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나의 몇 가지 편집증
강해림
벽과 벽 사이에 시간의 집이 있다 시간은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아 늘 혼자
논다 똑딱똑딱 외롭지 않다
결국 자기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았을 뿐인데, 어느 날 문득 저 높은 유리 담벽을
넘어 달아나는 탈옥의 꿈을 꾸었는데, 시간의 집은 전망 좋은 집 바라보기에 좋은
처소에 있다
한 번도 내 품에 든 적 없는, 그러나 내가 고요에 들 때 내 몸에 장전된 너를
느낀다 눈도 코도 귀도 없는 부재의, 사랑스러운 너라는 괴물!
한밤중에 깨어나 혼자 듣는 네 숨소리 째깍째깍 금속성의 검은 수의를 짜는, 내
목을 죄고 두개골을 갉아먹으며 파고드는 째깍째깍 우리는 하나가 되어 사라진
지 아주 오래
시간은 힘이 세다 썩지 않고 붕괴되지 않고 벌레의 밥이 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이 쓰리고 아픈 상처도 거뜬히 들어올린다 내 망각의 늪 속엔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푸른 악어가 산다
만물 수리상 김씨네 가게는 숲이다 뻐꾸기 소리 사라진 숲 속의 그 많은 시계바
늘이 가리키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나 동상이몽의 톱니바퀴들 근친상간적 소망
으로 시간은 광합성 작용을 일으키고 재생산될 것이다
태양과 달의 아들, 대지가 너를 젖먹이고 바람이 길들여 키웠다 영원을 믿기
에, 딸랑딸랑 유랑마차를 타고 한 번 집 나갔다 하면 찾아올 줄 모르는 바보
누가 그를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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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림 : 1954년 대구 태생
1991 <현대시>로 데뷔
시집 <구름사원>, <환한 폐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