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그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걸이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밭 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 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사는 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

 

 

바람결 님 서재에서 가져왔습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이 시를 마음의 선물로 받고 싶어서요.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는 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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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19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거리'도 있군요. 하하


프레이야 2007-12-19 10:45   좋아요 0 | URL
한사님, 투표하고 오셨어요? ^^
해거리 잘 하고 거듭 나고 싶어요.

소나무집 2007-12-1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 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엎드려서/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프레이야 2007-12-19 13:14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 님, 님의 방명록에 책 3권 소개해 골라두었어요.
괜찮을라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