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탑
윌리엄 골딩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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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고 했다. 지상의 길과 허공의 길은 양립하고 있는 듯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늘 교차하며, 생기고, 변하고, 자란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가 단 하나뿐이라면 단조롭고 지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오목렌즈로 모아 프리즘을 통해 다양한 색채로 내어뿜는다. <첨탑>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런 눈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적지 않은 은유와 상징들을 포석으로 하여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말 못할 이야기들이 우리들 숨어있는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상에 난 길을 '언덕길'이라 한다면 허공에 난 길은 '첨탑'으로 비유된다. 여기서 나는 이문열의 <하늘길>이 생각났다. <첨탑>은 중세 어느 성당의 주임신부가 된 조슬린이 세운 '하늘길'이다. 도달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하늘'이 존재하지 않듯이, 탑의 꼭대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경계도 없고 '없음'만 있을 뿐이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하늘길이듯이, 사백 피트 탑의 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놓는 과정만이 조슬린에게도 우리에게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애시당초 첨탑은 환상으로 이루어졌고, 역설적이게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성직자다운 품성을 타고 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조슬린(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부류다)은 첨탑을 세우며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였던 젊은 날의 2년을 회상한다. 조슬린은 지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날의 오만과 무모함, 열정과 욕망을 떠올리며 몸을 떨고 있다. 하느님은 언제나 합리적이지 못하였지만 사람은 믿음으로 비합리적인 주문을 실행할 수 있으며, 하느님은 탑의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지상의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산다는 것은 수도 없이 죄를 짓는 일이다. 숨을 쉬고 내뱉고, 음식을 먹고 배설하고, 욕정을 품고, 사람을 부리고, 내 뜻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루도 죄를 짓지 않고서는 목숨을 지탱할 수가 없다. 첨탑은 '돌묵시록'이라고 단언되는데, 이는 존재의 막다른 곳을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보인다. 첨탑은 그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껏 자만하기 위한 신기루 같은 것이다.

신기루란 실체가 있어야 생기는 법. 실체는 지상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조슬린의 성당이 자신의 존재이듯, 우리가 사는 집이나 일상적인 삶의 틀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 안에서도 우리는 드높이 오르고 올라 어떠한 최고의 모형에 이르려한다. '첨탑'은 그 과정에 의미를 둔다면 나쁘지 않은 삶의 단계이자 과정이다. 그곳에 오르는 단계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첨탑은 '최고의 기도 모형'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갈망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꿈(환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는 존재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의무이자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첨탑을 세우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사랑을 기만하고, 우정을 금가게 하는 일은 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꽃들의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조슬린이든 우리들이든, 위(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혹은 하늘)만 쳐다보고 가다가 어느 날 저 아래에 움푹 패어있는 지하구덩이를 보게 되면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암흑의 본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곤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곤 한다. 조슬린의 성당은 그와 한 몸이며 지하실은 조슬린의 음울한 내적 욕망을 드러내는 곳이다.

행동의 동기는 대개 사소한 것에 있다. 조슬린의 첨탑은 흠모했던 빨간머리 여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일로 귀결된다. 그가 무모하리만치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이며 쌓아올리는 첨탑은 남성의 상징으로 우뚝 선다. 의식의 표면으로 불쑥불쑥 떠오르곤 하는 성적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그는 꿈에서도 천사를 불러들여 사탄을 물리치려한다. 어떠한 고결한 명분도 한낱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불꽃보다는 위대하지 않은 걸까. 성직자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저 한 명의 남자에 불과한 조슬린은 가장 인간적인 고해를 마음속으로 행하며 지상을 떠난다. 자신의 비유를 못 알아 듣는 신부를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드디어 죽음으로서만 속죄할 수 있다.

<첨탑>은 중세라는 시대와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굳이 그런 배경을 의식하지 않고 읽어도 좋다. 주석이 친절하게 달려있어 역자후기 뒷장을 참고하면서 읽어내려가면 숨은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조슬린은 우리 시대 어느 누구와도 비슷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이다. 굳이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좀더 절제된 인간본성을 어렵사리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점은 존재감의 부재에서 오는 인간본연의 갈등을 좀더 거슬러올라가 따져보기 위함이 아닐까. 신 중심의 암흑시대에 그래도 희망은 사람이며,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한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내가 마음속에 세우고 있는 첨탑 하나가 있다면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해본다. 의미를 둔다면 단지, 균형과 조화를 미덕으로 하는 비례의 원칙이 중요하겠다.

마치 조슬린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격랑하듯 읽어가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문장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다. 조슬린의 감정의 동요를 따라 때로는 단절되기도 하고 유유히 흐르는 척 가장하기도 하는, 대담한 문장 안에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는 것 같다. 마치 조슬린의 이성과 감정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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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2006-04-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들이 정리가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