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기억하고 있지
칼날이 내는 길 따라
찍히고,
파이고,
움푹 들어가다
문득, 멈춘 거기
오래된 거울 속 애인 같은
낯익은 얼굴
한 쪽 귀가
찌긋 눌린 곳이 있어
날 선 칼날이
몸을 사려 멈칫거리기도,
싱크대 구석진 곳
조곤조곤 씹혀져 나간 시간들을 주우며
아무도 몰래 써 내려가는 나날
수많은 칼금 속에
지우면서 새기는 길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칼을 이겨낸 나무의 생이 있다니!
- 이은숙 님 처녀시집 <북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