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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넘어서 ㅣ 베틀북 창작동화 7
황선미 지음, 한병호 그림 / 베틀북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암시하듯 ‘울타리’는 물리적이라기보다 사람들 마음속의 장애물을 말한다. 이 책은 4편의 단편동화가 묶인 것인데 황선미 작가의 예전 동화와 신작이 함께 있다. 예를 들어 ‘앵초의 노란집’과 ‘괭이 할아버지’ 같은 것은 오래 전 작품이다.
황선미는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갖는 작가다. 그는 ‘늘 푸른 자전거’에 대한 나의 (알라딘에 올린) 리뷰를 읽고 메일을 보내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골 깊은 애정이 진실 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충실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감동했다. 여러 해 전 내가 어린이 독서지도와 관련하여 공부를 할 때 한 어린이서점에서는 독자들 가까이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려주었는데 영민한 눈동자를 빛내며 그린지대의 아파트 단지화와 어린이 도서관의 부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동화 밖에서나 안에서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은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건전함과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려는 자상함에서 나온다.
이 책에 담긴 4개의 이야기도 작가 특유의 생활동화다. 이야기의 발단은 언제나처럼 소소하다. 집이나 학교, 동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온다. 표제인 ‘울타리를 넘어서’에서는 실제의 울타리를 등장시키지만 나머지 3개의 이야기에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쌓은 마음속 울타리를 내세운다. 이야기는 친구 사이의 울타리와 이웃 사이의 울타리로 나뉜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주인공 아이들이 동물이나 노인에 대해 갖는 편견의 울타리도 들고 나온다. 물론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들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울타리를 넘는 과정이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수수하니 펼쳐진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방식은 과장되지 않으면서 세밀하다. 툭 흘리듯 하는 대사나 비유적으로 배치한 소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부담없이 잘 읽어냈다. 아이들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울타리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보였던 이웃과도 어떻게 마음의 울타리를 허무는지, 소박한 이야기의 힘이 크다. 예전의 작품 둘은 조금 도식적인 결말이지만 요즘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많다못해 황당한 내용의 동화도 있는데 비해 일상 속에서 소박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은근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관계맺기에 서툰 나는 이런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면 내 마음의 울타리부터 허물고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어느 서재주인처럼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자기 생을 사랑하는 길은 울타리를 허물고 먼저 다가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어른들보다 낫다.
삽화는 '황소와 도깨비'등의 그림책에서 소박하고 정감 가는 그림을 그려준 한병호 님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