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탄이 든 권총을 든 13세 소년이었다. 경찰이 이들에게 접근해 소리쳤고, 놀라 달아나던 소년의 손에 든 총을 보고 권총을 쏘았다. 미얀마 소수민족, 그 엄마가 우는 얼굴 위로 뉴스 화면에 뜬 미얀마 소년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본 뉴스이고, 웨이드 데이비스가 첫 장 “이것이 미국이다”에서 자세히 다룬 일의 극히 일부분이다.


# 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Beneath the Surface of Things
지은이 Wade Davis. 옮긴이 박희원 / 아고라

오늘 부산점자도서관에서 녹음 시작
5시간 연이어 86쪽까지 파일5번까지 완료.
편집 상태 따라 책마다 다른데 이 책은
한 파일에 15쪽 정도가 담기는 걸로 보아 앞으로
16시간 정도 더 소요될 것이다.
상당히 매력적으로 읽힌다.

Franz Boas 1858-1942 미국 문화인류학자.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학문으로 사물의 표면 아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 양식과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의 비전이 실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 앞에서, 우리가 이 지구에 거주하는 근본 양식을 반드시 바꿔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는 우리 문화 내부의 말은 거짓이 된다. 인류학은 순혈주의의 해독제이자 혐오의 적이요, 선동가의 수사를 침묵시켜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미국인과 캐나다인 남성만으로 2016년에 구성된 극우 집단 - 옮긴이)와 도널드트럼프 같은 부류에 대항할 세계의 예방 주사가 되는, 이해와 관용과 공감의 백신이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여러 사건에서 드러났듯 오래전 프랜츠 보애스가 벌인 투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류학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입에서 나와야만 귀로 들어갈 수 있다.
100만 위구르인이 중국 수용소에 있고 페난족이 사는 사라의 숲이 황폐화되고 이누이트의 고향 땅이 그들의 터전 아래에서부터 녹아내리는 지금, 현대의 인류학자는 교조적인 불만학(젠더학, 퀴어학, 비판적 인종이론 등의 분야가 엄밀한 학술적접근보다는 정체성 정치 중심의 불만 토로에 집중한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는 용어- 옮긴이)과 교차성 세미나, 대명사 사용을 비롯해 다양하게 표현되는 각성 문화의 정설만 탐닉하는 것을 넘어 반드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 학문이 실제로 가장 무가치한 학부 전공이라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면. - P72

생전에 보애스는 자신의 통찰과 직관이 새로운 전 지구적 문화의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연과학에서 확증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나 80년이 흐른 뒤 인간 게놈 연구는 인류의 유전적 자질이 단일한 연속체가 맞음을 밝혀냈다. 인종은 실제로 허구다. 우리 모두는 같은 유전적 천에서 재단된, 공통 조상을 둔 자손들이다. 6만 5,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걸어나와 4만 년에 걸쳐 2,500세대 만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인간의 정신을 실어나른 여정을 시작한 이들도 그 조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생각은 이것이다. 모두 같은 생명의 천에서 재단되었다면 우리가 명민한 정신과 다듬지 않은 천재성을 똑같이 공유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 지적 잠재력이 기술 혁신으로 발휘되는지 아니면 신화에 내재한 기억의 복잡한 타래가 풀어지며 발휘되는지는 순전히 선택과 지향, 순응적 통찰과 문화적 강조의 문제다. 문화사에는 진보의 위계가 없으며 성공으로 가는 진화의 사다리도 없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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