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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울다 잠든 숲 ㅣ 청년사 고학년 문고 3
최나미 지음, 류준화 그림 / 청년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주는 느낌이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왠지 물기가 묻어난다. 숲은 한 아이의 몸, 아니 내면이었다. 주하는 어릴 적부터 병원 신세를 지는 엄마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늘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알아서 모든 걸 해야하는 아이로 자랐다. 아빠의 '널 믿는다'라는 말 한 마디를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것도 그 말 속에 주어지는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숲은 자란다. 숲은 수많은 나무를 품고 그 나무들은 수많은 바람결을 품는다. 바람은 한시도 가만 있지를 않는다. 웃고 울고 간지럽히고 휘몰아치고... 밤이면 바람은 더욱 큰 울음소리를 낸다. 산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 그 소리는 웃고 있다기보다는 설움에 복받혀 울고 있는 소리로 들린다. 특히 요양원에 가 있는 엄마와 생업에 종사해야할 아빠랑 떨어져 산골 외갓집에 와서 원치 않는 생활을 해야하는 주하에게는 말이다.
아이들은 자란다. 나무가 자라듯, 숲이 자라듯 그렇게 수많은 바람을 겪고 또 품으며 바람을 잠재운다.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은 주하라는 여자아이가 마음의 상처와 슬픔을 딛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특히 외할아버지의 속깊은 사랑이 등장한다.
이 동화를 읽으며 나는 친정아버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연이어 내 딸을 생각하게도 되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얼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내 딸의 외할아버지에게도 여기 주하의 외할아버지 같은 묵직한 사랑이 느껴진다. 딸의 딸이 겪을 슬픔이 안쓰러워 보살피는 마음이 절절하다. 주하의 학교숙제로 연을 만들어주려는 외할아버지는 작업실에 묵혀두었던 상자에서 얼레를 찾아 완벽한 연을 만든다. 연과 얼레. 이는 뗄레야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인연줄이 아닐까. 외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딸. 주하는 그런 인연의 질긴 끈이 사랑으로 꽁꽁 이어져있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주하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한 아이 같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아이는 펑펑 울고 싶고 투정도 부리고 싶은 연약한 아이일 뿐이다. 아이들도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자존심도 강하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란 것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아이가 마음을 열고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이 바람소리에 잠 못 이루는 외손녀의 황폐한 숲을 잠재웠다. 숲도 겉으로만 보면 초연하고 강건해보인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숲은 여리고 보드라운 모습을 하고 있다. 색깔 또한 겉으로 보이는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다양한 색으로 옷을 입고 있다. 주하의 숲은 앞으로 훌륭한 모습으로 자랄 것이며 갖가지 아름다운 색을 띄면서 날로 창창해질 것이다.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그 중에 진짜 이름이 주하인 아이가 있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