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64
생 텍쥐페리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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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는 <야간비행>의 서문을 썼다. '인간의 허약함이니 불성실이니 방종함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인데다 오늘날의 문학이 너무나 잘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긴장된 의지력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자기 초월의 경지는 오늘날 우리가 제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 위 불빛 과 밤하늘의 별빛 하나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일까. 개인의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그 빛을 발하고 영속되는 것일까. 늙음과 죽음은 이런 모든 것을 한낱 먼지로 날려버릴 것인데. 어두운 밤의 너른 평원, 어느 농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빛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망이 되는지. 개인의 소소한 행복이 영원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려면 어떤 고차원적인 것에 종속되어야할까. 아니 고매한 그 무엇을 지향해야할까.

리비에르가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나타나면 언제나 '나그네' 같다. 50줄에 들어선 그는 부하직원의 생사가 궁금해 찾아온 여인 앞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고 옷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자신이 하는 일의 치열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나쁨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점이 가져올 악을 미리 처벌한다.

리비에르는 야간비행을 위한 길을 닦아놓는 일에 매진한다. 구름의 미세한 물결을 읽으며 야간비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원의 길을 열어놓기 위함이다. 길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 길을 다니기 마련이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행복이라는 황금빛 성역에서 끄집어내어온 부하들을 단련하여 초월의 경지로 몰고가며 길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한다. 보다 영속적인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확신과 책임으로 가능한 일이다.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문학이 아니라 철저한 행동주의 문학이라는 평을 받는 생 떽쥐뻬리의 <야간비행>은 자신의 체험과 실제인물을 모델로 하였다. 사람들과 잘 사귀고 지내는 일에는 서툴렀다는 작가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몇 안 되는 인물이 디디에 도라인데, 그는 작가가 1929년 항공우편사에 근무할 당시 직장 상사이다. 작품에서의 그의 화신 리비에르는 '육신과 다름없이 덧없는 행복을 초월하고 보다 영속적인 존재가치를 인간에게 부여할 길은 없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소시민적 행복, 그런 종류의 행복은 그에게 겉치레로 보일 뿐이다.

'영원'의 문제에 매달리는 리비에르의 마음을 따라 페루의 고대 잉카족의 신전 돌기둥에 대한 단상이 마음에 안긴다.

> 사랑한다는 것, 그저 사랑한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 아닌가! 리비에르는 사랑하는 의무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의무에 대해 숨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애정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당신 자신 속에서 소멸된다.' <

> 산 위에 똑바로 서 있는 돌기둥들. 그 돌기둥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류의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는 경이적인 문명에서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잉카 문명의 지도자는 대체 어떤 무자비함, 아니 어떤 이상한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백성에게 산꼭대기에 신전을 쌓아올리라고 명하면서 그 문명의 영원성을 세우게 했을까? ...... 고대 민족의 지도자는 아마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꼈으리라.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막에 묻혀버릴 종족의 소멸에 대해서 동정심을 느꼈으리라.(89쪽)<

한낱 삶의 덧없음을 사회가, 집단이, 문명이 영원으로 이끌 수 있을까.  '나'는 우주의 원기를 받아 태어나지만 그것에 이름이 없다면 존재도 있기 전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 그 생명에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나'는 집단의 일원이 되고 어느 문명의 일원이 된다. 동시에 소멸의 길로 가는 '나'의 삶의 덧없음을 사회가, 집단이, 문명이 영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또한 소멸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 개인을 좀더 고매한 문화적 행위로 이끄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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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4-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경우든 야간비행은 추천대상입니다. 흐흐.
특히 배혜경님 글에는...

waho 2004-05-0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쭉 읽다 보면 어쩜 책을 이리 많이 읽으시는지...리뷰도 잘 쓰시고..넘 부러워요.
야간 비행 아직 못 읽어 봤는데...읽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