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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때까지 우리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나중엔 커서 개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름도 용모도 특이했다. 쫑이라 불리고 왼쪽 눈언저리와 왼쪽 귀에 커다란 검은 반점이 있는 점박이였다. 몸의 다른 부위는 온통 하얗고 복실거리는 촉감이 따스했다. 초승달처럼 치켜올라간 꼬리는 끝부분에서 넓게 퍼져있고 흑진주 같은 눈을 들여다보면 내 눈이 다 비칠 정도였다.
쫑은 잘 먹고 잘 자랐다. 덩치가 커지면서 털도 많이 빠지고 달거리도 하였다. 밥을 챙겨주는 일이며 목욕을 시키는 일까지 어머니의 몫이었는데 하루 일이 바쁘셨던 어머니는 쫑을 돌보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오니 어머니가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퍼드러지게 울고 계셨다. 쫑을 알루미늄 밥그릇을 씻고 또 씻으며 그러고 계셨다. 장날 개장수한테 쫑을 팔았다는 것이다. 나는 시위를 벗어난 활처럼 개시장 쪽으로 튀어나갔다. 누린내 나는 골목을 뒤지다 숨이 컥 막히는 것 같았다. 닭장 같은 우리 안에서 쫑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발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개장수에게 울며불며 매달려 쫑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머니는 쫑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달랐다. 살갑지도 않고 밥도 성의없이 주는 것 같아보였다. 개도 오래 같이 살면 한 식구가 되어 정을 떼기가 어렵다며 정을 함부로 주어선 안 되는 거라는 말만 흘리셨다. 그 후로 쫑은 3년 정도를 더 살다가 결국 어머니 손에 팔려가고 말았다. 그때도 나 모르게 일을 다 처리한 후였다.
'개'를 읽으며 내내 쫑이 생각났다. '보리'도 쫑처럼 이름이 정겹다. 쫑은 잡종개였지만 보리는 좋은 혈통의 진돗개다. 난 개의 차가우면서도 촉촉하고 까끌한 코끝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 했다. 개의 발바닥은 갈라져있고 시커멓다. 푹신하면서도 딱딱하고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거칠다. 쫑은 앞발을 내 손에 잘 얹고 악수하는 포즈를 취하곤 했는데 그때의 촉감이 살아나는 듯 하다.
개는 눈치를 잘 살핀다. 보리의 입을 빌자면 개는 사람의 눈치를 잘 살펴야한단다. 고양이도 그렇지만 개는 고양이보다 이기적이지 않다.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개는 선하고 대들 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주인에게 가든 현재의 주인이 최고의 주인이다. 비겁하다 할 수 있는 성품일까.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훈의 '개'는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개의 마음의 눈을 따라간다. 비루하고 지난한 삶.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금 이 땅을 굳세게 디디고 박차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리는 부질없이 하늘로 솟아올라 날아다니는 새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이 쓸 것으로 챙겨두는 물고기 대가리를 한사코 쪼아대는 그들의 몰염치가 역겹다.
보리는 흰둥이의 존재, 악돌이의 존재마저 자신의 품으로 모두어 안는다. 어느 누구의 암컷이 아닌 암컷, 흰둥이는 보리에게 무구한 모성의 힘을 느끼게 한다. 자신보다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악돌이도 보리에게 있어서는 대항해야할 대상이라기 보다 포용해야할 세상의 단편이다. 보리는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비롯되는 삶의 절망을 느끼고 세상 어느 곳으로도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와 동행한다. 아기의 똥을 먹고 사람의 냄새를 속속들이 맡는 그는 유난히 예민한 후각으로 세상을 알아간다. 부단히 몸으로 부딪혀 세상을 배우는 힘 못지 않게 그놈의 코가 제 능력을 다한다.
나는 얼마나 몸으로 부딪혀 살아가는지, 대답할 자신이 없다. 관념이나 망상으로 그리는 것들은 모래 위에 세우는 탑일 테다. 또 얼마나 힘차게 내 발바닥을 딛고 살고 있는지, 얼마나 상대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깊은지, 이 모든 과제를 오늘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 훌륭하지 않은 개는 없지 않은가. 보리의 엄마가 약골의 형을 잡아 먹는 장면이 아른거린다. 결국 작가는 모성에의 열망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자, 세상을 지키는 힘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바닥, 땅, 엄마 개, 주인할머니, 흰둥이... 그리고 쫑. 쫑은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다른 집에 줘버렸던 기억이 난다.
김훈의 다른 글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장점이 있다. 현란한 수식어나 장황한 비유어보다 소박하니 짧고 단순하게 생각의 단위를 풀어내는 느낌이다. 개의 입을 빌어 쓴 이야기이니 그럼직하다. 글에 따라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탐난다. 김세현의 삽화도 소박하고 조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