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윈딕시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32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송재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윈딕시 때문에,가 원제인데 내 친구 윈딕시, 라고 하니까 좀 평범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제목과 표지로 내용이 대충 연상되는 책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성마른 추측인가. 제목만 보고 뭘 다 안다고.. 읽어가며 첫인상과는 달리 행복감이 밀려들어오는 동화다. 마음에서 일어나 자꾸만 말하려는 이야기를 술술 막힘없이 썼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작가가 언급한 바로는 플로리다에서 살았던 그녀가 ‘개와 우정과 남부지방에 보내는 찬가’이다.

 삽화처럼,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인디아 오팔이라는 만 열 살 소녀의 일기처럼 읽힌다. ‘달콤함과 슬픔의 맛을 지닌 사탕’ 같은 이야기들. 사는 일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달콤하기만 해도, 씁쓸하기만 해도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을까. 하지만 사탕에서 ‘슬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은 물론 개, 윈딕시까지도 그 ‘달콤하고 슬픈’ 사탕의 맛을 즐길 줄 안다. 그 부분이 아이들에겐 얼른 공명을 일으키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이다.

 3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목사인 아빠와 외롭게 살아가는 오팔은 밝고 따뜻한 여자아이다. 세상에나! 어느 날 수퍼마켓에서 우연히 만난 개와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후 오팔에게는 더 많은 인연이 줄줄이 사탕처럼 순순히 엮이게 된다. 세상에 남은 친구가 한 명도 없이 홀로 작은 도서관을 벗 삼아 살아가는 프레니 할머니, 수많이 저지른 죄악의 유령이라는 술병들을 뒷마당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고 세상과 등지며 살아가는 글로리아 할머니, 거리에서 마음껏 기타소리를 들려주고 싶은데 불법이라는 죄명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오티스 아저씨, 멋진 개를 갖고 싶어 하는 깜찍한 스위티(5살 여자), 장난꾸러기 던킨, 그리고 ‘목사님’이라고 칭하는 아빠와 그동안 다 못다 연 마음의 문을 서로 열게 되기까지.

모든 일은 윈딕시 때문에 일어났다. 이 말은 맞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오팔이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윈딕시 때문이라고 공을 돌리는 그 아이가 말을 걸고 다가가 친구를 맺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렇게 선선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 되는데 우리는 뭐가 두려워 그게 잘 안 되는 건지.

 ‘단단한 껍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있는 거북’ 같았던 아빠를 보며 오팔은 내심 불만이었다. 윈딕시 때문에 처음 그 껍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 날, 오팔은 좋은 조짐을 가진다. 그리곤 물어본다. 그동안 금기시하였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열 가지만 들려달라고 한다. 그것은 상처로 똘똘 뭉쳐 아빠를 짓누르고 있었던 덩어리를 살살 풀어주는 기회가 된다. 티비 프로그램 중 무릎팍도사가 생각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미 곪아있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게 해 주마, 뭐 그런 의도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열 가지, 아니 스무 가지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결코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팔이 엄마에 대해 알게 된 열 가지로 엄마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듯이.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부분과 소문으로 들리는 말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건 더구나 거의 99%(통계를 내어본 건 아니지만^^) 오류를 낳을 수 있다. 먼저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내 이야기를 솔직히 하고 나눠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자. 그것이 친구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라면 방법일 테다.

 이 책은 달콤하고 행복한 기운이 온몸에 쫙 퍼지는 책이다. 사람들이 다 말 못하는 슬픔 하나쯤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장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친구가 되는 넉넉한 자리에 ‘유머감각이 뛰어난’ 윈딕시가 있어 더 유쾌하다. 남북전쟁의 비통함과 공명심에 빠진 전쟁에 대한 비탄과 재기하는 사람의 힘 그리고 책과 음악이 갖는 치유의 힘도 감동적이다. 하지만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재빠르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장점이다.

(4학년이상 권장)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2-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아이 때를 돌이켜 보면 무작정 편하고 즐겁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아이들의 마음에도 고통이 있지요. 눈에 보이기도 했고요..
짐짓 어린 척하며 때때로 놀며 지났던 거 같아요. 혜경님.
개가 저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지요.
제 개이름이 '곰돌이'였지요. 하하


프레이야 2007-12-14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돌이켜 보면 그래요. 예민한 성격이라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고
자기검열도 강하고 그러면서 도발적인 성격도 강했고 그랬어요.
어른들에겐 참 쉽지 않은 까다로운 아이였던 것 같아요..
지금 제 아이들도 감추고 있는 그런 것들이 있겠지요. 그런 걸 엄마의 눈
으로 잘 살피고 돌봐야하는데 마음은 그런데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한사님처럼 넉넉한 품성으로 아이들을 대해야할 텐데요.
ㅎㅎ 곰돌이라면 우리집에 많아요. 작은딸 침대맡에 죽~ 앉아있지요^^



miony 2007-12-14 12:37   좋아요 0 | URL
저희 집 개 이름도 곰돌이인데 열 살이 넘어서 운신하기 힘들어하네요.

프레이야 2007-12-14 14:23   좋아요 0 | URL
miony님집 개이름도 곰돌이에요? ^^
열살이면 노년인데.. 완전 가족이네요. 마지막까지 함께 하실 거죠?
언젠가는 이별에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하셔야겠어요.

순오기 2007-12-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윈딕시, 그 볼품없이 더러운 개를 데려다 친구가 된 오팔은 정이 많은 아이겠죠. 그래서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설 수 있는... 이 책은 뉴베리수상작이었던거로 기억하는데...^^

프레이야 2007-12-14 14:27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순오기님. 뉴베리상, 은색 스티커가 훈장처럼 붙어 있더군요.
책표지에요. 윈딕시는 참 행복을 몰고 오는 개 같아요. 유머감각이 뛰어난.^^
행복은 스스로 불러오는 것인가 봐요. 오팔을 봐도요^^

비로그인 2007-12-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님의 도메인이 센스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끔 그럴 때 있지요,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본 듯 신기해질 때....
그런데 오늘은 역시...라는 생각이 드네요.


프레이야 2007-12-14 14:27   좋아요 0 | URL
센스^^ 역시라면 센스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거죠? 호호~ (우길래요)

비로그인 2007-12-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생쥐기사 데스페로를 너무 재밌게 봤었는데 이 책은 너무 달라서 망설였었거든요. 혜경님 리뷰를 읽고나니 당장 사서 둘이 같이 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겨울에 따스하게 읽기 좋은 책이겠네요.

프레이야 2007-12-15 10:15   좋아요 0 | URL
Manci 님, 생쥐기사 데스페로,도 이 작가의 책인가 봐요?
제목에서 벌써 재미가 느껴지네요, 왠지.. 생쥐기사라고 해서 그런가요.
네, 윈딕시와 오팔 그리고 사람들이 참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더군요. 타인과 자신의 아픔까지 보듬는 여유, 언제 그 경지에 무난히
도달할런지.. 연말 잘 지내고 계시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