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된 거야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똘망한 어린 외손자가 찾아오고 앙드레의 손을 화면 가득 비추는 장면이 영화에서 나온다. 쥐고 갈 것 없다는 듯 힘 없이 시트 위에 내려놓은 손!

(울아빠는 내가 가면 요즘 부쩍 내 손을 먼저 잡으신다.)

뉘엘이 공포영화를 보는 장면이 갑자기 나와 깜짝 놀랐는데 그게 <쏘우>였네. 안 본 영화다. 뉘엘은 태연하게 본다.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군. 이해된다. 동생 파스칼이 본 <안티크라이스트>는 지독한 영화였던 기억이…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짧은 문장들로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원작에 꽤 충실히 연출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작가라 그런지 문장이 시나리오 같다. 앙드레가 앰뷸런스에 타고 뉘엘이 파란 머플러를 벗어 목에 둘러주던 이별 장면, 따스하고 울컥했다. 앙드레가 파스칼에게, 언니한테 다음 글은 이 일을 주제로 쓰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넣은 듯. 울보는 싫다며 끝까지 유머러스한 아빠. 살면서 슬픔을 내치진 말고 항상 기쁨을 앞세우자.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앰뷸런스 기사가 베른으로 가는 도중 앙드레가 그곳에 가는 이유를 알게 되고 설득하려 하나 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앙드레가 기사 두 명을 휴게소에서 마주하고 앉는다. 



아버지가 왼손으로 내 팔을 잡았는데 힘을 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나는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좀더 크게 반복했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사고가 난 뒤로 아버지는 이렇게 똑똑히 말한 적이 없었다.
내 팔을 떠나는 아버지의 손이 보였다. 아버지의 손은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시트 위에 정지되어 있었다. 연주를 마치고 마지막 화음이 울리는 동안 약간 벌어져 있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아버지는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느꼈지만, 내 눈은 표류하는 것 같은 창백한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 P61

"어제저녁에 뭐 했어?"
"다른 생각을 하려고 나가서 안티크라이스트」를 봤어. 언니는?"
"난 「쏘우」봤어. 다른 생각을 하려고………………"
「쏘우」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이 스스로 자신의 발을 절단하는톱.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윌렘 대포의 발목에 나사못을 박는 맷돌.
동생과 나는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우리는 어렸을 때처럼 깔깔대고 웃는다. - P238

아버지는 앰뷸런스 안에 누워 있다.
"아주 좋아."
아버지가 행복해 보인다.
파스칼이 입맞춤을 하려고 앰뷸런스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동생이 나온다. 나는 동생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차례.
나는 아버지의 목에 머플러를 둘러준다. 파란색이 아버지에게 잘 어울린다. 미남이다.
"아빠………."
"그래… 그래………… 잘 있어…………"
아버지의 작은 입, 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눈을 본다.
나는 아버지를 포옹한다.
아버지가 나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울보는 싫어. - P263

앰뷸런스 기사들한테서 방금 전화가 왔다.
거의 도착했고,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함께 농담도 나눴다. 기분이 아주 좋은 아버지가 스위스에 뭘 하러 가는지 말하기 전까지는.
앰뷸런스 기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그들은 아버지를 이송하는 걸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무슬림이다.
자살은 그들의 종교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들은 공범이 될수 없다.
그들은 아버지를 파리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나는 동생 말을 끊는다.
"농담이지?"
"아니!"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되지.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어. 그 결정은 아버지가 하는 거니까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아버지 몫이라고.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아버지와 알아서 해결하라고."
"그들이 어떻게 할까?"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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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9-16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온해 보이는데, 어쩐지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예상보다 충격적일 것 같은 느낌이...
프레이야님, 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이번주 월요일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한 주가 빨리 갑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2-09-16 22:34   좋아요 2 | URL
예상보다 충격적이거나 그렇진 않구요. 냉정하게 삶을 돌아보게 해요. 예상대로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존엄사인데 평온하게 맞이합니다. 와중에 위트도 있구요. 삶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