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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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말년에 그는 해질 녘이면 단골 술집에 들러 혼자서 막걸리 한두 잔 걸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단골 술집의 주모는 할머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천 시인은 단골 술집을 바꿨다.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뻔히 들여다보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 주인은 젊은 여인인가 보죠?”

 

시인은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가 늘 아내에게 했듯이 “문디 가시나…”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새로 가는 술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작고한 시인의 부인이 언젠가 사석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남몰래 술잔 크기를 재 보면서 속으로 득의양양했을 시인의 천진무구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술 욕심은 무욕(無慾)에 가깝다.

 

그런데 천상병이 단골 술집을 바꾼 사연은 한 시인의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천상병의 술잔은 문학의 존재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천상병은 홀로 마시는 술잔의 크기에서 자족(自足)의 환희에 도달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원했던 문장을 쓰게 된 작가의 희열뿐만 아니라, 홀로 조용히 문학 작품에 감동한 독자의 눈물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예술이 밀실의 산물이지만, 미술은 전람회장에서, 공연 예술은 무대에서, 영화는 영화관이란 공동 체험을 거쳐 수용된다. 하지만 문학은 낭독회를 제외하고는 원천적으로 독자가 나 홀로 감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상병의 독작(獨酌)은 문학의 생태 원리를 반영한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사랑의 야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중국과 그리스 화가를 한 명씩 불렀다. 왕은 집무실의 서로 마주보는 양쪽 벽에 각각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한 뒤 둘 사이에 긴 장막을 쳤다. 약속한 기일이 되자 왕은 신하들을 이끌고 두 화가를 찾았다. 중국인 화가가 그린 벽화는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환상의 세계를 눈앞에 갖다 놓은 듯한 벽화 앞에서 왕과 신하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왕이 반대편 벽을 맡은 그리스인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장막을 걷으라고 명했다. 왕과 신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인 화가는 거대한 거울을 벽에 붙여 놓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으로 중국인 화가의 벽화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벽화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왕과 신하들은 그리스인 화가가 더 뛰어나다고 손을 들어 주었다. 그들이 더 좋아한 것은 거울 속에 투영된 벽화의 무릉도원 속에서 자신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투르니에가 이슬람권에 전해오는 우화를 각색해서 만든 이 이야기는 복제예술인 영화가 판치고, 인터넷 동영상이 성행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페르시아의 왕과 신하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초상에 환호작약한 것이나, 오늘날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미지 짜깁기의 유희에 열광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인터넷은 혼자 놀지만, 동시에 타인과 함께 노는 가상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덧 혼자 있는 것에 서투르다.

 

"소설 읽기가 영화 보기보다 힘든 것은 자아 성찰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문학 평론가 김치수는 이미 말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관객 동원에 열성이고, 인터넷에 누구나 볼거리가 넘치는 올여름, ‘나 홀로’ 문화의 대표 격인 순수문학은 독자를 갈망한다. 홀로 막걸리 한잔에 입맛을 다셨던 천상병을 그리워하듯이.

 

박해현 기자

 - 조선닷컴 와플레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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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7-2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읽으면서 혼자 웃었군요. 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