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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 ㅣ 돌개바람 3
유은실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마고할미>는 솔거나라 시리즈로 나온 보림의 그림책이다. 작가는 이 그림책에서 멋진 동화를 재탄생시켰다. 그렇게 키 크고 발도 큰 마고할미가 어떻게 윤이의 집에 왔을까.
윤이의 엄마는 무척이나 바쁜 분이다. 그래서 아빠가 집안일을 대신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손이 세심하게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집안곳곳이 지저분하고 음식의 맛도 별로다. 그래서 윤이는 다른 애들은 남기기 일쑤인 학교급식이 상당히 맛있다. 여기서 난 찔린다.^^
도우미로 온 할머니는 이름이 없다. 아니, 잊어버렸을테다. 이 할머니가 마고할미일거라고 짐작하는 윤이가 귀엽다. 그 상상력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는 영락없는 마고할미다. 무섭고 퉁명스럽지만 못하는 게 없는 할머니,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해놓고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줄도 아는 마법사같은 할머니. 이 분에게 비밀이 있다니, 더욱 놀랍지 않은가. 절대 가방을 열어보아선 안 된다니...
표지의 그림을 보면 이 할머니는 우리네 외할머니처럼 구수한 인상에 편안한 웃음을 짓고 계신 분이 아니다. 깐깐한 표정에 고집스러워보이는 미간의 주름, 이가 다 빠져있는 커다란 입과 날 선 매부리콧날, 힘줄이 다 드러나보이는 목선 그리고 참빗으로 넘겨 쪽을 진 숱없는 머리. 겉으로 보기에는 강직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할머니는 맑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아름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밤이면 집안에서 책을 보고 있는 윤이의 손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이다.
할머니가 아는 옛이야기는 윤이가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르다. 작가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판에 박힌 옛이야기를 좀더 진취적으로 바꾸어 흥미를 준다.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본 그 이야기는 여자라고 권위에 순종해야만 하고 운명에 순응해야만 한다는 식과는 다르다. 그래서 훨씬 생동감있게 윤이에게 전해진다.
처음엔 두렵기만 했던 할머니와 어느정도 친해지면서도 할머니의 비밀은 윤이를 계속 궁금증에 빠져있게 한다. 윤이는 어느날 목격을 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윤이의 상상이나 꿈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많은 걸 할 수 있는 힘은 산처럼 많이 먹는 밥이 아니라 연두치마를 입고 날이 밝아오도록 추는 춤에 있었다. 아, 여기서 놀라워하는 윤이 못지않게 이 책을 보는 우리들 표정이란!! 낭만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마고할미>에서도 긴 팔을 올려 초승달을 손가락을 살포시 쥐고 있는 마고할미는 연두치마를 입고 있다. 연두치마는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온 대지를 떠올리게 한다. 별을 보며 그리움 가득한 표정이 되었던 것처럼 춤을 출 때의 할머니는 선녀처럼 아름다웠을 테다. 그 옛날의 꿈을 꾸는 소녀의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남성신화가 보편적인 관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여성신화에 접근할 수 있게 한 점이 또한 돋보인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다. 여자 아이들이어서 훨씬 할 이야기가 많았다. '왜 이름없는 할머니에게'라고 씌어있을까, '할머니는 왜 윤이집에 왔다가 비밀이 탄로나자 왜 집을 나가셨을까', '할머니는 연두치마를 입고 춤을 추며 왜 행복해하셨을까', '할머니가 나가신 후 윤이네 가족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더니 아이들은 눈망울을 굴리며 나름대로 대답을 풀어놓기도 했다.
할머니가 나가고 홀로 남은 흰 머리카락 한 올을 윤이는 <마고할미> 뒷장에 붙여두었다. 언제고 윤이가 아주아주 바라는 날, 할머니는 다시 이 집에 올 것이다. 윤이에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주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주고 집안도 윤이 나게 바꿔놓을 것이다. 윤이가 '연두치마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날, 그 할머니가 윤이에게 다시 오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땐 윤이가 연두치마를 품속에 간직하고 겉으론 굳세고 못하는 게 없으면서, 목숨있는 것들에 촉촉한 연민을 품을 줄 아는 '마고할미'가 되어있을테니 말이다.
손에 들기도 좋은 크기와 두께, 시원시원한 글씨, 해학적인 삽화, 무엇보다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전개가 마음에 쏙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