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누가 만들었나 뒹굴며 읽는 책 3
윌리엄 제스퍼슨 지음, 윤소영 옮김, 척 에카르트 그림 / 다산기획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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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한편의 담담한 시화집이다. 가는 선으로만 그린 흑백의 세밀화가 참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린 이의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에서 목숨있는 것들에 보내는 애정과 살아있다는 것의 벅차오름을 느끼게 한다. 정지해있는 것 같지만 어느 하나도 그대로 정지해있는 것은 없다. 차분하고 정적인 그림에서 끊임없이 꿈틀대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숲의 느낌을 주는 녹색의 단순한 선을 그 그림을 담고 있는 네모 액자의 액자틀로 이용했다. 흑백과 녹색이 주는 이미지는 숲을 그대로 닮아있다. 계절따라 다른 색 옷을 입는 숲이지만 그 속살은 이런 흑백의 빛깔을 하고 있을 게다.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않는 것을 들여다보라고, 세밀한 눈을 갖다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책의 글은 한편의 서사시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특정 숲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보편적인 숲에 대한 이야기시라 할 수 있다.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굳이 장을 구분하지 않고 이야기는 하나의 흐름을 타고 들려온다. 이백 년 전의 잠재된 기억으로 우리를 데려가 이야기는 흘러서 숲의 중년기 80년 전 쯤으로 가고 다시 시간은 흘러 1927년까지 온다.

숲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몇가지의 용어들도 적절히 나온다. '개척자' 나무를 비롯해 숲의 나무나 동물이 다른 종류로 변해가는 일을 말하는 '천이', 나뭇잎이 썩어 생긴 기름진 흙 '부엽토', 식물이 무리를 이룬 곳에서 낮게 자란 나무를 말하는 '후계목' 같은 것들이다. 맨 뒷장에서는 '다음에 숲에 가거든'이란 꼭지에서 숲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을 해 두었다. 역자는 우리 독자들을 위해 1464년 만들어진 경기도 광릉의 소리봉이라는 산에서의 천이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고 권하고 있다.

<숲은 누가 만들었나>의 원제는 'How The Forest Grew' 이다. 눈치챘겠지만, 숲을 만드는 이는 다름아닌, 바로 숲 자신이다. 숲에 생명의 씨앗을 심는 모든 생명체 자신이다. 또한 숲은 현재시제가 아니다. 숲에는 오랜세월을 겪어온 과거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미래가 공존한다. 우리가 숲을 보거나, 숲에 몸을 담고 걸어가기라도 하면 숲은 온 시제로 나를 밀고 당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숲은 그래서 내밀한 생명의 신비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충분히 성장한 숲은 다섯 층을 이룬다고 하는데, 제일 아랫층에 붙어있는 균류까지도 숲에 사는 모든 동식물과 '얼려' 산다. 역자는 '어울려'라는 말 대신 준말로 '얼려'를 썼다. 좋은 어감이다. 얼려사는 건 서로 얽히어 사는 것이다. 벼락을 맞고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에서도 곰팡이나 버섯이 생명을 튼다. 뜯어낼 수도 어렵고 뜯어내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게 얼려산다. 평화롭기 그지업다.

숲은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숲은 '죽음과 더불어 성장하기 때문'이다. 숲에 사는 목숨들은 내어줌과 받아들임이 자연스럽다. 숲의 주인은 고집을 부리지도 않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모든 게 순리적이다. 먹고 먹히고, 자리를 틀고 또 물러남이 오차도 없이 경건한 식순을 따른다. 

어느 나라, 어떤 기후인가에 따라 나무의 종류는 다를 테지만 숲의 성장 과정은 똑같다고 한다. '숲 속에서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것은 없'다. 숲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삶에 대한 이해와 다르지 않다. 이 그림책을 넘기다보면 눈은 차분해지면서 가슴은 역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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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을 넘기다보면 눈은 차분해지면서 가슴은 역동한다'
멋지군요. 예진이는 글도 그림도 다이내믹한 종류의 책을 좋아해서...이 책은 아직 벅차겠지요? 최근에 '선인장 호텔'과 '살아있는 모든 것은'도 퇴짜를 맞았거든요. -.-

프레이야 2004-03-2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선인장호텔>과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리고 <숲은 누가 만들었나>
모두 하나의 연장선상에 올려놓으면 좋을 책이네요.
적어도 초등 1학년은 돼야할 것 같아요^^

2004-04-06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