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경과 함께 읽기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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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 두 번 주고 받을 수 있는 우리,
복된 일 많은 한 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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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날연휴는 날짜가 넉넉한 덕분에 금요일부터 귀성길에 올랐을 분들이 많겠습니다. 지금쯤은 음식도 다 끝내 놓고 식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휴식시간을 갖고 있겠지요. 요즘은 부엌일을 여자들에게만 미루지 않고 솔선해 도와주는 남자들도 많습니다. 누군가의 희생만으로 이루어지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없겠지요. 가족의 행복에도 총량불변의 법칙이 있어 누군가가 즐겁다면 누군가는 그만큼의 슬픔을 감수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명절날이면 젊은 세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평소 그리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가 명절 때마다 "너 언제 취업할 거냐?", "너 시집은 언제 갈 거냐?", "너 살은 언제 뺄 거냐?... 뭐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에 친척 만나기를 꺼린다고 하는 씁쓸한 보도를 들었습니다. 해묵은 감정을 풀다보면 악담이 오가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라 다 하지 못하는 말들도 있겠지요.
그래도 명절이면 찾아가는 곳이 고향입니다. 딱히 고향이랄 것이 없이 자란 세대들에게도 고향이라는 말은 편안히 가서 안길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곳입니다. 고향이 가고파도 가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아프고 안타까운 자리일까요. 고향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제각각 자리하는 그리움의 원천, 영원한 쉼터일 것입니다. 그런 고향에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추억이 있고 마을을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의 원형, 그 뿌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향에는 특유의 고향말이 있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충청남도 홍성이 고향입니다. 그의 시집 <어머니 학교>에 펼쳐지는 충청도말이 얼마나 구수한지는 그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충청도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저도 그 매력에 푹 빠져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녹음도서로 낭독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정록 시인을 몇 년 전에 처음 보았습니다. 부스스한 퍼머머리 아래, 떡 벌어진 어깨, 수더분한 인상에 수수한 옷차림, 투박하고 꾸밈없는 말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시인이라는 명찰을 단 사람의 외모가 아니어서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사진으로 본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져간 책에 사인을 할 때 보니, 의외로 손이 가늘고 고왔습니다. 섬세해 보였습니다. 역시 시인이구나 여겨졌습니다. 시인다운 외모라고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선입견일 뿐, 그의 말을 들어보면 시에 대한 그만의 철학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어릴 적 꿈이 개그맨이었다는 그는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본 세 시간이 필요한데 주어진 강연 시간이 너무 짧다고 귀여운 불평을 하더군요.
"세상에 아름다운 검은 매화가 있다면 진돗개의 똥구멍이다"가 그날 들었던 강연의 절창이었습니다. 자신의 똥구멍을 다 드러내고 사는 개처럼 시를 써라. 자신의 어둠과 흠집과 상처를 다 드러내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의 어록 "꽃은 까지려고 핀다"는 생의 여러 장르에 붙일 수 있는 후렴구입니다. 비단 시뿐만이겠습니까. 그의 산문집 <시인의 서랍>에는 그런 이정록 시인의 시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정말>은 이런 미더운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여섯 해가 된 시집이지만, 읽을수록 정감이 갑니다. 특히 마음속의 고향이 그리울 때면, 고향말이 그리울 때면 이 시집을 권하고 싶습니다. 명절 연휴에 부담없이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시집입니다. 울다 웃다, 신산한 우리네 삶과 식구들을 떠올리며 읽기에 썩 괜찮은 시집입니다. 충청도든 경상도든 전라도든 지리적 고향 너머, 고향말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느리게 눙치듯 할 말 다하는 것 같은 충청도 말은 그런 고향말, 고향에 대한 근원 모를 그리움의 진수일 듯합니다.
가족이란 보는 이 없다면 어디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든든한 울타리이자 가장 깊은 상처이기도 한 존재가 가족입니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말이 더 와닿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식구'라는 시에서 한문선생님답게도 그릇 기(器)자로 식구에 대한 풀이를 넉넉하고 다정스레 합니다. 식구는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일까요. "워쩔겨? 인연이란 게 다 코가 꿰인 울음보인 것을, 여덟 팔자 반토막 콧물 전 코뚜레인 것을(시, 콧물의 힘)" 시인은 그 징글맞고 눈물겨운 인연에 대해 시 '불주사'에서는 이렇게 씁니다.
인연이란 게 본래 끈 아닌가
내 왼어깨엔 끈이란 끈
잘 건사해주는 불주사라는 절터가 있다
어려서부터 난 누군가의 오른쪽에서만 잔다
하면 내 인연들은 법당 마당 탑신이 아니겠는가
내 왼어깨엔 엄니가 지어주신
불주사가 있다 손들고 나서려고만 하면
물구나무 서버리는 마애불이 산다
- 시 '불주사' 중에서 -
시인은 또 시 '물길'에서 식구를 바라보는 애잔하고도 끈끈한 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식구라는 그릇에
찰랑거리는 물의 총량은 같다
손자녀석이 턱받이를 걷어내자
설암에 걸린 할아버지가 침 질질 흘린다
물줄기가 원자력병원까지 번진 것이다
(중략)
활(活)이란 글자를 들여다본다
혀가 젖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다 살아갈 수 있다
수저통 속 수저들처럼 물기를 놓지 말아야 한다
- 시 '물길' 중에서 -
시집 <정말>은 흔히 그렇듯 표제작으로 쓴 제목이 아닙니다. 시집 어느 곳에서 '정말'이라는 시는 없습니다. 시인은 왜 '정말'이라는 제목을 따로 썼을까요. '엄니의 남자'라든가 '청혼'이라든가 '하늘접시'나 '참 빨랐지 그 양반' 등 다수의 시에서는 사람이 살고 죽는 일에 대해, 그 남루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엄정한 일에 대해, 삐질삐질 웃다가 눈물나는 특유의 해학과 성찰이 고스란히 배어 나옵니다. 어려운 말도 사념적인 용어도 수려한 언어미학도 부리지 않고 그저 어머니, 아버지, 이웃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배껴 놓습니다. '정말'입니다.
소설가 한창훈은 시집 뒤쪽의 발문에서 이정록 시인이 '그곳에서 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그 동네에서 살 것이다. 해왔던 대로 할 것이다. 과하지 않고 헐하지 않게 살고 읽고 쓸 것이다. 사랑할 것은 사랑하고 미워할 것은 미워하며 부모처럼 늙어갈 것이다. 그의 보폭은 늘 그 속도였다. 신뢰는 보폭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 <정말> 128쪽
지금 이 순간도 마음의 고향을 떠나 어디선가 방황과 유랑의 나날을 보내는 우리는 '그곳'이 필요합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향'입니다. 고향의 말이고 마음입니다. 고향말이 그리운 이즈음에 아니 고향말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마음 훈훈해지는 시집 <정말>과 <어머니 학교>를 권합니다. 반드시 소리내어 읽어보시길... 목젖이 젖어들 것입니다.
원자력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
수덕여관에다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
지팡이 안쪽에 새긴 유언,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마루 끝에 지팡이를 걸쳐 놓았지만, 지팡이가 돌아가서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한 글자에 오백원씩, 오천원 줬다 느낌표는 보너스여"
지팡이 손잡이를 받치고 있는 얼어붙은 걸레를 보았다
자식들의 눈길을 잡아보려는 간절함에서 풍경소리가 들여왔다
그래, 걸레가 돼야지 걸레는 저렇게 숭엄하지
언 걸레를 뜯어보니 수건을 반을 자른 거였다
나머지 반쪽은 행주나 발수건이 되었으리라
그렇지, 꼭 필요한 게 뭐여 지팡이, 걸레, 행주, 발수건이지 나는
이 넷에다 주소를 둬야지 그러면 삶이란 녀석도 지팡이 짚으며 따라오겠지
아버지 가신 뒤, 나무도 사람도 느낌표로 보이기 시작했다
성냥골 느낌표로 불을 붙여 담배연기 물음표를 피워물었다
느낌표로 고기를 구워먹고 느낌표를 이를 쑤셨다
꼭 필요한 느낌표가 되었나? 느낌표와 누워서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등 돌린 세상의 모든 물음표에 목을 걸고 싶었다
"느낌표가 전부여 한세상 접을 땐, 느낌표만 남는 거여"
- 시 '느낌표' 전문 / 시집 <정말> 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