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어느 가게의 유리창에 적힌 글귀에 눈이 반짝했습니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아, 그 가게는 고깃집이었습니다. 웃어야 하나? 예, 씁쓸한 웃음이 났습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진주성 부근의 어느 커피점 유리창에서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보았습니다. 두 구절 다 윤동주의 유일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 에서 인용해 왔습니다. 가히 동주가 트랜드가 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반갑기도 하지만, 그 이름이 유행하는 문화상품이 되어가는 것 같아 멈칫했습니다. 요즘만큼 동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여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새삼 돌아봅니다.

더러 잘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건 그의 시가 우리의 학창시절에서부터 자주 읊조려졌기 때문이겠습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동주'는 그런 점에서 꽤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그의 시와 삶과 시인의 마음결에 좀더 세심한 눈을 갖게 합니다. 흑백필름에 담아 시대성을 살리고 서정적이면서 순열純烈한 목소리를 잃지 않은 연출이 심장을 조이는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시가 그의 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숙명적으로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주의 시와 삶을 읽어내려가노라면 글 따로 삶 따로가 아닌, 진정한 시인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열 살 때까지 바다 海, 불꽃 煥, '해환'이라는 아명으로 불렸던 동주는 살아서 얻지 못한 '시인'이라는 이름을 죽어서 얻습니다. 2년 형을 선고 받고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6개월 앞둔 날 후쿠오카 바닷가 형무소에서 절명한 그의 시신은 고향 북간도의 용정으로 옮겨집니다. 3월 초, 눈바람이 매서웠던 날에 장례가 치뤄지고 '시인윤동주지묘'라는 거룩한 이름이 빗돌에 새겨져 우뚝 섭니다.

그러나 동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쉽게 쓰여지는 시' 중) 시를 적어야했던 동주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 2015년에 작가 안소영은 <시인 동주>를 펴냅니다. 윤동주에 대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과 시인의 삶을 엮어 저자의 촘촘한 상상력으로 직조한 소설입니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1998)이  이미 방대한 분량으로 잘 나와 있고, 그보다 더 이전(1984)에 마광수 교수의 윤동주 연구도 나와 있지만, <시인 동주>는 좀 더 쉽고 편안하게 그의 시와 삶에 다가갈 수 있는 소설로, 청소년에게도 어른에게도 권장합니다. 안소영은 간서치라 불린 이덕무와 실학파 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책만 읽는 바보>의 저자입니다.

동주의 시가 세상에 나오게 된 건 여러 사람의 간절함이 이루어낸 일입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연희전문학교 후배 정병욱과 그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시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요.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고 우리말과 우리이름까지 빼앗긴 암흑의 시절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지요. 1943년 3월 일제에 의해 조선어는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더이상 한글로 시도 이름도 쓸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주는 그런 시절에도 우리말로 시를 쓰고 세 부를 나누어 갖고 있게 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또 하나는 연희전문학교 이양하 교수가, 마지막 하나는 믿었던 후배 정병욱이었습니다. 정병욱은 징용으로 끌려가게 되자 고향 광양의 어머니에게 각별히 부탁하였고 어머니는 필사본인 그 시집을 항아리에 담아 양조장과 정미소를 하던 집 마루 아래에 숨겼습니다. 2007년 문화재청은 그 집을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로 등록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은 1948년 2월 16일 윤동주 서거 3주기에 나옵니다. 동주가 쓴 19편과 벗이었던 강처중(당시 경향신문 기자)이 동주가 써보낸 편지글에서 따로 떼어 간직하고 있던 12편을 합해 총 31편이 실립니다. 1955년에는 증보판이 나옵니다. 동주의 동생 혜원이 공개한 동주의 노트 2권에 실린 80여 편을 합하여 111편의 시를 실었습니다. 현재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당시의 책을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복원하여 내어 놓았으니 소장가치가 있습니다. 초판본에는 시인 정지용의 서문이, 증보판의 후기에는 정병욱과 윤일주(동주의 동생)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동주의 시와 삶이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이들의 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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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동에는 인왕산 자락에 안겨 있는 특별한 건물이 있습니다. 윤동주문학관입니다. 폐기된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독특한 구조로 살려낸 건물인데, 동주의 성품처럼 깔끔한 외관이 눈길을 끕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동주의 육필 원고들과 사후 나온 시집들, 용정의 우물을 옮겨 놓은 듯 가운데 세워둔 우물이 동주가 자주 상징으로 삼았던 거울, 자화상의 이미지와 중첩됩니다. 제2전시실은 열린 우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우물을 들여다보듯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며, 제3전시실로 이어집니다. 제3전시실은 육중한 철문으로 들어갑니다. 동주가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붉은 죄수복을 입고 독방에 갇혔던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하게 합니다. 철문이 등 뒤에서 철커덕 닫기고, 어두침침한 그곳 서늘한 공기속에 홀로 앉아 동주에 관한 영상물을 20분 정도 관람합니다. 형제 같았던 사촌 송몽규는 "단 한 번도 동주가 남을 험담하거나 헐뜯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회고합니다. 두 번 모두 한겨울에 갔던지라 그곳의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을 듯 선연하지만,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고뇌하며 영혼을 채찍질하였던 시인 동주의 고통에 감히 비할 수 있을까요.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수도가압장에 시인 동주의 영혼을 모신 것은 쉬 비겁해지려는 이기적인 우리 영혼에도 가열찬 의미가 됩니다.

​동주를 여리기만 한 서정시인이나 동시시인으로 보는 것도 그렇지만 저항시인이나 민족시인으로만 보는 것은 더욱 맞지 않습니다. 몇몇 편의 시만 보고 단정해버리는 오류입니다. 오히려 동주는 그런 경계를 뛰어넘는 지점에서 대립이 아닌 단독자의 결연하고도 온후한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키르케고르를 탐독했던 동주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 가닿았고 그것을 초월한 극지점에 홀로 섰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배웠던 <맹자>의 동양사상, 기독교적 박애정신, 영문학을 전공하며 읽었던 수많은 외국시와 철학서적들 그리고 존경했던 우리 시인 백석과 정지용의 작품들은 영원한 미완의 청춘, 동주가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시대와 민족을 바라본 시선은 차라리 인류애에 가깝습니다. 그의 시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자세,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이라고 담담하게 선언하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에는 범접하지 못할 서늘한 결기가 묻어납니다.

 

김응교 / 문학동네 

 

'처럼'은 동주의 시에서 자주 쓰이는 조사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자신과 동일시하여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이 담긴 조사입니다. 시 '십자가'에서는 드물고도 특이하게, 두 음절의 조사 '처럼'이 한 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절실하여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동주의 시가 힘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남의 마음, 남의 입장에 진정 감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안소영의 <시인 동주>에서 나아가 좀더 자세히 동주의 시와 일생을 알고 싶다면 김응교의 '시로 만나는 윤동주',  <처럼>을 권합니다.

저자 김응교는 꾸준히 동주의 시와 삶을 연구하고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윤동주에 대한 강의를 해왔습니다. 최근작 <처럼>에서 많은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쉽게 풀어서 쓰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진들, 육필원고와 중요한 단서가 되는 낙서들, 동주에게 일제가 내린 당시의 판결문도 그대로 실어 놓았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판결문의 서두를 읽어보면 윤동주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일제는 예민하게 감지하고 요시찰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길을 갔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일년도(1917년)에 태어났고 고 문익환 목사와도 함께 수학했던 윤동주, 그의 보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고심과 절망의 끝에서 한줄기 희망과 의지를 놓지 않는 시의 깊이를 더욱 알고 싶으면 <처럼>을 권합니다. 이 책은 스물아홉 해 짧은 생을 길게 살다간 영원한 디아스포라,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주의 삶을 시와 나란히 두고 심층적으로 안내합니다.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시인 안도현의 권두언처럼 '이토록 염치없는 시대, 윤동주를 다시 읽는다는 것'이 우리가 '동주/처럼'의 길로 한 발짝 들어서는 것이 되길 바랍니다. 동주,처럼!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1941. 5. 31​

​(배혜경과함께읽기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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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6-03-13 19:16   좋아요 1 | URL
네, 좋아했던 시인 백석과 정지용의 영향도 있을겁니다. 귀뚜라미와 나와..

비로그인 2016-03-1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프레이야님 좋은 하루되세요.

프레이야 2016-03-14 20:07   좋아요 0 | URL
네, 개명하셨군요.
저녁 되니 일교차가 크게 느껴지네요^^

비로그인 2016-03-14 20:1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꼭 껴입으세요.

kenfok56 2016-03-1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시대적 느낌을 보여주는듯 하네요^^

프레이야 2016-04-06 22:28   좋아요 0 | URL
재조명 되는 이유가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