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안 심심해 알맹이 그림책 4
마갈리 보니올 지음,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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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바람의아이들>에서 신간을 받았다. 뜻밖의 선물에 기쁘고 새 책을 볼 수 있게 보내주시니 고맙기도 하다. 오늘 받은 책은 그림책이다. 프랑스 그림책과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그림책들을 간결한 언어로 바꾸어 소개해주는 최윤정님의 번역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난 마냥 단순해지고 눈이 맑아지며 가쁜 숨이 한 박자 느려진다. 심심한 듯, 안 심심한 듯, 눈을 감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팔베개를 하고 혼자 누워있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아이의 배 위에는 곰돌이인형 하나가 느긋하게 누워있다. 아이가 누워있는 곳은 어딘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면 이야기는 아이의 마음처럼 펼쳐진다. 어른의 마음보다 빈 공간이 많고 말은 짧지만 핵심을 찌른다. 빈 공간은 흰색이고 한번에 죽죽 그은 듯한 검은 연필선이 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 짤막한 대화체의 문장은 콕콕 박아 말하듯 볼드체로 진하게 씌어있다. 단순하고 밝은 색채로 무덤덤하게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끝까지 이어진다. 물을 많이 섞어 칠한 수채화의 느낌이 깨끗하다. 

표지에서는 돌계단 같이 보이던 곳의 주위로 녹색 풀들이 나 있다. 아이는 곰돌이에게 뭐하냐고 묻고 곰돌이처럼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옆에 앉는다. 아이가 보기에는 곰돌이가 심심해 보이나보다. 아이는 곰돌이에게 하늘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가리키며 보여주고, 양말을 벗고 발가락에 햇빛을 쏘인다. 그리곤 발가락으로 풀도 뽑는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풀을 꽂고 뿌듯해하는 아이 옆에서 발가락이 없는 곰돌이는 시무룩한 표정이다. 여기까지 얘들이 하는 짓을 구경하고 있던 달팽이 한 마리는 돌계단의 귀퉁이를 타고 기어올라 이제 어디론가 가고 보이지 않는다. 곰돌이보다 더, 할 수 없는 게 많은 달팽이는 속상했을까. 이건 그림책을 다 보고나서 말해보자.^^

이번엔 나도 어렸을 때 많이 했던 놀이, 그림자놀이가 나온다. 역시 아이들이 곰돌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동물, 토끼가 등장한다. 하지만 불쌍한 곰돌이는 손가락이 없으니 제대로 안 될밖에. 침을 모아 볼이 터지도록 불어 만드는 풍선놀이도 곰돌이를 침울하게 한다. 삐쳐있는 곰돌이의 표정이란~~ 이 때 아이는 이런 친구를 위로하고 힘을 실어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지녔다. 귀로 갖가지 장난질을 하는 곰돌이를 보시라. 아마 아이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곰인형으로 이런 놀이를 해보았을 테다. 나도 아이가 어릴 적에 곰인형을 가지고 이런 쇼를 해보인 일이 있다. 아이가 울적해하는 날이면 곰인형을 가지고 손짓 발짓 다 하며 꾸벅거리기도 하고 갸우뚱거리기도 하며, 아이앞에서 어설픈 복화술 비슷한 것도 하곤 했다.

결국 곰돌이는 아이의 칭찬에 으쓱해하고 이제 둘은 마지막 놀이를 한다. 독자는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얘들이 안 심심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을 테다. 마지막 놀이.. 여기서, 어지럽게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사알짝 날려주듯 신선한 바람이 마음에 불어들어온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뭔가 불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켜고 오락거리를 찾고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과 왔다갔다 뛰고 굴리며 온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다. 하지만 밖에 나가 하늘아래 구름을 보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 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에게 느림보에 게으름쟁이에 명석하지 못한 아이라는 딱지를 붙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나 인형을 사주는 일은 허다하지만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금세 새로운 걸 찾고 더 비싼 걸 요구한다. 물질로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기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아이들은 차츰 혼자서 놀 줄을 모른다. 무언가 세트로 구비된 도구가 있어야하고 적당히 경쟁심도 필요하다. 자연에 있는 모든게 장난감이 될 수 있고 경쟁심리보다 서로를 재미나게 해주기 위한 착한 마음이 우선되면,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놀이가 된다. '아무 것도'는 '아무 거나' 라는 말과 통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데서 무어라도 할 수 있는, 창의적 가능성으로 열린 길이 보인다.

참, 어디론가 사라진 달팽이를 잊지 않고 있는지. 아이와 함께 놀지 않은 달팽이는 전혀 속상하지 않을 것이다. 달팽이는 느리게 한 걸음씩 가는 그 일이 지루하지 않을 테고, 구름처럼 그렇게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보고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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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2-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윤정님 번역이라니 덮어놓고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06-02-1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반딧불님도 최윤정님의 글을 좋아하시는군요. 이 책은 글이 아주 적은 그림책이긴 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