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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암행어사 ㅣ 우리 역사 속의 숨은 일꾼 이야기 1
정명림 지음, 김수연.박재현 그림 / 풀빛 / 2006년 5월
평점 :
누가 까닭 없이 나를 괴롭힌다면 무척 속이 상할 거에요.
작가의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이 책은 흥미로운 소재와 내용, 알찬 정보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잘 어울려있는 책이다. 초등 4학년 아이들과 수업한 책이고 독후활동으로는 ‘암행일보’ 라는 신문을 만들어보았다.
누군가 나 대신 괴롭히는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상상을 하는 어린이들의 바람을 실제로 해낸 사람들은 없었을까?, 하는 아이다운 호기심에서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로 유도하여 간다. 과거의 암행어사 정신을 오늘날에 이어받아 좀 더 행복한 사회와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함께 고민하자는 작가의 의도도 건전하다.
이야기는 새 학년이 되어 모든 게 어리둥절한 우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펼쳐진다.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암행어사놀이가 실시되고 아이들은 아주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놀이체험을 한다. 바로바로 암행어사를 임금이 임명할 때처럼 ‘봉서’를 통해 아무도 몰래 단 한 명이 암행어사로 뽑혀 한 달 동안 선생님의 눈과 귀가 되어 활동하는 놀이다. 고자질이나 감시가 아니라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어려운 친구는 돕게 하고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는 없는지도 살펴야한다. 이달의 멋진 친구를 뽑아 보이지 않게 선행을 베푼 친구를 공개적으로 칭찬해야한다. 그리고 모든 활동상황을 조리 있게 써서 발표해야 한다.
처음엔 심드렁했던 우진이가 이 활동을 하면서 따돌림 당하고 있었던 정호를 발견하게 되고 몰랐던 면을 보고 우정을 쌓게 되는 모습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식정보의 소득이 쏠쏠하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암행어사를 탐구주제로 하여 탐구조사보고서를 쓰게 하여 모둠을 만들어주었다. 우진이가 암행어사로 활동하는 시기와 맞물려 11모둠의 아이들이 암행어사에 대한 소주제를 스스로 정하고(모두 11가지의 소주제가 나옴) 자세히 조사하고 정리하여 발표하는 과정을 함께 엮는다. 그 내용들은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데 삽화를 섞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해두었다. 낯선 용어들이 두루 나오지만 암행어사와 관련된 옛 제도와 조상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용어들이니 알아두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감사원을 소개하며 암행어사 정신을 이어받은 감찰제도로, 그 정신을 오늘날과 미래로 발전하게 한 점이 돋보인다.
‘우리 역사 속의 숨은 일꾼 이야기’ 시리즈의 첫 편으로 나온 이 책에서 추사 김정희도 충청도에서 암행어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암행어사는 역시 박문수였다. 수령을 한 두 번 한 과거급제자를 임명하는 원칙을 깨고, 수령경험이 전혀 없었던 박문수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정조는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가장 많이 암행어사를 보낸 왕이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 나도 한 번 암행어사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내용면으로 보면 전체가 하나의 탐구보고서 같은 형식을 띈다. 책의 뒷부분에는 ‘탐구조사를 마치며’에서 반 아이들의 재치발랄한 후기가 적혀있고, ‘암행어사와 함께 한 걸음 더’라는 꼭지에서는 앞에서 논의되지 않은 탐구주제와 부연설명이 실려 있어 역사와 관련하여 시대상을 좀 더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갖가지 이름을 단 일련의 부정부패감시단으로 관심을 나아가게 한다. 암행어사제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암행어사도 힘을 잃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명종 때 이르러 조선팔도에 보냈던 암행어사 제도는 마침내 고종 35년(1898)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날에 그 정신을 부활하여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성종실록> 20년 11월 7일(1489)의 기록이다.
“..... 옛사람의 말이, ‘가혹한 행정은 호랑이보다도 맹렬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수령들의 나쁜 짓을 모조리 알아내어 우리 백성이 잔학한 행정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겠는지 말해 보거라.”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