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들꽃 한빛문고 14
윤흥길 지음, 허구 그림 / 다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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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윤흥길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삽화들이 하나같이 기막히다. 이 책은 기억속의 들꽃, 땔감 그리고 집, 이라는 단편을 담고 있다. 땔감은 다시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나뉜다. 작가가 이 작품들을 쓴 연대는 1970년대이다. 작품내용의 배경이 되는 일들은 6.25전쟁과 전쟁 후의 참담한 생활이다.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참혹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작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그린다. 문장에서 가는 눈물이 소리없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춰진 말들, 비록 내뱉지는 못하지만 은근한 눈빛과 목소리로 변조하여 표현할 수 있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은가락지가 탐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아저씨를 보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을 아이, 명선. 그 아이가 강에 떨어져 죽던 날,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들꽃의 이름처럼 스러져간 한 생명에 대한 애잔한 연민을 느끼는 '나'.

미친듯 부딪히다가도 그놈의 목숨 앞에서는 약해지고야마는 인간.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자신의 자부심과 미래의 원대한 꿈을 묻어두고 그것을 지키려했는데 좌절하고야마는 '나'의 형. 교회 종탑에 올라 종을 울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매달려있는 그 형의 부서진 꿈은 현실의 굴레에서 꿈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젊음의 꿈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성이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을까, 나아가서 어디까지 비루해질 수 있을까. 생존이 달린 문제 앞에서 도덕과 양심이라는 가치만을 고수하기란 연약한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화자를 '나'라는 순수하고 진지한 눈을 가진 아이로 내세우면서, 작가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특히 '나'의 아버지는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자기합리화를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이를 어찌 나쁘다고만 말 할 수 있을까. 살아갈수록 무어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장과 잘 어울려 빚어져있다. 작가가 군데군데 배치해둔 상징들의 의미를 깊은 눈으로 짚어보면 읽는 재미가 더할 것이다.

사람은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를 떠나서는 한 사람의 인간성이라는 것 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기준조차 애매해질지도 모른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간성을 규정하는 기준은 사회의 시선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생명과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성질을 띤다면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아버지'란 존재의 어깨는 너무 무거워 구부정하다. 그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족들, 사회적 요구들 그리고  도덕적 잣대 같은 것들이 그의 무력함이나 비겁함을 손가락질 할 때 우리는 슬퍼진다. 소리 없이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바라보고 그 울음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좋겠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드나보다. 학생시절 아버지의 비사교성, 무력함 따위를 속으로 원망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고희도 훨씬 넘긴 아버지의 어깨를 보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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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0-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 1학년이 읽을 책이 참 드문데..괜찮던가요? 저도 함 볼래요

프레이야 2005-10-16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할 중요한 상징 같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래도 도와주니까 괜찮아했어요.. ^^

로드무비 2005-10-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흥길 선생의 책 중 이런 것이 있었군요.
한 번 읽어볼랍니다.^^
(그리고 부모의 무력함이 이제 나의 것이 되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