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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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묘사도 없고 군더더기 문장 하나 없는 이 책은 손에 쥐기도 좋은 크기를 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종내 이야기의 내용을 짐작해보기 어려운 점에서 우선 호기심이 인다.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그 가볍고 명쾌함에 주인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주인공은 누구랄 것도 없는 우리네 현대인이다. 진정한 소통의 단절로 오는 소외감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현대인들이다. 감성 또한 너무 연약하여 별다른 배려없이 내뱉는 상대의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서 강박증을 일으키고 그 강박의 대상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 현대인의 강박 대상으로 여기서는 구두와 시계가 등장한다. 바쁘게 돌아가며 하루의 쳇바퀴를 굴리고 사는 우리는 정작 남의 시간에 대한 정중한 배려를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시계는 자신 안의 악어가 먹어치우는 대상이다. 주인공이 강박증을 일으키는 물건은 구두이다. 구두는 그날의 의상을 마무리 짓는 부분이자 자존심이다. 그것이 사랑을 느끼는 여인 앞에서 까발려져서 구겨졌을 때 예민한 주인공은 상처를 입고 자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이 책은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소외감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간결한 구도로 그려진다. 인물들은 하나하나 개성있고 위트있게 그려진다.  너절해보이는 감상적인 문장도 없고 괜한 복잡함으로 꼬아놓은 사건 또한 없다. 주인공이 어느 날 침대 밑의 악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 약을 복용하지만 결국 본질적인 치유책은 자신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먼저 느긋하게 내면의 악어와 마주보기를 하고 기다려줄 때 외부로부터의 관심과 사랑 또한 '악어 극복하기'에 약효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늑대가 내내 생각났다. 그 늑대와 이 책의 악어는 맞닿아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자아를 옥죄고 '나'를 집어삼키려드는 내 안의 적과 지금 우리는 어떤 눈싸움을 벌여야할까.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보이고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 안의 악어와 상대의 악어는 눈웃음을 보일 것이다.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은 엘레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내가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잘 사귀어두어야 한다고. 내 안의 늑대 혹은 악어랑 나는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는 나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뽀얀 먼지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결말에서 공기처럼 이상한 가벼움에 흡족해한다. 생은 그렇게 먼지처럼 가볍고 설탕가루처럼 달콤한 것이거늘... 예전에 고통스러웠던 것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볍게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들이 아니었나. 침대 밑 악어를 생각해낸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글쓰기 그리고 묵직하되 가볍게 처리한 주제가 한데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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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11-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정갈한 글이군요. 중학생 이상이니 함 읽어야겠습니다.

프레이야 2005-11-10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반갑습니다. 기분이 밝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