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집의 모팻 가족 웅진책마을 11
엘레노어 에스테스 지음,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고정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다섯 살이나 터울이 나는데도 늘상 말로 토닥거리는 우리집 두 딸 때문에 어떨 땐 내가 무얼 잘 못 보이고 있나,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서로 양보하고  예쁜 말 쓰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도 그 때 뿐이다. 넉넉함은 조금 모자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모팻가족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만나며 내 마음이 이리 따스하고 가벼워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동화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란 집의 모팻가족>에는 특별함이 있다. 옮긴이의 글에서처럼 일상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을 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 엘레노어 에스테스는 미국인이다. 1941년에 나왔다는 이 동화는 공간적 배경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낯설다. 시간적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약간 날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인다. 

세월을 살아오다보면 누구나 몇가지쯤 작은 사물 하나에도 정겨운 기억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여기 첫장부터 사소하지만 주의를 끄는 것은 노란 집 앞의 쇠말뚝이다. 말고삐를 매두는 쇠말뚝은 주인공 제인이 잘 앉아 있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이 쇠말뚝은 마치 노란 집이 모팻가족의 집이란 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가진 증표와도 같다. 적어도 제인에게는 그렇다. 나중에 노란 집에 눈독을 들이며 제인의 그 쇠말뚝에 턱하니 앉아 밉상을 떠는 머독씨의 딸을 사이비(?) 최면술로 쫒아버리는 제인과 루퍼스의 합작공연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뒤로 갈수록 미국사회의 변화하는 모습도 조금씩 볼 수 있다. 가령, 옷을 마추어 입던 시대에 싸고 좋은 기성복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재봉일로 생계를 책임지는 제인 엄마의 일손이 줄어든다. 이 대목만으로도 4남매가 엄마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얼마나 어루만져주고 싶어하는지 느껴지는 문체다. 행간마다 이상한 기운으로 따스한 노란 색이 스며있는 것 같다. 그냥 감상적이거나 피상적인 따스함이 아니라 힘 있고 여유로운 유머가 느껴지기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전차가 새로 생겨 길을 가로 질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충돌할 뻔하는 장면은, 아이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전차 모험'을 하는 것 같이 유쾌하다.

이외에도, 집안의 벽난로를 피울 석탄을 사러 추운 겨울날 썰매를 끌고 심부름을 두번이나 갔다오는 조와 제인, 집안의 어둠을 밝힐 램프의 유리보호막을 닦고 새로 불을 피우는 제인, 성홍열이 난 막내 루퍼스를 위해 온 가족이 하는 일들을 보면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에서 각자 필요한 몫이 무엇인가, 새삼 생각하게한다. 그리고 일상의 작은 일을 무슨 의식처럼 충만한 감정으로 해내는 이들 남매와 넉넉한 눈과 가슴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엄마는 노란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생활을 시작하여도 변함없는 기쁨으로 생을 엮을 사람들이란 믿음을 준다.

이야기는 모두 열두 장으로 나뉘어있다. 뉴달러 거리의 노란집에 "팝니다"라는 표지판이 걸리는 날로부터 그 집이 머독씨에게 팔려서 모팻가족이 이사를 가는 날까지의 이야기이다. 한 장의 이야기에는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이것들을 엮으면 서로 잘 어울리는 하나의 보석목걸이가 된다. 하나의 장을 아무 곳에서부터 봐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참 재미나다. 특히 '세일러스 혼파이프 춤'에서 강아지 슈가와 조의 멋드러진 콤비네이션이란!  독자에게 예측불허의 기쁨과 놀라움을 이런 식으로 주다니!  

<노란 집의 모팻가족>은 아이들의 순진무구함과 장난기, 아이다운 두려움, 그리고 아이다운 자존심을 살려주는 대목들, 이런 것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서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는데 조금 가난한 것은 아무런 걸림이 되지 못하게 한다. 이들은 가난 때문에 비탄에 잠기지도,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이 동화는  장점이 생각보다 많다. 인물들의 성격묘사뿐만 아니라 풍경이나 장면, 상황의 묘사가 세심하다. 부드럽게 안기는 문체로 인물도 풍경도 참 매력적으로 그려보인다.  밝고 선명한 인상의 삽화도 이야기를 더 활기차게 한다.  무엇보다 모팻남매의 건강함이 읽는 이를 무조건 기쁘고 뿌듯하게 한다. 끝부분에서는 죽은 아빠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제인의 심리가 '울먹울먹'하며 그려진다. 그러다 제인은 나중엔 돌아오지 못할 유년시절의 소중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이 부분은 아홉살 제인이 그럼직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성인이 된 작가의 그리움이 묻어나면서 잔잔한 울림을 준다.

- 제인은 자기도 나이가 들어서 길을 뛰어다니지도 못하고 전차를 따라 달음박질도 못하게 되는 날을 생각해 보았다. ...... 그러자 오늘 식구들이 노란 집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은 많은 즐거움을 빼앗기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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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6-10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그런데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어렸을 적 작은아씨들을 읽으면서 행복했던 시간이 그리워지네요.
이 책 읽으면 그때 그 작은아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