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자기만의 방 (1929-1935)



아렌트처럼 보부아르도 경험을 쓰고자 했다. 경험에 뿌리 둔 사유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아직 보부아르는 정치적 현안에는 눈을 두지 않았다. 두 살 먼저 태어난 아렌트가 겪고 있었던 이 시기의 삶이 떠오를 수밖에… 동시대에 멀지 않은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산 사람들. 어두운 시대를 각자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나간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아래 문장,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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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능력을 향한 아버지의 부정적 시선은 시몬이 탐독했던 일부 철학자들의 성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시몬이 학생 시절 일기에서 곧잘 인용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여성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여성은 모든 면에서 첫째가는 성보다 열등한 두 번째 성이며 단지 인간이라는 종의 존속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여성도 재능이 있을 수 있으나 결코 천재는 될 수 없다고 보았다. - 148쪽

학교에서 보부아르는 거침없이 자기 생각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보부아르는 노동, 자본, 정의를 가르쳤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군거렸다. 정신은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성생활은 관습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 교사가 성적으로 접근해 왔을 때도 그 구애자가 남자가 아니라 투르믈랭 ‘부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마르세유에는 파리에서처럼 만날 사람이 많지 않았으므로 근무일에도 퇴근 후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원고는 아무것도 출간되지 않았지만 어떤 글을 쓰든 ‘타자의 신기루‘, 그리고 정직, 자유, 사랑의 관계라는 늘 똑같은 주제로 돌아왔다. 보부아르는 "이 특수한 매혹이 진부한 연애와 혼동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주인공을 둘 다 여성으로 설정하여 그들의 관계에서 성적 함의를 제거하려 했다. - P162

‘자기 기만‘은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예로 든 ‘웨이터‘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이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왜 보부아르는 이 개념을 ‘우리‘가 발견했다고 말하는가? 1930년대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서로에게 무엇을 이바지했는지 명명백백하게 가리기란 매우 어렵다.
엘렌의 남편 리오넬 드 룰레(Lionel de Roulet)는 두 사람의 관계를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방식을 통하여 서로를 너무 밀접하게 비춘 나머지 둘을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게 됐다."

이 단계에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정치적 인식에 눈떴다. 비록 원숙기의 보부아르는 이때의 그들을 돌아보며 "정신적 자부심이 넘쳤고" "정치적으로는 장님이었다."고 했지만 말이다. 오드리와 다른 친구들을 통해 트로츠키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자신들의 혁명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들의 투쟁은 철학적이었다. 그들은 이성적이고 육체적인 자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했다. 그들은 자유를 이해하기 원했고 사르트르는 신체를ㅡ신체의 욕구와 습관을 -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 P165

1935년 3월에 히틀러는 징병제를 재도입하여 군인의 수를 10만여명에서 55만 5천명으로 대폭 늘렸다. 프랑스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공포에 빠졌다. 그래서 소련과 협약을 맺었고 스탈린은 프랑스의 국방정책에 동의했다. 소련과 프랑스가 손을 잡았으니 평화는 굳건할 성싶었다.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도 없는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어리석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 보부아르는 자신이 "신문도 대강읽는 둥 마는 둥 했다."고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히틀러가 제기하는 문제에는 회피가 최선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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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04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지금책 나무님도 이 책 보시던데....
저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보겠다고 사놓고 쌓아놓기만 하고 있어요. 한나 아렌트 평전 나온것도 보고싶다 하면서 언제 보지 하고요. ^^

프레이야 2022-10-04 22:23   좋아요 2 | URL
작품 먼저 읽는 것도 좋겠지만 평전 먼저 읽는 것도 도움 될 것 같아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사람과 작품의 내외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그렇고 주변인들과 에피소드 자체로도 한 사람의 살아온 길이 흥미롭네요. ^^ 쇼펜하우어의 문장 위에 첨가했어요. 놀라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