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흔한 길을 갈수 없는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8년전 눈을 잃으셨습니다. 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삶을 기록합니다. 이 일을 시작한지 꼭 3년째입니다. 젊은 피를 잠재우고 갯벌에 뛰어드는 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달콤한 유혹과 환락으로 가득찬 도시생활을 경험해 본 젊은이에게는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의 촛점을 "가족"이라는 두 글자에 맞추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자기 인생이 중요하다지만 생명을 나누어 주신 부모님에게 내 삶을 조금이라도 되돌려 드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집에서 10리나 떨어져 있는 어장으로 물고기를 잡으로 나가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팡이 끝 쇠갈고리 하나에 온 몸을 맡기신채..
험한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시더니 아버지만의 지혜가 하나 둘씩 쌓였습니다. 바닷일에서 체득한 지혜는 목숨을 담보로 얻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버지에겐 절실하고도 소중한 것입니다.

간혹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 고생 좀 그만 시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난 아버지가 하시는 데로 그냥 지켜 볼 뿐입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때론 지켜 보는 것...그게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선재도...선녀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내려 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을 간작한 섬. 우리 가족은 4대째 선재도에 살고 있습니다. 걸어서 한시간 남짓이면 가로지을수 있는 이 작은 섬에도 산이 있고, 길이 있고,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걸 견뎌야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 하십니다. 오늘도 어른이 되기 위해, 바다를 향해 첫발을 내딛습니다.

아버지 곁에 돌아온지 꼭 3년째 입니다. 내겐 복학에 대한 꿈도 없었고 사랑에 대한 미련도 없었으며 재물이나 명예 따위도 욕심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나는 아버지의 지혜를 물려 받은 어부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메어 옵니다. 아직 시력이 남아 있었던 그때, 병원에만 제대로 모시고 다녔더라도 실명까지는 않되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가슴을 칩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람들이여 행여 아버지를 쫓아 바다에 나갈 땐 조금 더 겸손하자 너른 갯벌에 펼쳐진 아름답다 생각 될 그물들은 지난 수년간 모진 태풍과 싸워 만들어 낸 아버지의 결실 찢기고 깁고, 가해자 없는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대들이 새우깡을 던져 모여 든 갈매기들은 이미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친구이다
사람들이여 아버지의 바다에서 고기를 건져 올릴 땐 조금 더 신중하자 손쉽게 건져 올리고 촬영하던 그 물고기는 지난 수년간 성에를 파 헤치며 찾다가 이산(離散)된 아버지의 핏줄 수없이 걸어다닌 갯벌은 상봉(相逢)의 고리가 되었다. 그대들이 웃으며 죽은 고기를 던져 버릴 때 그건 아버지의 눈물엔 한이 맺힌다.
글과 사진-김연용
사진 출처-www.jaw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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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쪽 바닷가 작은 섬 선재도에서 태어난 김연용님은 도시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아버지의 실명 소식을 듣고 미련없이 아버지의 곁으로 귀향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선재도 바닷가에서 작은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절망을 딛고 어부로서의 삶을 시작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옮기는 작업을 3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 동우회에사 <자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 현재 민박집 홈페이지인 <바다향기>(www.bdhg.co.kr)와 사진 관련 홈페이지 자우넷'(www.jawoo.net)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료는 human&books에서 출간 된 <아버지의 바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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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5-0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얘기 저도 어디서 들었는데 다시 찡해지네요.
선재도였군요. 기회되면 가봐야겠다. 바다향기에서 숙박하고 ...

chaire 2004-05-0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봐도 뭉클...

치유 2004-05-2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언제인가 티비로 봤는데 그 아들의 마음에 너무 감동하고 한참을 눈물 질질 흘렸던 기억입니다..
어른들이 불편하다 싶으면 못하게..그냥 쉬시게 하는게 우리들의 생각이지만 이 효성스러운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것 좋아하시는것을 함께 살피며 아버지곁에서 눈이 되어드린다는것입니다..
얼마나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마음깊은 아들인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바다에 늘 잠잠함이....
이분들 가정위에 늘 하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