감사드려요.^^

춤추는인생님, 낙엽이 자꾸 떨어져서 마음이 안타까운가요? 손을 가볍게 흔들며 살랑거리는 몸짓으로 떠나요. 새로 태어날 것을 기약하며 그렇게 허울 좋았던 옷을 벗고 깨끗해지려고 잠시 떠나요..
 

기도의 힘


기도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도는 우주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행복은 이미 궁극의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기도는 궁극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우주안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길 바란다.


- 틱낫한의《기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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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0-3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예쁜 **님, 바로 날려보낼게요. 기다리세용^^

비자림 2006-10-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귀네요^^

마노아 2006-10-3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금술사가 생각나요. ^^
 
 전출처 : 짱꿀라 > 우정에 관한 명언들

 

 

 

 

    우정에 관한 명언들을 소개합니다.

   ■ 우정에 관한 명언

▒ 벗을 사귐에는 과하여 넘치지 말지니 넘치면 아첨하는 자가 생기리라. - 채근담 -

▒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면 그의 친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라. - 터키 속담 -

▒ 벗이 애꾸눈이라면 나는 벗을 옆얼굴로 바라본다. - 슈베르트 -

▒ 우정을 위한 최대의 노력은 벗에게 그의 결점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이다.

- 라 로쉐호크 "잠언집" -

▒ 설사 친구가 꿀처럼 달더라도 그것을 전부 빨아 먹지 말라. - 탈무드 -

▒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 - 명심보감 -

▒ 열매 맺지 않는 과일 나무는 심을 필요가 없고, 의리 없는 벗은 사귈 필요가 없다.

- 명심보감 -

▒ 이로운 친구는 직언을 꺼리지 않고 언행에 거짓이 없으며, 지식을 앞세우지 않는 벗이니라. 해로운 친구는 허식이 많고 속이 비었으며 외모치레만 하고 마음이 컴컴하며, 말이 많은 자이니라. - 공자 -

▒ 친구는 제2의 재산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 형제는 하늘이 내려주신 벗이다. - 속담 -

▒ 학문을 좋아하는 자와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무식한 자와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지만 그 냄새가 맡아진다. -공자가어(孔子家語)-

▒ 만약 한쪽의 말만 듣는다면, 친한 사이가 갑자기 떨어짐을 볼 것이다. -명심보감-

▒ 많은 벗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을 가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 맹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악한 벗을 두려워하라. 맹수는 다만 몸을 상하게 하지만, 악한 벗은 마음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아함경-

▒ 선물이 늘어나면 친구는 줄어든다. -칼릴 지브란-

▒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만이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라시안-

▒ 속으로는 생각해도 입밖에 내지 말며, 서로 사귐에는 친해도 분수를 넘지 말라. 그러나 일단 마음에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라. -셰익스피어-

▒ 술이 빚은 우정은 술처럼 하룻밤밖에 가지 못한다. -F.V. 로가우-

▒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든 이 세상에서 네 명 이상의 친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파스칼-

▒ 모험을 하지 않으면, 누구하고도 친구를 만들 수 없다. -데이빗 토머스-

▒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사는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사귀는 벗이 없다. -맹자-

▒ 남녀간의 사랑은 아침 그림자와 같이 점점 작아지지만 우정은 저녁 나절의 그림자와 같이 인생의 태양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된다. -베벨-

▒ 한 번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 백 번 거절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낫다. -중국속담-

▒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에머슨 -

▒ 친구를 칭찬할 때는 널리 알도록 하고 친구를 책망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한다. -독일속담-

▒ 번영은 벗을 만들고, 역경은 벗을 시험한다. -페블릴리우스 시루스-

▒ 벗과 교제하는 데에도 약자를 돕고 강자를 누르는 남아의 의기가 필요하다. 이로운 점이 있기 때문에 교제를 한다든가, 또는 교제를 하면 손해를 볼 것이므로 절교하는 등, 이해를 생각하는 교제는 건실한 교제라 결코 할 수 없다. -채근담-

▒ 벗을 믿지 않음은 벗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다. 벗은 제2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라로슈푸코-

▒ 벗을 사귐에는 과하여 넘치지 말지니, 넘치면 아첨하는 자가 생기리라. -채근담-

▒ 나의 친구는 세 종류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나에게 자립심을 가르쳐 준다. -J.E. 딩거-

▒ 너를 칭찬하고 따르는 친구도 있을 것이며, 너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너를 비난하는 친구와 가까이 지내도록 하고 너를 칭찬하는 친구와 멀리하라. -탈무드-

▒ 자기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좋지 않다. -앙등레 모로아-

▒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사람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 적을 한 사람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친구도 만들 수 없다. -앨프리드 테니슨-

▒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을 때 행복하다. -러셀-

▒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있어서 벌꿀처럼 달더라도 전부 핥아먹어서는 안 된다. -탈무드-

▒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반대로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 쉽다. -쇼펜하우어-

▒ 만약 친구가 야채를 갖고 있으면 고기를 주어라. -탈무드-

▒ 현명한 친구는 보물처럼 다루어라.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의보다 한 사람의 친구로 부터 받는 이해심이 더욱 유익하다. -그라시안-

▒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 -인디언 속담-

▒ 명성은 화려한 금관을 쓰고 있지만 향기 없는 해바라기이다. 그러나 우정은 꽃잎 하나하나 마다 향기를 풍기는 장미꽃이다. -올리버 웬들 홈스-

▒ 가장 귀중한 재산은 사려가 깊고 헌신적인 친구이다. -다리우스-

▒ 가치있는 적이 될 수 있는 자는 화해하면, 더 가치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펠담-

▒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에, 비로소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 -이태백-

▒ 그 사람을 모르거든 그 벗을 보라. -메난드로스-

▒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착하기를 지켜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 -법구경-

▒ 나와 벗 사이는 내가 책을 대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언제까지나 떼어놓 지는 않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에머슨-

▒ 비교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필레몬-

▒ 벗을 사귐에는 모름지기 세 푼(三分)의 협기(俠氣)를 띠어야 하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점의 본마음을 지녀야 하느니라. -채근담-

▒ 벗의 곤경을 동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벗의 성공을 찬양하려면 남다른 성품이 필요하다. -오스카 핑걸 오플레어티 윌스 와일드-

▒ 벗이 화내고 있을 때에는 달래려고 하지 말라. 그가 슬퍼하고 있을 때에도 위로하지 말라. -탈무드-

▒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이다. -T. 풀러-

▒ 불길처럼 불타오른 우정은 쉽게 꺼져 버리는 법이다. -토마스 풀러-

▒ 진정한 동지라면 오랫동안 불화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본래부터 짝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일치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언젠가는 헤어진다. -괴테-

▒ 진정한 우정은 앞과 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동일한 것. 앞에서 보면 장미, 뒤에서 보면 가시일 수는 없다. -리케르트-

▒ 큰 도움을 주고, 즐거울 때에나 괴로울 때에나 변하지 않으며, 좋은 말을 해 주고 동정심이 많은 친구가 되라. -육방예경-

▒ 지혜로운 친구를 가까이하면 몸과 마음을 함께 깨끗이 간직할 수 있다. -대승장엄론-

▒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조지 워싱턴-


- 우정의 관한 명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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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0-3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전출처 : 동그라미 > 불혹의 구두/ 하재청

不惑의 구두

하재청

예고도 없이 불어닥친 바람
이미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낙엽은 더 이상 밟히는 존재가 아니다
동강동강 인화된 가을이
구두코에 부딪치며 몰려오던 날
그다지 바쁠 것 없는 귀가는
신발장에 버려진 낡은 구두처럼 고요하다
발뒤꿈치를 타고 가슴에 차 올라오는
먼 귀가길 모퉁이에 매달린 소용돌이
때론 먼지처럼 뚝뚝 피어나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관문을 열다 뒤돌아보곤 한다
내가 걸어온 이정표가
골목골목 훤하게 적시는 순간
예정된 귀가는 늘 서툴고 불편하다
신발장 구석 낡은 구두가
허리 아픈 아내보다 먼저 인사를 한다
구두 속 갇혔던 하루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맞는다
그렇구나, 나를 맞는 하루의 시작이 지금부터구나
不惑을 넘긴 사람은 안다
저물녘이 고요에 젖어 흔들린다는 것을,
한 쪽으로 삐딱하게 닳은 구두 뒷굽이 나를 향해 휘청거린다
구두를 벗어 곧 살아 퍼덕일 내 하루를 신발장에 진열한다
낙엽에 할퀸 구두 뒤축
피 흘린 가을 몇 점.

-<시선> 2005 여름호


경남 창녕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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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10-3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춘천에 다녀왔어요.
마라톤하는 남편을 응원하러요.
서울과는 달리 단풍이 어찌나 곱게 들었던지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고 왔답니다.

프레이야 2006-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마라톤 하는 옆지기님 응원하시며 단풍구경도 덤으로 하셨군요. 너무나 빛나는 시간이었겠어요. 가을 냄새도 물씬 나는 것 같아요. 전 어제 친구랑 '가을로' 봤는데 가을풍경이 아름다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