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문화회관 2008.3.1, 4시>

 

큰아이가 열살 때 같은 장소에 데려가서 함께 본 연극이다. 오늘은 그나이의 작은아이를 데리고 아이의 친구와 친구엄마와 4명이서 이 연극을 다시 보러 갔다. 그때보다 반달이 역할을 한 배우가 좀 부족해 보였지만 결말에선 여지없이 눈물이 나왔다. 안개꽃 가득한 숲에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몸짓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난장이, 반달이 때문이다.

일곱 난장이 중 반달이는 가장 체구가 작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혹은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가 표현하는 언어는 몸짓과 손짓과 표정이다.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언어는 서로 얼마나 다르고 왜곡되어 있는가. 사랑의 언어는 불통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둔한 백설공주는 반달이의 언어를 느끼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안개숲을 지나 어쩌구 하면서 만들어내는 손동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수록 눈물겨운 언어다. 그만큼 간절하고 간절한 언어가 있을까.

백설공주가 진실을 알게 되는 시점은 반달이가 죽고도 한참 후다. 진실의 거울 앞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듣게 된 공주는(아니 이젠 왕비가 되었지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비탄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것과 대비되게도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우는 안개숲 가운데에서 반달이는 예전에 표현했던 자신만의 그 사랑의 언어를 표현하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보낸다. 여기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과 곡진한 마음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올해 4학년인 딸아이와 친구는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 없었다고 하며 키스하는 왕자는 변태 같다는 말을 서스럼없이 한다. 아이쿠, 요 녀석들, 이렇게 감정이 메말라서야.. 라고 한 마디 했지만 요즘 아이들의 그런 감성에 책임이 있는 건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싶다. 채널만 돌리면 불륜에 복잡한 탄생 비화에 얽히고 섥힌 사생활 등이 나오는 텔레비전 드라마, 일회성 말초신경 자극제인 오락프로그램들에 익숙한 아이들이 왕자의 진심어린 프로포즈와 키스를 느끼하다고 표현하다니 말이다. 물론 공주의 아름다운 외모만 보고 사랑을 고백하는 왕자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사랑의 감정은 어차피 껍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꽃을 가꾸듯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도 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6년 전, 큰아이는 이 연극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났다고 일기장에 감상문을 길게 써두었다. 큰아이와 5년의 터울이 나는 작은아이에게서 씁쓸함을 느낀다. 만날 컴에, 닌텐도에, 텔레비전만 보더니, 쩝..

 

 
<큰아이랑 예전에 보았던 반달이>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간 엄마(나보다 4살 적다)가 한 말이 정답이다 싶다. 자기는 시어른보다 남편이 가장 어렵다며 남편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특이한 일이 벌어져 어떤 상황에 부닥치지 않고서야 사랑한다 어쩐다의 감정을 자신 스스로도 증명할 수 없다는 그말이 옳지 않은가. 사랑은 다 타고 남은 한줌의 잿더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탈 것이 남아있다면 그건 하수의 사랑에 속한 것일 테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랑으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반달이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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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3-0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연극 예전부터 보고싶었는데 잘 안맞네요. 예린이가 조금 더 클때까지도 롱런하겠죠? 만약에 보고 저만 눈물 찔끔거리고 아이들은 시시해한다면 저도 쬐끔은 섭섭할 것 같아요. ^^

프레이야 2008-03-02 09:24   좋아요 0 | URL
계속 롱런하고 있으니까 몇년 후에도 그럴 거에요.^^
이번에도 유인촌이 맡았더군요.
니들이 사랑의 아픔을 알까나.. 그러며 놀려주고 친구엄마랑 웃었어요.

2008-03-02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2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