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배캠에 나온 촌철시인 김경주가 소개한 시인은 김사인님이다.
유명한 <가만히 좋아하는> 외에도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그는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김경주 시인은 거의 매일 그곳에 가는데 오늘도 갔다왔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오늘 소개한 시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과 '참새'였다.
철수씨는 '참새'의 '가난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라는 구절이 참 좋다고 말하네.
'참새'는 찾을 수가 없어서 김사인 시인의 다른 시를 몇 찾아보았다.

일년 중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요즘, 이런 계절,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까워 안달이 난다.
너무 빨리 가는 것도 너무 충만한 것도 겁이 덜컥 나는...
너무 빨리 다 먹어버리면 밥그릇이 외로울 것 같은,
너무 좋은 책은 휘리릭 다 읽어버리지 않고 몇 장 남겨둬야 내 곁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딱 그런 기분.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제가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만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안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 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 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싶어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  " 연전에 작고한 이성선 시인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 부분을 빌리다 

 

 

 

늦가을


- 김사인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을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른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시간들 
  
 

- 김사인
 
 
 
48년 9개월의 시간 K가 엎질러져 있다
시원히 흐르지 못하고
코를 골며 모로 누워 있다
액체이면서 한사코 고체처럼 위장되어 있다
넝마의 바지 밖으로
시간의 더러운 발목이 부었다
소주에 오래 노출되어 시간 K는 벌겋다
끈끈한 침이 흘러
얼굴 부분을 땅바닥에 이어놓고 있다
시간 K는 옆구리와 가려운 겨드랑이 부위를 가지고 있다
잠결에 긁어보지만 쉬 터지지는 않는다
흘러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더러운 봉지에 갇혀 시간은 썩어간다
비닐이 터지면 시간 K도
힘없는 눈물처럼 주르르 흐를 것이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잠시 지하도 모퉁이를 적시다가
곧 마를 것이다 비정규직의 시간들이
밀걸레를 가지고 올 것이다
 
허깨비 같은 시간들, 시간 봉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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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金思寅, 1955년 ~ )
충북 보은, ,1981년 ‘시와 경제’ 동인으로 시 활동.
1977년 11월 18일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1987년 이후 조정환, 박노해와 더불어 1989년 3월에 ‘노동해방문학’ 창간
평론《한국문학의 현단계 》〈지금 이곳에서의 시〉
시집 《밤에 쓰는 편지》(도서출판 청사),《 가만히 좋아하는 》 (창비시선)
2006 제14회 대산문학상 시부문수상 ,2005 제50회 현대문학상 시부문수상
1987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 수상
1996 ~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스토리뱅크 편집위원
-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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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10-1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사인 시, 저도 가만히 좋아하는 시입니다. ^^

아이리시스 2011-10-1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 나 때문에 하늘이 더럽혀진다니,ㅠㅠ 별이 더럽혀질지도 모른다니,ㅠ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 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싶어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갑자기 슬퍼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