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GoAhead & Co. 지음, 김한울 옮김 / 에이지21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빨간 하이힐구두가 도발적이다. 책 표지의 간단한 그림 못지않게 책의 제목 또한 그렇다. 특이하게도, 일본 최대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글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책 표지의 뒷면에는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고뇌하는 남자와 그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이 당신에게 <성숙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라고 적혀있다.

성숙한 사랑.. 난 아직도 이 고지의 반의 반에도 와 있지 못하다. 며칠 째 '방식의 차이'란 말이 걸려 마음이 복잡하다. 세상 사는 모든 방식을 다 이해한다해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자신의 것에 기준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상대의 것에 따라주어야하지 않을까.

여기 책 속의 남자는 결혼 17년째의 평범한 남편이다. 일 중독이 평범한 거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일을 가진 아내는 육아와 바깥 일 그리고 집안일로 조금씩 지쳐있는 상태인가보다. 무엇보다 일로 바쁜 남편과는 정다운 시간을 가진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져가는 여자다. 쓸쓸하고 외로웠을 거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을 테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문제는 서로가 조금도 그런 것에 대해 보살펴주는 마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소한 것으로 상처받고 슬퍼지는 순간들에 대하여 그때그때 내어놓고 서로의 입김으로 바람을 쐬어 말려주었어야하는 일이다.

드러내기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의심, 질투, 요구, 사랑. 이 모든 감정의 가장 치졸해보이는 부분까지 드러내기란 감추기보다 오히려 힘이 든다. 하지만 드러내어야 상처로 곪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도 예전부터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차라리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상대라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테다. 많은 네티즌들의 답변이 있지만 남자는 결국 자신 스스로 해답을 내린다. 아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칠 줄 모르고 눈물이 흐르는 사이 여자의 표정에는 날 선 칼날이 사라졌다. 강한 척 거드름피우고 합리화하고 있기보다 솔직한 가슴을 보여주는 남편에게서 그 예전 사랑에 빠졌던 기억이 살아난다.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을 십칠년 전에는 못했다. 좀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마음이 문제라고 자책하고 좋은 척 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아주 나쁘다. 젖어서 냄새 나는 빨래는 햇볕에 널어 그때 그때 말려야한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시원하게 그 냄새를 날려보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에 대해 상대가 먼저 알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의 눈길이 깊지 못하면 그 방식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속상해하지 말고 내가 먼저 말로 표현했어야했다. 그러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동안 멀어지고 낯설어지고 몸 속으로 황량한 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 책은 상처를 공공연히 내어건다는 의미에서 용기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란 그리 거창한 것에서라기보단 이렇게 통속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뭔가. 기본이 흔들리지 않아야 다른 것들도 튼실한 법. 눕혀져있는 빨간 구두가 우리의 감추어진 욕망만 같다. 그걸 신고 또각또각 걸어나가고 싶어지는, 어디론가.. <연애의 목적>이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진다. 하얀 눈길 위를 걸어가던 홍의 빨간 외투랑 어딘지 비슷한 이미지는 또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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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1-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나 좋습니다. 별세개짜리 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