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6일 녹음 시작

현재 6시간 소요 124쪽까지 진행. (총 311쪽)

 

 

 

 

열 개의 단편이 모인 윤성희의 소설집 <웃는 동안>은 귀신들의 이야기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그래서 이 소설집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에서도 눈치 챘지만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생의 가볍지만은 않은 고통을 가볍게 날려주려 한다.

죽은 자들이 바라보는 산 자들의 모습, 죽은 자들끼리의 이야기, 죽은 자들의 시간과 산 자들의 시간이

수시로 넘나들기도 하면서 기억과 회상, 아픈 추억과 멍든 가슴 한 구석,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 되어지는 바람에 가슴이 더 시린 이야기들이다. 그런 시간과 기억의 연속성을 대변하듯 아주 긴 한 문단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문단 구분이 없이 귀신들의 상념과 대화와 떠들썩한 수다들이 이어진다.

 

'사소한 우연이 전해주는 아주 잠깐 동안의 기적 같은 선물!'

띠지에 적힌 부제다. '우연'이라는 말은 자주 듣고 쓰는 단어이지만 특히 잘 들린다.

읽고 있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에서도 '우연'이 언급되어서 그렇다.

<웃는 동안>의 네번째 이야기 '공기 없는 밤'에서 '우연'은, 우연에 의한 생의 그림은 이렇게 묘사된다.

 

"아침에 손톱을 깎을지 저녁에 손톱을 깎을지 차이야."(p109)

"명심해. 어느 아침에 손톱이 깎고 싶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p111)

 

그런데 우리 삶에 이 놈의 우연이란 것도 모종의 마음작용에 의한 가면의 운명이 아닌지,

나는 그런 의심이 살짝 드는 것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2012년 2월 1일 녹음시작

총 19시간 소요 녹음 완료.  6월 26일 1차편집 시작 현재 84쪽까지.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

 

<흑산>의 첫 문장이다. 김훈은 대개 첫 문장에서 압도한다.

이 문장에서도 '흑산행 돛배는' 에서 '는' 과 '가'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했을까, 혼자 생각이 든다.

 

일전에 순교자 박물관에서 황사영의 백서를 보았다.

유리 전시장 안 너머로 그걸 마주했을 때 나는 갑자기 얼어붙 듯 멈췄다.

김훈의 <흑산>을 읽으며 내가 가장 인상 깊었고 안타까웠던 인물이 황사영이었고 그가 올린 '백서'였기에.

박물관 유리장 너머로 보이는 백서의 내용을 내가 읽은 순 없었지만 자잘한 세로 글씨로 빽빽하게 써내려간

글자의 나열만으로도 그 내용의 간절함이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육지의 시간을 끄는 마노리나 바다의 시간을 너머 다니는 문풍세 같은 가상의 인물도 몫이 크지만

맏형 정약현의 사위, 열 여섯에 장원급제한 맑은 청년 황사영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황사영이 임금앞에 나아가 첫 만남을 한 후 잡혔던 손을 비단싸개로 하고 지내는데

정약현은 이를 보고 어수를 모신 손이구먼, 이라는 약간의 조롱과 함께 감추어 가리려고 하는 게

오히려 드러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리곤 소년등고로구먼, 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황사영은 그걸 벗어버리고 그 전말을 정약현에게 글월로 올리고 정약현은 어린 사위의 총명함에 웃음 짓는다.

오늘 이 대목을 다시 읽으며 김훈은 참 대화체도 특별한 어감을 준다는 느낌을 새삼 받았다.

 

- 소년등고少年登高로구먼.

사윗감을 물가 마을로 불러들인 자리에서 정약현은 그렇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과 재주가 좋아서 문장을 잘 짓는 일이 인간의 큰 불행이라는 '소학'의 글귀가

황사영의 머리에 스쳤다. 주희가 '소학'을 엮으면서 정이천의 말을 옮겨놓은 문장이었다.  (p65)

 

 

김훈이 정약용을 보는 대목도 재미있다. 정약용이 조카사위 황사영을 보는 눈에 실려서 빚어낸다.

 

셋째 처숙부 정약용은 경전이나 인륜으로 채울 수 없는 아득하고 넓은 땅이 그 소년의 마음에 날것으로 펼쳐져

있음을 알았지만, 정약용의 눈길은 늘 세상의 굴곡에 닿아 있어서 날것이 날개 치는 그 멀고 드넓은 땅이 깊이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p69)

 

 

 

1801년 순조1년 11월에 황사영이 배론에서 체포되면서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서양 군함의 파견 등을 요청하는

내용의 '백서'도 압수된다. 그리고 정약전과 약용이 불려 올라와 심문을 받고, 12월에 황사영은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 된다. 황사영의 부인 정명련은 제주 대정현의 관비로 가는 뱃길 중, 두 살 난 아들 경한을 살리기 위해

추자도에 내려놓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책 뒤쪽 참고문헌 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29 0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2-06-29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웃는 동안>은 '어쩌면'이었나 '어쩌다'이었나, 를 읽다가 만 기억이 나요. 하지만 겨우 세 장 정도 읽었음에도 그녀의 글은 아주 특이하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네요. 문단을 나누지 않잖아요, 윤성희는. 이 책만 이런가, 하고 여러 문학상 수상집을 뒤적거려 보니 다 그렇더라구요. 신기했다구요. ㅎㅎㅎㅎ
하여튼, 오늘부터 시험 공부 들어갑니다. 한 동안 뜸할지도. 전혀 안 그럴지도.

프레이야 2012-06-29 19:34   좋아요 0 | URL
윤성희의 '감기'도 집에 두고만 있는데 봐야겠네요. 원래 문단을 안 나누는군요, 그분.
첫 장 '어쩌면'이요.ㅎㅎ 그 장 후반에서 '우리를 날게 하는 말들'이 좋더라구요.
어떤 말을 생각하면 나는 기분이 들까요. ^^
소이진님, 오늘부터 시험공부 열심히 하구요, 머리 식힐 때 가끔 들르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